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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기적’ 사도와 한 짝을 이루는 섬, 낭도(沙島)

  • 입력 2015.08.10 09:08
  • 수정 2015.08.10 09:18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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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도마을 선착장에서 만난 어선

연륙된 여수 백야도에서 낭도까지 오고가는 이 배는 ‘대형 카페리호 3호’. 하루 3번 왕복 운행하는 이 배는 중간기착지로 여석(개도) 그리고 상·하화도를 거쳐 사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낭도에 이른다.

첫 배는 백야도에서 8시에 출발하고 그러면 종착지인 낭도에는 9시 15분에 도착한다. 거리는 그렇게 먼 곳이 아닌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낭도에서 여수까지 왕복하는 배가 하루에 한 번뿐이었기 때문에 이 섬에 들어가면 그 다음날 나와야 했다.

지금은 연륙된 백야도에서 낭도까지 하루 왕복 세 번 운행을 한다. 낭도 면적이 5.02㎢, 상산(上山, 280.2m)이며 여산과 규포 마을에 350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섬의 모양이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狼)자를 써서 낭도라 부르게 하였다가 이후 낭도의 모든 산이 수려하다고 하여 고을 여(麗)자와 뫼 산(山)자를 서서 ‘여산’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주민들은 여우 모양보다는 아름다운 산이 있다는 여산마을로 불러지길 더 바란다. 그래서 낭도초등학교가 아니라 여산초등학교로 이름을 지었다.

▲ 낭도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

낭도의 중심 여산마을

카페리호는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를 들어선다. 저 앞에 포구가 보인다. 바로 ‘낭도포구’다. 매립된 포구로 제법 긴 포구다. 그리고 좌우로 길게 이어진 마을의 풍경. 방파제 안에 들어서니 바다는 너무 조용하여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이어 카페리호는 선착장에 닿는다.

내리는 사람은 몇 명 있는데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낭도 선착장은 생각보다 크다. 작은 포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1991년도에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어 있다. 방파제와 물량장, 호안 등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어선은 별로 없는데 마을 앞에 항구를 만들면서 엄청 긴 방파제를 양쪽으로 만들었다. 풍랑과 태풍에서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지만 그 이후 마을 앞바다가 막혀서 썩어가는지 냄새가 고약하다고 한다.

배에서 내리면 왼쪽은 대합실 겸 쉼터인 정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른쪽은 매립지로 길게 이어진 접안시설. 일단 포구 주위를 돌아본다.

▲ 빗물통

사방이 탁 트인 ‘낭산정(狼山亭)’에 올라가 마을을 한 눈에 익힌다.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형형색색 지붕들을 이고 있는 마을 풍경이 지금까지 간 섬들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롭게 보인다. 마을 입구에 낭도산등산안내도가 있다. 그 옆에 ‘화정면 낭도리 여산마을‘이란 여산마을 유래비 겸 표지석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성명 미상의 강릉 유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섬에서 가장 큰 마을로 표지석에는 175세대에 307명이 산다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표지석을 세울 당시의 현황이다. 낭도는 면적이 5.02㎢로 현재는 더 많이 줄었다. 해안선 길이 19.5㎞이다. 여수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26.2㎞ 떨어진 섬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낭도산이 있다. 여산마을에서 규포 쪽으로 약 3km 지점에 있는 산으로 성산이라고 하는데 높이가 약 280.2m, 임진왜란 당시 봉화로 연락하던 곳이며 일제 때 측량하던 기점 십자표시가 지금도 있다.

마을 안에 보건소안내판과 함께 아무 표시가 없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풍상에 깎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슨 비석 같긴 한데 아무 표시가 없다. 옆 포구에는 작은 어선 몇 척이 정박해있는데 물이 빠져 바닥이 드러나 배가 땅 위에 놓였다.

그 방파제 뒤로 배에 도장(도색)을 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 앞으로 작은 길이 있는데 ‘여산6길’이다. 이 길이 낭도산 등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산행시간 왕복 2시간 정도. 마음 같아서는 계속 해서 산 정상까지 가서 봉화대까지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다시 나와서 해안길을 걸어 안으로 들어가면 파출소와 보건진료소를 지나 왼쪽에 농협이 나온다. 하나로마트도 있는데

물건을 살려면 농협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에 들어가서 빵이 있나 해서 찾았으나 없다. 대신 점심대용으로 초코파이를 살 수 밖에 없었다. 빵을 취급하지 않은 것은 유통기한 때문이다. 이곳은 유통기한 때문에 기한이 짧은 것은 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트도 농협직원이 다른 일을 보면서 관리하고 있다. 농협 뒤의 포구는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물이 하나도 없어 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회관을 비롯하여 노인회관 그리고 여자경로당 등의 시설이 있다.

그런데 전봇대와 노인회관 사이에 플랜카드가 하나 걸려 있다. 행정고시 최종합격을 축하한다는 경축플랜카드였다. 최종합격에 대해 대대적인 축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른쪽에 느티나무가 있다. 정자나무터로 구전으로는 약 300년이라고 불리어 오는데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오르막길이 하나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교회가 있다.

이 여산교회 뒤로 학교가 있는데 안일초등학교 여산분교다.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제법 큰 운동장에 2층짜리 건물이 들어서 있다. 부속건물도 여러 개 있다. 학교라면 있어야 할 조형물도 빠지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4월 13일 개교하여 2001년 3월 1일 여산분교로 격하된 것이다. 현재 학생 수는 네 명이다.

