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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 논란' 일본 강제징용시설, 유령 나올 듯

[나가사키 여행기 ④] 아픈 역사 흔적 남아... 조선인 노동자의 한 느껴졌다

  • 입력 2015.05.08 22:26
  • 수정 2015.05.12 09:03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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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군함도. 나가사키항에서 약 19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해저탄광섬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일하다 숨지기도 했던 섬이다.

지난 4월 28일, 일제에 징용된 조선인들이 강제 노동에 시달린 '군함도'(일본명 군칸지마)'를 다녀왔다. 군함도는 채 2000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섬으로, 생김새가 군함처럼 생겼다. 이 섬은 일본인이나 한국인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섬이다.

요즘 각종 언론사의 주요 뉴스 중 하나는 과거 일본 산업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메이지 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가사키 항에는 이를 축하하는 깃발이 날리고 있었다.

조선인 강제 징용했던 섬, 하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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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키항에는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축하하는 깃발이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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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산업시설은 나가사키(長崎)의 하시마(端島) 탄광과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 조선소, 기타큐슈시의 야하타(八幡)제철소 등이다.

나가사키 반도에서 서쪽으로 약 4.5km, 미쓰비시석탄광업의 주력 탄광이었던 다카시마에서 남서쪽으로 약 2.5km,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9km 떨어진 조그만 섬 '하시마'.

일본에서는 군함도를 하시마라고 부른다. 하시마는 남북으로 약 480m, 동서로 약 160m, 둘레 약 1200m, 면적 약 6300제곱미터의 작은 해저 탄광섬이다. 이 섬은 울타리가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으며 고층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가 늘어선 폐허의 섬이다.

폐광 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하시마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9년 1월 5일 세계유산 잠정 리스트에 '규슈 야마구치 근대화산업유산군'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하시마에서는 1810년경 석탄이 발견돼 1890년 미쓰비시 합자회사가 본격적인 해저 탄광 시대를 열었다.

출탄량이 증가함에 따라 인구도 증가했다. 좁은 섬에서 많은 사람이 생활하기 위해 1916년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의 고층 집합 주택이 건설됐다. 전성기에는 5300명이 넘는 사람이 살아 당시 도쿄 도의 9배나 되는 인구 밀도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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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탄을 캐던 탄광이 문을 닫고 폐허가 된 모습. 007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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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가 된 탄광에 돈나무가 꽃을 피우고 어디선가 찔레꽃과 억새풀이 날아와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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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부터 1974년 폐광까지 약 1570만 톤이나 석탄을 채굴한 광부들은 해면 아래 1000m 이하 지점까지 파고 들어갔다. 경사는 급했으며 온도 30도, 습도 95%라는 악조건 하에서 가스 폭발 등 위험과 싸워야 했다.

학교와 병원, 상점 외에도 영화관이나 파친코 홀 등 오락 시설도 갖춰져 있었지만, 나무를 기를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에 아파트 옥상에 흙을 날라 꽃과 채소를 길렀다. 당시 사진 자료에서 줄다리기 등 운동회도 열린 걸 보면 육지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하려고 했던 것 같다. 에너지 혁명으로 석탄 수요가 감소해 1974년 폐광한 섬의 모습은 폐허 그 자체로 유령이 나올 듯한 모습이다. 일본인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007 영화도 촬영했다고 한다. 

폐광 후 폐허된 곳... 아픈 역사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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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10여미터의 옹벽으로 둘러쳐진 섬으로 바다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길이다. 왼쪽에는 녹슨 전선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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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사진을 보면 학생들이 줄넘기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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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민단체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패전 위기에 몰리자 외국인 노동자(조선인, 중국인)들을 강제 징용했고, 600여 명의 조선인 징용자 중 상당수가 사망했다. 진상조사위원회 당국자에게 정확한 자료를 요구했으나 "일본 측에서 자료를 제공해 주지 않아 정확한 집계를 낼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허락된 구간만 가이드를 따라 돌아본 섬에는 녹슨 철근과 부스러지는 목재 사이로 돈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 뿌리를 내린 찔레꽃과 억새풀이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줬다. 주민의 식수를 보관했던 물탱크 잔해와 관리 사무소 위에는 서너 마리의 매가 맴돌고 있었다.

여수 오동도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군함도에 갇힌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 당시 다치거나 죽어야만 섬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매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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