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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독 시험'이 가능한 고등학교, 이유는?

[이런학교④]여수 석유화학 마이스터고를 찾아서

  • 입력 2015.12.15 08:57
  • 수정 2015.12.15 08:58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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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삼포시대다. 삼포란 취직을 앞둔 20~30대 청년들이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하는 시대를 일컫는다. 2000년대 유행하던 이 말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최근에는 삼포를 넘어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 포기)와 칠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 꿈, 희망 포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단어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하늘을 찌른다. 한때 대학 졸업장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렀다. 우골탑은 어려운 형편이지만 학비마련을 위해 가장 큰 재산이던 소를 내다팔아 자식을 가르쳤던 유골이란 뜻이다. 당신이 못 배웠으니 자식이라도 많이 배워 무시당하지 말라는 부모세대의 한 맺힌 절규가 담겨있다. 오늘날에도 대학문은 여전히 드높기만 하다. 

100대 우수학교로 뽑힌 '여수 마이스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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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을 앞둔 공정운전과 3학년 3반 학생들이 인터뷰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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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전에 지금의 한국경제를 일군 산업 현장 노동자들의 학력은 대부분 '고졸'이었다. 허나 시대가 바뀐 지금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대다.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스펙을 쌓아야만 취직할 수 있으니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하다.

하지만 이를 비웃는 학교가 있다. 바로 마이스터고인 전라남도 여수 석유화학고등학교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많은 학생들이 대기업 정규직에 합격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일 마이스터고를 찾았다. 

첨단 장치 산업에 종사하는 석유화학 업종은 연봉이 높기로 소문났다. 긍정과 창의로 석유화학을 선도하는 글로벌 마이스터고의 올해 취업률은 80.2%(12월4일 기준)다. 3학년 전교생 106명 중 85명이 취직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음에도 50여 명이 정규직으로 합격했다. 이들은 한국수력원자력공사, 한국전력공사, LG화학, 롯데케미칼, 삼성전자, 삼성SDI, 여천NCC, 한화케미칼 등 공기업과 대기업에 취직했다. 물론 중소기업에도 30여 명이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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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만 교장이 학생들이 만든 작품인 열교환기를 설명하고 있다. 기업마인드로 학교를 운영하는 이곳은 인재양성을 통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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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조영만 교장은 "이곳은 인재 양성을 통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면서 "선 인턴 취업약정을 맺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그의 말이다. 

"군 미필자를 선발하는 새로운 인사제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석유화학 산업은 고도의 전문기술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한 번 근무하면 연속근무를 해야 밥값을 할 수 있죠. 군대를 다녀와 연속근무를 해야 합니다. 취업자 80여 명 중 절반은 취업을 나갔고 나머지 40여 명은 군대를 다녀온 후 근무하기로 합격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이 학교의 모태는 1999년 전자화학고에서 출발했다. 처음엔 정원을 채우기조차 힘들었지만 2012년 마이스터고로 재탄생 되면서 180도 달라졌다. 마이스터고가 된 후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 여수시에서 110억을 지원받아 전교생 기숙사를 건립해 새로운 시스템의 교재로 수업이 시작됐다.

입학과정도 까다로워졌다. 지원자는 중학교 내신 50%와 심층면접 50%를 통해 선발된다. 면접은 여수산단 인사팀장이 직접 참여한다. 특히 면접전형에 '니코틴 검사 규정'을 두어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최하위 면접점수의 차점을 부여해 합격이 불가능하다.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면 선도위원회가 열려 기숙사에서 퇴출된다. 올해 선발된 내신 성적 지수는 상위 18%대다. 주요학과는 공정운전과, 공정설비과, 공정계전과로 나뉜다. 이곳에선 고등학교와 전문대 5년간 과정을 3년으로 압축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진다. 학생들은 보통 4개 이상의 자격증을 기본으로 취득한다.

무감독 시험은 이 학교의 강점이다. 핵심은 '정직'에 있다. 전국 1만2000여 개 학교 중 무감독 시험을 치르는 학교는 10개 내외다. 전남에선 최초다. 전교생이 태권도를 기본으로 배우며 감사일기도 써야 한다. 특히 화장실에서 실시하는 치킨파티는 이곳 화장실이 얼마나 청결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80억이 투입된 전 학년 기숙사 생활관은 현대식이다. 이곳에서 공동체 의식을 통한 인성교육이 길러진다. 특히 9일 전남교육청이 발표한 교육부가 선정한 '제13회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이날 3학년 학생들과 학교를 직접 둘러봤다. 마침 시험기간이라 교실에 적힌 무감독 시험이 치러지는 교실을 찾았다. 칠판에는 "무감독 시험에 있어 학칙을 준수하고 정직한 여수화학고인이 될 것임을 나의 명예로운 양심 앞에 선서한다"라고 적혀있다. 

무감독 시험이지만 커닝은 꿈도 못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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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감독 시험을 실시한 교실 칠판 쓰여진 선서에 '정직'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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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만난 공정운전과 1학년 이성재, 박건호, 손영진 학생은 무감독 시험에 대해 묻자 "양심과 석유화학고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커닝은 생각도 못 한다"라고 말했다. 또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들의 취업에 대해 "그 동안 선배들이 많은 노력을 했기에 당연한 결과다"라고 부러워했다.

경기도 백마중에서 이곳으로 진학한 공정계전과 1학년 이재영 학생(여)에게 왜 이 학교를 택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솔직히 취업하기 위해 왔다"면서 "일반고를 진학하면 대학에서 4년을 더 공부한 뒤에 취업해야 하지만, 이곳은 시간도 단축되고 더 빨리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취직을 앞둔 3학년 선배들은 어떨까. 롯데케미칼에 취직한 공정운전과 3학년 남형준 학생은 "사실 전에는 낯을 많이 가렸는데 입학 후 교장선생님이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이제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청년이 되었다"면서 "산단에 가면 안전이 제일 중요한 만큼 산업안전 분야의 명장이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여천NCC에 합격한 공정운전과 3학년 김유빈 학생은 "학교에서 특채로 지원했고 면접 2번을 거쳐 합격했다"면서 "여천NCC에서 고졸팀장이 되는 것이 꿈이다, 열심히 일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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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에서 만난 공정운전과 1학년 이성재, 박건호, 손영진 학생이 무감독 시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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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실린더를 제작하는 ENF테크놀로지에 합격한 공정운전과 3학년 임정명 학생은 "중소기업에 취직하지만 선생님께서 사회에 나가서 경력을 쌓고 자기 계발을 해서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다"면서 "실력을 쌓아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3년간 학교를 다닌 소회에 대해 같은 반 김대경 학생은 "중학교 3학년 때 인문계로 갈지 마이스터고로 갈지 고민 많이 했는데 막상 이곳에 들어와서 공부하다 보니 잘 들어왔다는 확신을 가졌다"며 "자격증도 6개 따고 LG화학에 취직해 감사할 따름"이라며 진로 선정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4년간 근무한 김소영 교사는 "옛날에는 학교 일찍 와라, 담배 피우지마라 등 생활지도 면에서 힘들었는데 마이스터고로 전환한 이후 목표가 명확한 아이들이 진학했기 때문에 꿈을 위해 엄청 노력 한다"고 말했다. 이어 "24시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부모의 정을 그리워 한다"면서 "이 부분을 사감선생님과 교사들이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보람도 크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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