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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없고 집도 없어서... 우리가 도우려고 해요"

어려운 이들 위해 모금 운동하는 스리랑카출신 노동자들

  • 입력 2015.06.24 10:15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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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 여수에 사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들이 한영대학교 운동장에 모여 크리켓시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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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21일) 오후 2시, 여수 인근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50여명이 한영대학 운동장에 모여 크리켓시합을 벌였다. 

5개 팀으로 나눠 크리켓 시합을 하던 그들은 빨래 방망이처럼 생긴 긴 배트를 들고 투수가 던지는 공을 맞추며 즐거워했지만 경기 내용도 룰도 모르는 나는 생소해 재미가 없었다. 

모임을 주선한 닛샨(26)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온 지 3년 2개월째다. 한국에 와서 외로워하는 친구들과 만나 스트레스도 풀고 밥도 먹은 후 모금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고국에서 알미늄새시 기술을 배우고 한국에 들어온 그에게 한국에 온 이유와 모금 내역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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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국의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주선한 닛산(오른쪽)과 다밋락말. 닛산은 여수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 선발돼 여수시장 상을 받았다(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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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알미늄새시 기술을 가지고 있어 큰형과 작은 형이 아버지한테 기술을 배웠어요. 하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밖에  일이 없어 돈 벌러 한국에 왔어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돈이 없어요. 고국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들이 많아요. 페이스북에 오른 고국의 한 가족을 돕기 위해 크리켓시합을 한 후 모금을 할 겁니다."

닛샨이 한국에서 체류하며 돈 벌 수 있는 기간은 4년 10개월이다. "한국은 사람도 좋고 법을 잘 지키기 때문에 한국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고 말한 그가 모금을 하게 된 동기를 설명해줬다. 

2개월 전 현장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친구가 다쳐 전남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있었다. 돈도 없는 친구를 위해 여수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친구들이 백만 원을 모아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괜찮다"며 거절해 돈을 조금 더 모아 어려운 스리랑카 사람을 돕기로 결정했다.

"그 사람들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남편도 없고 집도 없어서 우리가 돕기로 했어요. 우리 돈 많은 사람 아니잖아요. 지금 250만 원 모았어요."

여수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는 100여 명이다. 20명만 제조업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어업에 종사한다.  "앞으로 계속 모금 운동을 할 예정"이라는 닛샨에게 "스리랑카 정부가 도와주지 않느냐?"고 묻자 "대상자에게는 조금만 주고 공무원들이 많이 가져간다"고 대답하는 걸 보면 부패가 심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하는 닛샨의 얘기를 듣고 있던 다밋 락말(Damit Kakmal)이 끼어들었다.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에서 컴퓨터 사이언스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온 지 2개월 밖에 안됐다는 그는 영어를 잘했다. 그와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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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50여명이 크리켓시합을 하기 전 팀을 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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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는 열대지방이라 먹을 것이 많을 것 같고 좋은 대학에서 컴퓨터를 공부했으니 취직할 곳이 많이 있을 텐데 한국까지 왔느냐?"
"대학을 졸업한 후 컴퓨터관련 분야에서 2년간 인턴으로 일했지만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한국에 돈 벌러 왔어요. 스리랑카는 교육열이 높아 교육수준이 높지만 일할 곳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돈을 법니다. 컴퓨터를 전공했는데 지금 여수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게 당황스럽습니다."

다밋은 스리랑카가 살기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해줬다. 스리랑카는 인도가 지원하는 타밀반군과 정부군간의 치열한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이 파괴됐고 지금은 전쟁이 그쳤지만 피해 복구를 위해 많은 세금을 낸다. 따라서 전기, 식료품, 의식주 등의 생필품 가격이 매우 비싸다. 

다밋에게 "일본도 좋은데 왜 하필 한국에 왔느냐?"고 묻자 다밋이 스리랑카인들이 일본보다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일본인들은 자기들끼리만 대화해서 스리랑카인들이 외로움을 많이 느껴요. 한국에서도 친구들이 없으면 외롭겠지만 한국인들이 따뜻하게 대해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스리랑카 친구들이 많이 있어 외롭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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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에 사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본국에 있는 한 가족을 돕기 위해 모금을 했다. 닛산이 보낸 사진으로 사진 속 가족은 아버지가 병들어 죽고 집도 없는 가난한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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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인들이 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오기가 쉬운가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한국에 입국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한국어 시험에 합격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저도 대학시절부터 6개월 동안 한국어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어요. 합격한 후에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천명이나 됩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취직하면 보통 25만루피를 받는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친구가 원화와 스리랑카화의 환율을 계산해 알려주는 걸 보니 대략 1/10수준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한국이 살기 좋다는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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