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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의 섬 진도에서 만난 '하늘나라 우체통'

[여행] 역사와 문화, 신비가 깃든 진도를 가다

  • 입력 2015.09.15 08:57
  • 수정 2015.09.16 15:45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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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대교 모습으로 다리 바로 아래에서 명량해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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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2일), 진도에 사는 지인의 초대를 받아 진도를 다녀왔다. 역사와 문화, 신비가 깃든 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모를 사람이 없으니, 현장을 본다는 생각만 해도 가벼운 흥분을 느끼겠지만... 세월호 참사란 아픔을 겪은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만 다가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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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의 바닷길로 알려진 뽕할머니 동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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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지, 용장성, 남도진성 등의 호국유적지가 있지만 기실은 문화유적이 더 많은 곳이다. 국립남도국악원, 나절로 미술관, 진돗개테마파크, 장전미술관과 신비의 바닷길 등이 있고 무엇보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운림산방이 있다. 

소치 허련이 말년을 보냈던 운림산방

진도유스호스텔에서 1박을 하고 신비의 바닷길을 둘러본 후 곧 바로 운림산방을 방문했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말기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1808년~1893년) 선생이 말년에 그림을 그렸던 화실 이름으로, 1982년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이 복원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선생은 20대에 해남 대둔사의 초의선사에게 학문을 익히고 추사 김정희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남종화의 거목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의 화맥은 자손대대로 이어져 200여년 동안 5대에 걸쳐 9인의 화가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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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살았던 운림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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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치 허련 선생 4대손인 임전 허문의 운무산수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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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들렀다가 소치의 4대손인 임전 허문 선생의 운무산수화에 눈길이 갔다. 임전은 '안개화가'라는 별명답게 구름과 안개를 주제로 한 산수화를 그려 운림산방의 화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단순화법(사물을 생략해서 그리는 기법)으로 그린 운무산수화를 보면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다.

세월호 사건 1년 후에 세워진 '세월호 기억의 벽'

운림산방 구경을 마치고 팽목항으로 가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팽목항 방파제에 도착하니 몇 대의 관광버스가 도착해 있고 승용차가 계속 들어온다. 한결같이 침통한 얼굴들. 태평양을 향한 방파제 왼쪽에 수많은 타일이 붙어있다. 알고 보니 세월호 1주기를 맞은 지난 4월 16일 '그날의 일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세운 '세월호 기억의 벽'이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뒤  자신들만 탈출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도우며 구조를 기다리던 304명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단 한명도 살려내지 못했고 살아있는 우리는 부끄럽고 참담했다. 전국 26개 지역 어린이와 어른들이 타일 4656장에 쓰고 그림을 그려 세운  글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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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기억의 벽'에 적힌 글귀를 하나하나 읽어가는 학생.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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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04위의 영혼들 앞에서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그날의 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이제 우리 사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돈과 권력에 지배 받지 않는 민주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방파제 끝 부분에는 하늘나라로 보내는 '하늘나라 우체통'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 세웠다는 우체통을 설명한 송길원씨의 작품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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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나라 우체통'으로 세월호 참사 100일째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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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모양은 노아의 방주로 구원과 함께 새 생명, 새 나라를 향한 열망을 나타냈다. '기억'(ㄱ)과 '눈물'(ㄴ)을 집 모양으로 그려낸 우체함은 치유, 소망, 사랑을 기도하는 두 손이기도 하다. 두 개의 밧줄은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소통의 끈으로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하나'됨에 대한 다짐이다."

팽목항 끝부분에는 여수시민협 이현종 상임대표가 쓴 시가 걸려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시를 읽으며 가슴 아파한다. 교사인 이현종 대표의 제자 중 한명이 단원고 교사였고 학생들과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꽃이 되고, 별이 되어!'라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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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시민협 이현종 상임대표의 '꽃이 되고, 별이 되어' 싯귀가 현수막으로 걸려 있다. 교사인 이현종 대표의 제자 중 한명이 단원고 교사로 세월호 사고로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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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목련이 파르라니 떨며지고 있었다

검은 안개가 서해바다를 짓누르고 있는데
그런데, 엄마!
우리 배가 출항한대. 밤안개가 유령처럼 세월호를 끌고 있나봐
엄마! 꽝  소리가 났어!
배가 기울고 있어
그런데, 엄마!
가만히 있으래,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해
엄마! 선장이 시키는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겠지?
그럼 경찰이 와서 구해주려나 봐
엄마! 걱정마!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세금을 잘 냈는데
경찰이 와서 구해줄거야. 우리 구해주지 못하면 경찰도 아니지
대통령도 우릴 구하려 애쓰고 있겠지
다른 건 몰라도 약속은 잘 지킨다는 대통령이니까
선장도 선장실에서 애태우고 있겠지?
승객을 버린 선장이라면 동물원에나 가둬버려야 해
쇠창살 박힌 유리동물원 안에 갇혀서 
손톱으로 유리창 박박 긁다가 죽어 가는 고통을 알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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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목항 임시 숙소에는 유가족 중 한 세대가 아직도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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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말았다. 시가 적힌 현수막 앞에서 가만히 앉아 명상하는 사람. '세월호 기억의 벽'에 적힌 글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 학생. 모두가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각이라는 편리함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정치권은 여전히 싸움질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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