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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와 다리로 연결 희망을 꿈꾸는 섬

[이재언의 섬섬섬] 거문도 동도-2

  • 입력 2015.11.09 09:03
  • 수정 2015.11.09 09:06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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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은 사당 앞에는 유촌교회가 있고 그 앞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 눈에 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라고 한다. 그 앞으로 포장된 길이 산 쪽으로 이어진다.

이 길로 해서 계속 올라가면 동도의 동북쪽 해안으로 이어진다. 이곳 해안은 암석해안이 많고 남동 해안과 남쪽 해안은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간지대. 그러나 기복이 많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밭에는 파란색의 그물망이 덮여져 있다. 쑥을 보호하기 위한 차양막이다. 한 쪽에서는 아주머니가 등을 보인 채로 쑥을 캐고 있다.

포장길로 해서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에 물탱크가 있다. 길 역시 고지대의 길로 차량은 다닐 수 없고 경운기나 오토바이 정도 다닐 수 있는 그런 길이다.

밭들은 돌담으로 영역을 표시한 규모가 작은 것들이 많다. 고지대일수록 돌담이 어른 키보다도 더 높다. 그러나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빈집들이다. 그래서인가 높다란 돌담 사이로 톡톡 튀어나오는 고양이들. 그에 비해 아래에 있는 집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왼쪽으로 삼호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서도의 장촌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밭에는 사람들이 제법 보이는데 그 외에는 별로 만나지 못한다. 한참을 걷다보면 역시 위로 올라가는 시멘트포장길에 닿는다. 이 길 역시 해안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길로 계속 가면 북쪽 해안으로 떨어진다.

왼쪽 내리막길, 역시 경운기 한 대 정도 지날 수 있는 이 도로의 이름은 ‘유촌2길’이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집들. 여기를 벗어나면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나타난다. 더러 민박집들이 몇 채 있다. 그 중에는 조립식 건물로 된 민박집도 있다. 그 중 하나인 오른쪽으로 ‘샬롬’이라는 낯선 이름이 보인다.

이곳에 아주 오래된 박달나무가 있다. 유촌교회 장로집으로 주인은 이곳 토박이로 14대 째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부터 박달나무가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오래된 나무다. 주변에 동백나무에 둘러싸인 박달나무가 보인다.

실제로 동도마을은 380여 년 전 충주 추씨, 경주 김씨, 밀양 박씨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후 장흥사람 추씨(秋氏)가 섬에 들어왔고, 이로 인하여 거문도에는 장흥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상거래도 주로 장흥하고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음력 섣달 그믐날에 최초로 이 섬에 온 추씨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박달나무 역시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동도길로 내려오면 북쪽 방파제 바로 근처. 남방파제 부근에서는 도로포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트럭이 오가고 지게차도, 미니기중기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한 쪽에서는 콘크리트를 쏟아붓고 있다. 북방파제에는 각종 공사도구가 쌓여있다.

길지 않은 방파제 끝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등대가 있는 방파제 부근에서 다리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서도 장촌마을과 동도 유촌마을을 잇는 이 다리가 바로 ‘거문대교’로 길이는 1.2㎞로 알려지고 있다. 오는 2014년 말 준공 예정인 이 교량이 완공되면 기존 서도와 고도를 잇는 ‘삼호교’에 이어 섬 일주에 필요한 두 번째 교량이 들어서는 것이다.

▲ 백도삼선암

방파제 끝에는 부잔교와 함께 부교가 있다. 부교 옆에는 몇 척의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여기서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집들이 호안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뒤로는 낮은 구릉지. 맞은편 방파제에는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어 대조를 이룬다. 서로 마주보는 형태의 방파제로 되어있다.

쾌속선이 닿는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죽촌마을로 가는 길이다. 선착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왼쪽으로 동굴이 하나 보인다. 콘크리트동굴인데 그다지 긴 편은 아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이내 안쪽 하수구와 이어진다. 그 옆으로도 동굴이 있는데 T자형으로 이어진 듯싶다.

용도는 모르겠으나 하수구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도 아닌 것 같고. 다시 걷다가 역시 왼쪽 암벽에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굴뚝 같은 것으로 밑부분은 시멘트포장이고 위는 돌로 만든 원통형이다. 사각형의 통로가 있는데 사람이 다니는 것은 아니고 불을 떼웠나 싶기도 하다.

이어 마을로 들어서면 ‘죽촌마을’.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역시 밭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밭에는 푸른 그물망들이 널려있다. 유촌마을에 비해서는 그다지 높은 지대까지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다. 여기서 바다를 바라보니 앞바다는 온통 양식장이다. 이곳 역시 공사를 위한 분위기 탓에 다소 어수선하다. 온갖 공사도구가 널려있다.

마을 입구 쪽에 북방파제가 있다. 이곳 역시 두 개의 방파제가 있는데 이곳은 유촌마을과는 달리 양쪽 방파제 끝이 꺾였다. 반원형 형태의 포구다. 북방파제 끝에 부교와 부잔교가 있고 안쪽에 대부분의 배들이 정박해 있다. 방파제 끝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높은 곳이 바로 이곳에서 가장 높은 246m의 망향산이다.

방파제 입구 맞은편 ‘큰길민박’ 옆으로 난 좁은 길목. 약간 경사가 진 오르막길이자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이 주위가 ‘죽촌3길’이다. 올라갈수록 폐가들뿐이다. 길에 심어진 빨간색의 소화전을 지나면 예전에 초소로 사용되었을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여기서 다시 샛길로 들어서면 가정집이 나타난다.

