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3S(SPORT, SCREEN, SEX)여! 이젠, 가면을 벗어라.

김광호 여양고등학교 교사

  • 입력 2015.06.17 09:06
  • 기자명 여수넷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이지성 작가의‘생각하는 인문학’에 푹 빠져있다. 어제 그 책에 나와 있는 일부를 인용하여 페이스북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살펴보겠다.

“현실에서 독서는 필요악인가요? 연평균 대한민국 국민들은 330잔의 커피, 120병의 맥주, 90병의 소주를 마시면서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현실에 대하여 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일 3시간 이상 스마트폰 하기, 3시간 이상 TV 보기는 가능한데 왜 책은 한권도 읽지 않는단 말인가? 이런 현실에서 임은 우리나라에도 미래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반문하죠?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놈의 독서야. 책 읽을 시간 있으면 돈이나 벌라고 말하곤 하죠. 그런데 왜 우린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수록 현실에서 행복지수는 그리 높지 않으며, 미래 또한 막막할까요? 깊은 생각이 필요한 아침입니다. ㅡ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아! 데카르트여! 당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갑니까? 혹자는 억지 주장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을 직시해보라. 다음의 내 이야기는 결코 어불성설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즘에서 3S(SPORT, SCREEN, SEX)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의 대표 주자이며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그들의 정체에 대하여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결코 이 3S로부터 그리 쉽게 빠져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3S의 정체는 무엇일까?

먼저 SPORT이다. 남성의 상징물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우리나라에 스포츠가 대중화된 것은 1980년 광주의 아픔이 있고 나서이다. 당시 불의의 정부는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프로야구를 만들었다. 광주 시민의 아픔은 산산이 부서져 허공 속에서 피눈물로 흘러내릴 때 많은 사람들은 프로야구에 흠뻑 빠져 열광했다. 그 이후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등 수많은 스포츠가 우리 앞에서 하염없이 서성였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시민들이 시각화된 스포츠에 하나 둘 빠져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운동이란 타인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 즐겨야 하는 운동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린 스포츠의 외각에서 자신이 행하는 몸놀림이 아니라 보기만 하는 운동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삼성이나 기아가 야구경기에서 다른 편에게 이기면 어떻고 첼시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축구에서 다른 편에게 지면 어떠한가? 흔히 있는 일이 아닐까? 아쉬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도 잘 모르면서 경기 결과에만 연연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늘도 내일도 스포츠에 빠져서 나와 사회의 참모습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린 내가 삶에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 도대체 왜 대리만족만하는 아웃사이드의 사람이 되어야한단 말인가.

둘째 SCREEN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여성의 상징물이 아닐까? 물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매일 스크린과 우린 만나고 있다. 멜로드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영상(물론 좋은 프로그램도 많다)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문제는 자신도 모른 사이에 스크린 속, 등장인물의 대사에 함몰되어 자신의 생각을 지워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뉴스의 내용이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지배하게 된다. 우린 스크린에서 수많은 장면을 접하곤 하지만 그들의 말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들의 말과 행동을 스펀지처럼 온몸으로 흡수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인생관으로 뇌에 안착시킨다. 정말 스크린은 생각 없는 바보를 양산하는 대표적인 자본주의의 상징물이다.

종종 아침 방송을 보면 불륜과 부정, 폭력 등등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친다. 촉수를 자극하는 등장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우린 온몸으로 답한다. 몸과 마음이 뜨거워지니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치 스크린에 나오는 주인공의 현란한 언행이 삶의 정석인 것처럼 보여주면서 우리의 건강한 삶을 모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나도 등장인물처럼 행해볼까라는 마약과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마치 저런 불건전한 삶이 행복인 것처럼 말이다.

셋째 SEX이다. 남녀의 영원한 로망이며 유토피아이다. 삶에서 성(性)은 정말 소중한 일부분이다. 아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건전한 성이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지친 육신을 불건전한 성으로 풀고 있다. 그 누구도 정확하게 말은 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우린 성(性) 만연한 사회에서 서성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정점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한, 육체적 쾌락을 우린 여려 핑계를 대면서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 사생활이니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국민이라면 깊은 반성과 건전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억나는가? 삼종지도(三從之道-여자는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복종해야한다.), 현모양처(賢母良妻 - 현명한 어머니, 착한 아내), 요조숙녀(窈窕淑女 - 고요하고 얌전한 숙녀) 등등 여자를 억압하는 단어들이 우리의 뇌에 각인되어 있다.

전통이며 관습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리 좋은 전통과 관습은 아닌 듯싶다. 여성을 남성의 피조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 여성을 사람보다는 물건인양 천대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인간의 삶이 숭고하다고 하얀 입술로 말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잠시 창밖을 쳐다보니 어둠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정말 많이 좋아하는 3S(SPORT, SCREEN, SEX)의 참모습을 밝은 햇빛에 드러내 보이면 어떨까. 지금까지 여타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이젠 그들(3S)의 가면을 벗기고 맨얼굴을 보여주면 어떨까. 더불어 우리도 과감하게 3S 버리고 당당하게 삶의 주인이 되어,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 어디선가 해맑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3S(SPORT, SCREEN, SEX)는 사라져야 한다.’라고

과연 우리 가슴에는 3S라는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참 용기가 남아 있을까? 3S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