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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약 떠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 한국 맞습니다

[여수카약여행1] 색다른 즐거움, 여수에서 카약 타기... 해식동굴 탐사도 가능

  • 입력 2015.06.02 08:52
  • 수정 2015.06.03 10:54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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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약을 타고 바위와 바위사이를 빠져 나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배는 암초에 좌초될 위험이 있어 바위가까이 가지 못하지만 카약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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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여수시 남면에 있는 연도와 비렁길 둘레를 따라 도는 카약체험에 나섰다. 카약에는 문외한이라 전문가들의 안내를 받으며 카약을 즐겼다.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 1편 제작에 참여했고 만화영화<더 웨이>를 감독했던 전영식(카누경력 8년) 애니메이션 감독, 자신이 손수 제작한 보트를 타고 서해부터 동해안까지와 수많은 섬들을 돌아 총 종주거리가 8천킬로미터에 달하는 이효웅씨(카누경력 5년), 순천 청암대학교 김동현 교수(카누경력 2년)와 함께 카누를 즐겼다. 그들에게서 카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배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CANOA"에서 온 카누와 카약의 차이점은 패들링(Paddling: 노젓는 행위)을 한쪽으로 하느냐 양쪽으로 하느냐로 카누와 카약을 구분한다. 내가 탈 배는 카약으로 패들이 양쪽으로 달려 있다. 좀 더 세분하면 카약은 선체 윗부분이 덮혀 있어 신체일부가 감쳐질 수 있는 특징이 있는 반면 카누는 선체만 있고 윗부분은 오픈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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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휴라 금오도 비렁길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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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하게 생긴 암석이 동굴 위에 걸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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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서울과 강원도 동해시에서 여수까지 온 두 사람은 출발 하루 전인 5월 22일 여수시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하고 23일 아침 일찍 금오도가 가까운 돌산의 신기항으로 갔다. 연휴가 낀 신기항은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차와 사람이 붐볐다. 

돌산 신기항과 금오도 여천항은 배로 30분쯤 떨어져 있다. 두 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쉴 사이 없이 손님을 실어 날라도 승선할 수 없었다. 비렁길을 즐기려는 등산객들이 전국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하늘에 잔뜩 구름이 끼어 비를 걱정하며 배에 오르니 서울에서 왔다는 등산객들이 오랜만에 바다를 보아서인지 들떠있었다. "어떻게 여수까지 왔느냐?"는 물음에 "경치 좋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연신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배로는 못 가는 곳, 카약으로는 갈 수 있어요"

여객선은 연신 손님들을 토해내고, 일행은 목적지인 안도의 이야포해변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카약을 타고 안도를 일주하고 다음날 연도를 탐사하기로 했지만 바다 전문가인 이효웅씨가 첫 방문지로 연도를 택했다. 

"날씨가 흐리지만 외해로 나가는 연도는 파도가 세기 때문에 바다가 가장 조용한 오늘이 카약 타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 일행은 차에 싣고 온 카약을 조립하거나 카약킹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된 한 주민이 "그것 설치하다 날 새겠습니다"라며 웃었다. 3대의 카약은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 이효웅씨 카약 - 투어링 카약으로 고체재질, 자동차 위에 싣고 이동, 총길이 5.50m, 무게 20㎏, 폭 54㎝ ▲ 전영식씨 카약 – 폴딩 카약, 조립형 카약, 총길이 4.90m, 무게 18㎏, 폭 60㎝ ▲ 김동현씨 카약 – 인플레이트 카약, 2인승, 평소에는 접어뒀다가 사용할 때만 풍선처럼 바람을 넣어 사용. 총길이 6m, 25㎏, 폭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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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의 한 민박식당에서 먹은 점심. 맛있고 깨끗한 반찬이 20여 가지인데 9천원이다." 얼마든지 드릴테니 말씀만 하시라"는 주인의 말에 시골 인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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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을 끝내고 민박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깔끔한 반찬이 22가지가 나온 점심 식대가 1인당 9천원이다. 충청도에서 시집와 남편 고향인 안도에서 식당을 열었다는 주인 아주머니는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드릴테니"라며 시골 인심을 보여줬다.  

카약 복장으로 갈아입고 바닷가로 나가기 전 이야포해변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2006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회원들과 이곳을 방문해 6.25 당시 미군기의 민간인 피난선 폭격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이야포사건은 6.25 당시 민간인 350명을 싣고 부산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민간인 피난선이 미군기의 폭격으로 150명이 폭사한 사건이다. 당시 나는 미국방성 문서와 자료를 받아 이 사건을 규명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포기했었다.


