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멀리 돌산대교를 배경으로 촬영한 돌탑 옆에 정성래씨가 서있다. 다행이도 이 돌탑과 옆에 있는 돌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 |
ⓒ 오문수 |
"여수 시민의 한 사람으로 관광객유치에 도움이 될까 해서 돌탑을 쌓았는데 전부 허물어지고 두 개 남았어요. 처음에는 저도 몰랐어요. 허리와 다리를 다쳐 한 달 동안 산에 못 올라갔는데, 돌탑이 무너졌다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와서 알았어요. 참! 기가 막힙니다."
지난 6월 24일 <여수넷통>은 "돌탑에 생명을 불어 넣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정성래씨의 선행을 보도(기사 보기)했다. 이후 지역 방송국을 비롯해 서울 소재 방송국에서도 그를 취재하겠다는 전화가 왔단다. 하지만, 당시 정성래씨는 몸이 불편해 촬영을 잠시 연기했다. 하지만 그 사이 돌탑이 무너진 불상사가 터졌다.
예암산은 어떤 곳일까
여수 8경 중 제5경으로 꼽히는 예암산은 여수시 대교동 산 10번지 일원에 위치한 높이 96m의 나지막한 산이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어색해 높은 언덕으로 부를 만하다. 이곳은 인근 대교동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예암산은 구 도심권의 중앙에 위치해 동쪽을 보면 멀리 경남 남해도가 보이고, 가까이로는 진남관, 오동도, 여수엑스포장 Bib-O, 돌산 제1·2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돌산도, 경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섬들이 줄줄이 서 있어 다도해의 빼어난 경관을 관망할 수 있다.
▲ 무너지기 전의 돌탑 모습으로 저 멀리 돌산대교가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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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탑이 무너진 현장 모습. 두 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무너지기 전에 촬영했던 동일한 장소에서 촬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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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에 전신전화국을 퇴직한 정씨는 자택 뒷산인 예암산에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가 4년 동안 쌓은 돌탑은 큰 돌탑 20개와 작은 돌탑 70여 개. 큰 돌탑은 높이 1~2m로 작은 돌이 수백 개 들어간다. 작은 돌탑은 큰 돌을 3~5층으로 쌓아올렸다.
그는 돌탑의 정상에 갖가지 동물 형상의 그림을 그려 넣어 생명을 불어넣었다. 돌모양을 유심히 살펴보다 곰, 황소, 고래, 참새 등의 모양을 찾아내 그림을 그리고 돌탑에 올렸다고 한다. 정씨가 4년 동안 공들여 쌓은 돌탑은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예암산을 찾는 이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줬다.
누군가 고의로 돌탑을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내가 돌을 쌓는 모습을 본 한 아주머니는 커다란 돌을 머리에 이고 와서 돌탑에 보태라고 주셨는데 돌탑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낙담하겠습니까?"
정성래씨가 화가 나는 이유는 이것이다. 누군가 장난으로 탑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고의로 훼손했다는 심증이 있기 때문이다.
발로 밀어뜨렸다면 탑 바로 옆에 무너진 돌무더기와 동물 형상의 그림이 그려진 상층부 돌들이 인근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림이 그려진 돌들은 탑 인근에서 발견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예비군 참호나 깊이 파인 웅덩이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뿐만 아니라 2층, 3층으로 쌓은 여러 개의 돌탑이 아예 멀리 사라졌다. 정성래씨에게 혹시 원한을 살 사람이 있는가 물었다.
"혹시 누군가에게 원한 살 일은 없었습니까?"
"70 평생 살면서 남한테 좋은 일도 많이 했고 표창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남산동 노인당 총무, 통장 협의회 회장, 바르게 살기위원장, 새마을 회장도 지냈습니다."
▲ 돌탑이 무너지기 전 모습으로 주민들의 눈요기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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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여있던 돌탑이 무너져 굴러다니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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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에게 "무너진 돌탑을 어떻게 할 예정인가?"라고 묻자 그는 "지금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어요, 몸이 좋아지면 다시 쌓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어요"라면서 속상해했다.
기자가 대교동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탑이 무너진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묻자 담당자는 "알고 있습니다, 대교동 자랑거리를 만들었는데 참 어처구니없네요"라면서 "동에서도 누가 그랬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탐문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누군가 정씨의 탑을 고의로 무너뜨렸다면, 그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사람들이 (돌탑을) 보고 다 좋다고 했는데, 저걸 무너뜨렸으니…"라며 말끝을 흐리는 일흔 노인의 혼잣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