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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인도 446개를 세 번 돌아본 사람

[인터뷰] 섬 사랑에 빠진 이재언 연구원

  • 입력 2015.06.29 09:02
  • 수정 2015.07.27 14:32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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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군의 74개 섬을 1, 2권으로, 진도군 48개 섬을 3권으로, 영광군, 무안군, 목포시, 해남군의 29개 섬을 4권으로, 고흥군, 장흥군, 강진군, 보성군의 28개 섬을 5권으로 묶었다. 앞으로 전북의 31개 섬을 6권으로, 제주도의 13개 섬을 7권으로, 통영시의 42개 섬을 8권으로, 여타의 경남 및 경북의 38개 섬을 9권으로, 충남의 32개 섬을 10권으로, 완도군의 57개 섬을 11권으로, 여수시의 48개 섬을 12권으로, 인천과 경기도의 43개 섬을 13권으로 엮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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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섬을 버렸어요. 어릴적 내가 살았던 섬은 똥돼지, 보리밥, 전기와 수도도 안 들어오는 열악한 환경이었죠. 그런데 목사가 되어 선교적인 마음으로 섬을 돌아보다 섬을 사랑하게 됐죠. 선착장, 물, 전기, 교통, 의료 등 열악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거든요. 복지 사업을 겸했고, 나중에는 아예 섬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원이 됐습니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자 작가인 이재언씨의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3400여개의 섬이 있다. 그 중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는 446개다. 그는 446개 섬을 혼자서 세 번이나 돌아보고 섬에 관한 인문학적 서적을 발간했다.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구경나갔어요. 그곳에서 기차, 전기, 자동차, 건물, 음식을 처음 보면서 문화충격을 받았죠.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어요." 

그는 섬을 떠나 서울에서 고학을 하다가 지인의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됐고 목사가 되어 고향인 완도군 노화도로 돌아와 주위의 14개 섬을 다니면서 선교와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기독교는 사랑이죠. 그래서 고향에 내려와 섬을 사랑하게 된 겁니다"라고 섬사랑 이유를 보탰다.  

이때부터 섬의 중요성과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섬의 매력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섬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국의 섬을 돌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재언 연구원은 서울에서 고학하는 동안 신문을 배달했었다. 신문을 배달하면서 사마천의 <사기>와 이중환의 <택리지> 등을 읽으며 뜻을 키워 나갔다. 그의 서재 앞에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아는 지인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격언 한 말씀만 들려 달라"고 부탁하면 꼭 이 글귀를 말해준다며 23년간의 답사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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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언 연구원의 애마인 4.5톤 짜리 등대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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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중 9번이나 배가 고장나 해경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2012년 6월에는 일행들과 서해안 탐사를 마치고 오던 중 신안군 압해도 복룡항에서 암초에 부딪혀 배의 침몰과 목숨까지 잃을 뻔 했습니다. 그 일로 부과된 벌금을 내지 못하여 순천 교도소에 몇 일간 갔다 왔어요. 저한테는 항해술, 글재주, 사진술, 돈도 배도 없었고 하나도 갗춰진 것이 없었지만 인내와 끈기, 열정 등 기독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의 섬>이라는 제목의 3권 분량을 계획했다가 7권으로, 다시 지역별로 13권을 최종 목표로 세웠다. <한국의 섬 기행> 시리즈를 준비하다가 1년 가까이 '전남일보'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모아 백과사전식으로 편찬했다. 책 속에는 섬에 관한 인문, 주산업, 관광, 역사, 문화, 전설, 지리, 애환 등의 거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다. 

이재언 연구원 집에  초대 받아 그가 보여준 견본서적은 학생들이 교과서로 사용해도 흠이 없을 정도로 정장이 예쁘고 내용도 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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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를 돌다 자신을 촬영한 이재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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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목사님!"이란 호칭으로 부르자 "목사님이라고 부르면 판이 깨져요"라는 말에 "판을 깬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섬사람들한테 직업이 목사라고 하면 말문을 닫아 버려서 연구원이나 작가라고 하며 막걸리를 한잔 같이 들이켜야 속마음을 보여 준다"고 부연 설명해줬다.   

없는 형편에 23년 동안이나 섬탐사 다니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었을 사모님한테 당시의 심경을 물었다.

"아이고! 섬 이야기만 나오면 징글징글해요. 섬 탐사는 돈, 시간, 위험, 생명담보가 걸린 일이에요. 누가 좋아하겠어요. 처음에는 1.47톤짜리 조그만 배로, 지금은 4.5톤짜리 배지만 옛날에는 해도 하나만 달랑 들고 나갔어요. 지금이야 장비도 좋고 핸드폰이나 있지만 바람이 안 불어도 걱정, 바람이 불면 더 걱정을 하고 살았어요. 사비를 수억 들었는데 정부가 나서서 해도 수십억 들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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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중문단지의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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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한국교회와 미국교회에서 후원금이 답지했고 통역장교를 하던 장남이 월급을 고스란히 보내줘 기름 값에 보탰다. 남이 안하는 일이라 쪽박을 차거나 대박을 치거나 둘 중 한 가지겠지만 언젠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에서 했는데 그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5년 전 목사직을 사임한 그는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으로 초빙을 받았고 출판지원까지 받게 되었다. 또한 '지리와 역사'출판사에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 백과에 '한국의 섬'을 제공하여 재정 후원을 받기도 했다. 

후임자가 나타나면 지도자로 가이드로 한 번 더 섬을 돌아볼 예정이지만 아직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는 요즘 드론을 배우고 있다. 섬 상공에서 정확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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