6.25 시절 이야포사건은 노근리 사건의 재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인민군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고 하얀 무명옷을 입은 피난민들을 비행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기의 폭격당시를 목격했던 마을주민 정영완(81세) 할아버지가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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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약 체험을 출발하기 직전에 동네 할아버지(왼쪽에서 두 번째)와 기념촬영을 했다. 뒷편으로 보이는 이야포바다에서는 6.25당시 미군기가 민간인이 탄 피난선에 기관총과 폭탄을 터뜨려 150여명이 죽었다. 할아버지는 당시 장면을 목격하고 생생히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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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연도와 금오도 쪽에서 날아온 호주기(미군기를 오인해서 부른 호칭)가 저기 저 이끼 낀 바위 앞에 서 있던 배에 기관총사격을 하고 폭탄을 떨어뜨렸어. 배에 태극기만 달았더라면 안 때렸을 것인디. 당시 배에 사람을 많이 실었어. 사람도 많이 죽고 피흘린 사람이 많아 자급했제(기겁했지). 당시에는 저 방파제도 없었고 멸치배들과 뗏마들이 부상자를 실어 날랐제"

시계바늘이 오후 12시 50분을 가리켰다. 이효웅씨가 "때마침 정조 때라 파도도 없고 바람도 없으니 출발하자"며 앞장섰다. 배로 연도를 방문했을 적에 보면 파도가 상당히 셌지만 오늘은 조용하다. 하지만 조류에 밀려 원하는 목표지점에서 밀려 났다.

TV에서 보았을 때는 재미있을 것 같고 쉬웠던 카약이 의외로 힘들었다. 특히 2인승 카약은 두 명이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힘들다. 완전초보인 내가 뒤에 앉아 앞에서 방향을 잡고 리드하는 김 교수를 따라 하기에는 요령도 부족하고 힘들었다. 두 명의 전문가가 탄 카약은 속도도 빠르고 운항이 쉽다. 반면 김동현 교수와 내가 탄 2인승 인플레이트 카약은 안전성은 좋지만 속도가 느렸다. 

연도에는 수많은 해식동굴이 있었다. 배와 보트로는 이런 동굴 속에 직접 들어갈 수 없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효웅씨가 "카약의 장점은 배로는 상륙이 불가능한 곳에도 상륙이 가능하다"며 커다란 동굴을 탐사하자며 먼저 내린다. 

카약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동굴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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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 속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사진을 촬영했다. 밖에서 바라본 모습과는 또 다른 장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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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약이 아니면 불가능한 동굴착륙 체험이다. 배나 보트를 타고 동굴속에 들어왔다간 조류에 밀려 배가 좌초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50m의 동굴 속에는 박쥐가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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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에는 구리성분의 바위들이 많다. 동굴속에서 바라본 빛깔은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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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50m쯤 되는 동굴 입구에는 파도에 밀려 동글동글해진 자갈들이 층계를 이뤄 쌓여있다. 동굴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니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박쥐들이 날아다닌다. 여성의 생식기처럼 생긴 커다란 동굴 앞까지 들어갔다. 높이 100여 미터 쯤 되는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물 색깔로 보아서 굉장히 깊은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가다 일행이 쉬기로 한 곳은 남부마을이다. 부부처럼 보이는 노인들이 바닷가에 앉아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는 구경만 하고 여자가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부부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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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동굴 속에 상괭이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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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낚시질에 나섰다는 아주머니, 용인에서 퇴직 후 섬에 귀촌했다는 아저씨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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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경기도 용인에 살며 아내와 함께 섬구경 왔다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퇴직 후 올 3월초에 귀농했다. 노래미 한 마리를 잡은 아주머니께 "항상 이렇게 낚시질하세요?" 하고 질문했더니 얼굴 사진은 찍지 말라며 말문을 열었다.

"동네일하다 모함을 받아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의사선생님이 낚시질이나 해보라고 해서요. 바다를 바라보며 낚시질하다 보면 분노가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소리도 등대(연도를 일명 소리도라고 부름)가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렀다. 10㎞ 이상을 왔으니 그만큼의 거리를 노를 저어야 한다. 양팔과 어깨가 힘들다. 생각해보니 팔 힘으로만 20㎞ 이상을 오가니 당연하다. 군대시절 유격훈련 받던 때만큼이나 팔이 아프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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