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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청년의 죽음과 사회적 학살

  • 입력 2014.12.04 09:07
  • 수정 2014.12.04 09:08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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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연하나 소개하겠습니다. 2009년 3월 10일 29살 청년 정 모씨가 한강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고려대 정외과 98학번이던 정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2006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알바로 생활하며 고시원에서 살아가다가 삶을 비관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기사는 취업난으로 고통 받는 청년 세대의 실상을 그린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기사 중에서 다른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청년이 전남 담양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지방의 농촌 고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했다면 이 청년은 학습 능력과 발전 가능성이 뛰어난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만일 이 청년이 전남 담양이 아닌 가령 경상도 어느 지역 출신이었다 해도 저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 속담에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집안에 세간이랄 것이 거의 없거나 외로운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저는 자살한 정 모씨의 상황이 저 속담 그대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청년에게 학비를 지원했거나 최소한 빌려줄 친인척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학 학비가 비싸다지만 요즘 돈으로 주위 친인척 몇 사람이 힘을 모아 2천만~3천만원 정도만 지원했어도 저 청년은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빌린 학자금도 갚고 사회의 괜찮은 인재로서 살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손꼽는 인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돈네 팔촌까지 뒤져봐도 저런 돈을 지원할만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한 청년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심층적으로는 저 청년을 둘러싼 집안과 일가친척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나의 샘플이지만 그 샘플을 통해서 호남 사람들 태반이 처해있는 현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사돈네 팔촌까지 거치는 것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 청년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호남 출신들 거의 대부분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닌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위협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거의 사회적 학살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희생자 규모는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수백 명 이상이지만 박정희정권 이래 호남 소외와 경제적 낙후, 왕따 등 객지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사망한 숫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광주항쟁 당시의 희생자의 몇백, 몇천 배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희정권 이래 호남 지역의 두드러진 인구감소 그리고 서울 지역 저소득층 가구주의 압도적 다수가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대책이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호남 내부에서도 진지한 고민과 발언이 별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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