그 뒤는 밭. 밭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유촌마을에 비해 빈집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죽촌2길’ 이 주위에는 민박집이 몇 채 보인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포장길이 길게 나 있는데 이 길 역시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계속 가면 동도의 동쪽 해안으로 떨어진다. 산길 주위로 역시 쑥밭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올라갔다가 다른 길로 해서 내려가다 보면 중간에 마을회관이 보이고 더 내려가면 해안 물량장 앞. 바로 대합실이 있는 곳으로 떨어진다. 동도와 고도를 잇는 도선이 닿는 곳이다.

길모퉁이에 위치한 ‘죽촌슈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동도 보건진료소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죽촌교회. ‘죽촌교회’는 1972년 개척되었으니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다.

죽촌슈퍼를 지나면 남방파제에 닿는다. 남방파제 앞 물양장이 상당히 넓다. 물양장 한 쪽에 2층 건물로 아주 깨끗한 ‘죽촌횟집’이 자리하고 있다. 물양장 오른쪽으로 방파제가 이어지는데 이곳 방파제는 꺾여 들어간다. 입구 쪽 튀어나온 부분에 노란색의 기중기가 있다. 북방파제와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폭도 아주 좁은 편으로 길이도 짧다.

기역자 형태로 된 방파제 끝으로 가면 또 다시 오른쪽으로 짧게 꺾여 들어간다. 방파제 양쪽으로 배에 올라타기 위한 계단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방파제 끝에서 바다를 보면 오른쪽으로 다리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는 아주 긴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 뒤가 바로 고도. 고도의 빨간 등대와 동도의 하얀 등대가 한 쌍을 이룬다.

역사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섬을 떠나면서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입구에 있는 가두리 해상 양식장을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해안가에는 양식 어류들의 사료를 저장하는 컨테이너 박스의 냉동 창고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에 가두리 양식을 도입한지도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가두리 양식이 시작되며 어린아이 울음소리 들리지 않던 어촌에 다시 생기가 돌았고 소득 수준도 대폭 향상되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IMF 경제 위기는 어촌을 피해가지 않았다. 더구나 가두리 양식장이 전국 각지에 난립하고 값싼 중국산 활어 수입, 높아져만 가는 사료 가격으로 인한 어촌의 피해는 커져만 갔다.

또한 가두리 양식에 큰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태풍 등 자연재해뿐 아니라 부유물로 인한 내해(內海) 가두리 양식장의 오염과 적조 현상은 매년 양식 어민들의 큰 골칫거리이다. 결국 내해 가두리 양식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거문도 등의 외해(外海) 가두리 양식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청정 해역으로 어류에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이 없는데다 수온 역시 10℃이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폐사율이 적고 품질이 좋다. 그렇지만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내해나 외해나 마찬가지이다.

동도의 양식 어민 신정철 씨는 2008년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봤다고 한다. 8억여 원 어치의 어구와 어류를 한꺼번에 잃은 그는 “적자 정도가 아니라 거지 됐다”는 말로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라고 한다. 어류 값은 절반가량이나 내렸지만, 사료 값

은 두 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수협 등에서 제공하는 사료 값이 문제라는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두리 양식장에서 나와 동도에서 거문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 거문도 지도

동도는 왠지 다른 섬에 비해 초라하고 활기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거문도는 이름난 관광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고, 여수에서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은 손죽도와 초도를 거쳐 오전에 한 번 동도항에 잠시 들른 후 고도의 거문항에 기항한다. 관광객들도 대부분 고도 여객 터미널에서 내린다.

섬사람들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어딜 가든 배를 타야 한다. 특히 동도 같은 먼 섬은 겨울철에는 그야말로 유배지나 마찬가지다. 병이 나면 치료받을 병원도 변변치 않다. 통원 치료를 받을 만한 병도 여수시내까지 나가 며칠 머물며 병원에 다녀야 한다. 아이들 학교 보내기도 힘들고 제대로 된 문화 시설도 없다.

이로 인해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게다가 주거 환경 개선비용도 만만찮다. 동도가 여러 가지 조건이 좋지 않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동도유촌 마을과 서도 장촌 마을을 잇는 연륙교가 최근 개통된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제3차 도서종합개발 10개년 계획(2008)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 섬을 잇는 총 길이 580m의 다리가 건설되어 거문 군도가 하나의 커다란 섬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동도 개요

동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딸린 섬으로 동경 127°19′, 북위 34°02′, 고흥반도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면적 3.43㎢, 해안선 길이 12.5㎞, 인구는 147가구 312명(2010년)이다.

전라좌수영에 딸린 거문도를 이루는 한 섬으로서 거문도 동쪽이므로 동도라 했다.

동도(거문도) 가는 길 여수 여객선터미널에서 줄리아아쿠아호 1일 2회 운항(소요 시간 2시간 10분)

-출항 시간 여수→동도 07:40, 13:40

-출항 시간 동도→여수 10:10, 16:40

☎여수항 여객선터미널 061)663-0117, 거문항 061)666-8215

●관광 명소

귤은 사당 1814년 동도 유촌리에서 태어난 귤은 김유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1904년 세운 사당이다. 김유 선생의 호는 귤은이고 자는 사양이니 거문도가 배출한 거유(巨儒)였으며, 노사 기정진 선생의 문하에 들어 학문을 닦아 군계일학으로 재주가 뛰어났다.

향리에 낙영제를 세워 영암·장성·완도 등지에서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제자들이 모여들어 북학의 발상지인 양 대성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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