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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인 칼럼/정숙] ‘똥’ 아이러니

  • 입력 2014.08.18 09:07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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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숙(배울학원장)

배설만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피부색, 나이, 인종, 성별에 상관없다. 수도자의 것과 범죄자의 것이 다를 수 없고, 임금과 종의 그것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런데 과거 프랑스의 유명한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러니 프랑스인들은 궁전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볼 일부터 챙겨야 했다. 그러나 급하면 어쩌겠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은밀한 장소를 찾을 수밖에. 그들이 찾은 은밀한 곳은 대리석 조각품들 뒤쪽 공간이었다. 영원히 남을 불후의 작품 뒤쪽 공간에 고체와 액체가 뒤범벅된 구린내가 발효까지 되어 독특한 내음을 풍겼음은 가히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17세기까지 유럽 궁궐이나 건물 안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하나, 의외겠지만 옛날 우리나라 궁전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경복궁 경훈각 서쪽 모퉁이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문을 열면 바퀴가 달린 판자 모양의 작은 수레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왕의 요강을 담아냈던 수레였다.

경복궁에는 뒷간이 28군데, 동궐에는 21군데, 그 밖에도 36군데나 되는 뒷간이 있었다. 이쯤되면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과학적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있다.

그런데, 파라솔과 하이힐의 유래는 더욱 웃긴다. 유럽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병에 모아 두었던 똥들을 창밖 도로로 던졌다. 화장실이 없는 건물에서는 간밤의 배설물이 항상 골칫거리였다. 게으른 그들은 창밖으로 휙 똥을 던지기만 하면 없애지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니 행인들은 언제 뒤집어쓸지 모를 똥벼락에 늘 경계를 해야 했다.

급기야 휴대용 파라솔이라는 안전장치를 들고 다니게 된 것이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똥을 막기에는 파라솔이 제격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뒹구는 똥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대책이 하나 더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답은 하이힐에서 찾았다.

언젠가 서울 지하철 차장이 뒤따라오던 열차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차장은 기관실에서 똥을 누다 선로에 떨어졌다. 그러자 전국 매스컴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노동의 열악한 환경과 노동의 권리법들을 부르짖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4시간 30분 동안 화장실을 갈 수 없다고 했다. 급하면 검은 비닐봉지나 빈 페트병이 간이 화장실이 되었다. 똥을 누는 동안 누군가에게 들킬 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그들은 몹시 시달렸을 것이다.

똥이 쓰레기와 폐기물이 된 것은 산업사회로부터 비롯되었다. 산업사회 전에는 똥은 에너지였고, 유기물이었고, 동물들의 식사였다. 농업사회에서 쓰레기란 없었다. 수증기가 대기를 순환하듯이 무엇이든 배설되면 그것은 다시 우리 몸속으로 들어왔다.

산업사회가 되면서부터 화장실에서 똥을 물로 씻어 내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인 유가급등 시대에 우리는 천연에너지를 흘려보내기 위에 물이나 석유 같은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로 씻는 똥,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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