학교 뒷문으로 해서 나오면 밭이 보인다. 바람막이 하나 없이 그대로 속살을 비추고 있는 밭은 자갈이 반반이다. 말 그대로 척박한 땅이다. 언덕배기마다 골을 만들고 밭을 일궜다. 바다를 향한 밭은 억척스러움마저 느껴진다.

이런 땅에서도 농사가 될까? 이제 막 심어놓았는지 고구마 순이 시든 채 땅에 누워 있다. 섬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 같다. 동쪽에 낭도산이 있고 대부분은 낮은 구릉지이다.

▲ 규포마을 분교 모습

외진 마을 규포

밭 사이의 길을 타고 내려가면 2차선 국도(77번 일반국도)가 나타난다. 이 길이 바로 ‘낭도로’이다. 구불구불한 이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낭도의 두 번째 마을인 규포리가 나온다. 섬의 길 치고는 잘 닦인 국도다.

원래 이 길은 다리건설을 염두에 두고 닦아놓은 도로다. 적금도와 낭도를 잇는 다리는 원래 사도로 이어지게 되어있으나 사도로 잇는 사업은 접었다. 환경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다. 규포마을은 원래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을모양이 도장처럼 생겼다고 하여 ‘도장개’로 불렸다. 그러다가 낭도리에서 분리되면서 도장방 규(閨)자와 물가 포(浦)자로 써서 규포리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보기 드물게 낭도의 규포 마을로 가는 길에 구절초가 예쁘게 피어 필자를 환영해 주었다. 규포 바로 앞의 섬 둔병도가 마침 해가 지는 일몰 시간이어서 마을앞 바다가 둠벙 같은

호수가 한폭의 그림 같은 장관을 연출하였다. 20년 전에 규포 여객선 뱃길이 끊기고 나서 동네 노인네들은 산길을 이고지고 2.5km의 여산에 닿는 여객선을 타려고 다녔는데 지금은 도로가 생겨서 차들이 오고간다. 특히 규포교회 목사님이 차를 가지고 동네 어르신들의 발노릇을 해주고 있다. 규포에서 다시 발길을 돌려 여산포구로 향한다.

▲ 낭도중학교

폐교된 중학교

여객선이 닿는 선착장에서 좌측으로 ‘여산길’을 따라서 얼마 동안 걸어 들어가면 바닷가에는 모래밭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맞은편 왼쪽에 학교건물이 하나 나온다. 마을과 수백 미터 떨어진 바닷가에 외따로이 서 있는 낭도중학교 화양중학교 낭도분교이다.

학교명패에는 여천낭도중학교로 되어 있으나 2001년에 통폐합되어 지금은 화양중학교 낭도분교로 되어 있다. 이 학교는 섬의 크기만큼이나 운동장도 제법 큰데 운동장이 조용하다. 운동장과 뜰이 모두 잔디로 뒤덮여 있다. 수많은 학생들이 운동을 하며 뛰어 놀면 좋을텐데 1명의 학생이 놀기에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여수와 연륙이 되어 이 좋은 시설에 학생들이 힘차게 뛰어놀 날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면 좋겠다.

수업 중이라 그런가. 한때 학생 1명에 교직원 4명이 근무하는 섬 학교로 화제가 되었던 화양중학교 낭도분교는 1970년에 개교했다. 당시 전교생 4명 중에 3명이 한꺼번에 졸업하게 되고 입학생마저 끊겨 여학생 한 명만 남게 되어 부모가 여수로 전학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학교가 폐교가 될 것이라는 마을사람들의 설득으로 섬 어른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족적인 학교 분위기 때문에 도시로의 전학을 포기하고 남아있다가 지금은 아쉽지만 폐교된 상태이다.

주변에 조그만 해수욕장도 있고 여름에는 캠프와 수련회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또 도회지에서 청소년들이 틈을 내서 언제든지 체험 학습으로 활용되면 좋을 것 같다. 낭도를 떠나가야 할 시간이 되어간다. 낭도는 토, 일요일에는 농협 하나로 마트도 문을 닫고 모든 기관이 휴일이라서 그런지 더욱 외롭고 적막감만 돈다.

지금 한창 고흥 영남면과 적금도를 잇는 연륙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적금도와 낭도, 둔병도, 조발도를 잇는 대교들이 완공되면 여수와의 거리가 크게 단축되어 사도 낭도 관광과 고흥과 교통 사정이 크게 달라져 이 섬들을 보다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희망하면서 오늘도 묵묵히 섬여행을 계속한다.

▲ 규포 마을 바다 전경

낭도 개요

●낭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으로 여수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26.2㎞ 떨어져 있다. 면적 5.33㎢, 해안선 길이 19.5㎞, 인구는 209가구 350명(2014년)이다. 주변에 적금도, 둔병도, 조발도, 상·하화도, 사도가 있다.

●낭도 가는 길

1. 연륙된 화정면 백야항에서 대형카페리3호가 1일 3회 왕복(소요 시간 1시간 30분)

-출항 시간 08:00, 11:30, 14:50

2. 여수항 여객선터미널에서 태평양1호 1일 2회(소요 시간 2시간)

-출항 시간 06:10, 14:20

●지명 유래 섬의 생김새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狼) 자를 써서 낭도(狼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관광 명소

낭도리 공룡 화석지(천연기념물 434호) 여수 낭도리 공룡 화석지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하는 사도, 추도, 낭도, 목도, 적금도 등 다섯 개 섬 지역의 백악기 퇴적층으로부터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은 총 3,546점으로 사도에서 755점, 추도에서 1,759점, 낭도에서 962점, 목도에서 50점, 적금도에서 20점이 각각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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