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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숨겨 있을 법한 작은 섬들의 천국

[이재언의 섬섬섬]-초도 3

  • 입력 2015.12.21 15:05
  • 수정 2015.12.21 15:11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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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여기저기를 구경하고는 왔던 길로 해서 해안일주도로로 다시 올라간다. 해안도로는 산을 깎아 만든 관계로 왼쪽 산은 완전히 돌로 된 옹벽이다. 오른쪽으로 바라보이는 바다풍경들. 정말 섬들이 많다.

둥글섬·진대섬·구무섬·추섬 등 초도 앞에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섬들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다보면 바로 앞에 세 개의 섬이 있는데 나란히 붙어있는 형국이다.

그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섬이 ‘안목섬’이다. 바로 초도에서 유일하게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다. 신비의 바닷길이라고 하면 진도와 여수의 사도를 우선 떠올리게 되지만 초도의 신비의 바닷길도 꽤 멋스럽다. 사리 때를 전후해 한 달에 4일 정도 본섬과 안목섬을 잇는 바닷길이 온전히 열린다. 그 거리는 500m 정도, 폭은 30m에 이른다.

안목섬은 예로부터 초도 사람들에게는 보물창고로 불리던 곳이다.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갯가에서 멍게·해삼·전복·소라 등 다양한 갯것들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잡은 갯것들은 지금까지도 주민들의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사실 이곳은 지금도 마을주민들이 삶을 꾸려가는 생활터전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길은 꺾어지고 오른쪽은 제법 넓은 광장이 있다. 그 아래는 큰 산이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활용해도 좋을 공간을 벗어나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이 바로 정강해수욕장 가는 길이다. 해수욕장 가는 길은 경사가 제법 크다. 겨우 승용차 한 대 지나다닐 수 있는 구불구불한 시멘트길을 타고 내려간다.

 

해안길에서 해수욕장에 이르는 길은 걸어서 10여 분 정도 걸린다. 내려가다 보면 중간지점에 건물이 들어섰던 공간과 폐건물 그리고 아직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정강마을이라고 한다. 겨우 한두 채 정도만 살고 있는 듯싶으나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고 사람이 살고 있을 듯한 건물의 전기계량기를 보니 움직이지 않는다.

포구를 겸하는 정강해수욕장은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다. 대풍해수욕장과는 달리 백사장으로 이뤄진 정강해수욕장. 울창한 상록수림과 모자바위 등 기암괴석이 아름다우며 울창한 상록수림과 깨끗한 바닷물이 자랑이다. 주위로 멋스러운 송림과 기암절벽이 솟아있다. 그러나 마을이 폐허가 되다시피한 관계로 주변에 가게가 없는 게 아쉬운 점이다. 음수대와 화장실 그리고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다.

해수욕장 안으로 더 들어가면 포구가 나온다. 갯바위 위에 시멘트길을 만들어놓은 이곳을 지나면 짧은 방파제가 나온다. 방파제가 있는 이곳은 다소 파도가 센 편인지 외해 쪽에는 삼발이가 쌓여있다. 그 기암괴석이 빚어낸 해안절벽이 이어진다.

간이선착장이 있는 이곳은 마을이 있었을 때는 포구의 역할을 하였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는지 방치상태다. 그래도 모래밭과 포구의 조화, 그것만으로도 좋은 휴양지일 듯싶긴 하다.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어 해안일주도로. 시간을 보니 어느 새 1시가 훌쩍 넘어가버렸다. 1시 15분. 앞으로 1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을 것 같다는 계산. 일주도로를 계속 걷다보니 오른쪽 내리막길이 있는데 아무 표시가 없고 건물 하나만 있다. 농장인 듯싶어 계속 걷는다. 이어 내리막길이 나타나는데 저만치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리어카를 끌고 올라오고 있다. 의성마을을 물어보니 저금만 더 가면 있단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서기 전 왼쪽에 묘가 한 기 보인다. 그리고 대리석으로 된 비석이 제법 큰 편이다. 바로 ‘통정대부 온양방공 초도입향조 행적비’다. 그리고 그 맞은편 바닷가 쪽으로 보면 해안가와 마을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의성마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고래가 많이 살았다는 ‘고라짐’ 경촌마을이라는 곳이다. 계속 해안일주도로를 타고 가다가 오른쪽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어 그 길로 돌아선다. 직진하면 의성마을 입구와 대동마을로 이어지는 일주도로의 연속이다.

 

삼거리. 차 한 대 다닐 수 있는 조그마한 내리막길. 길 오른쪽에 제법 넓은 공간과 더불어 슬레트지붕을 한 긴 건물이 한 채 보인다. 멀리서 보면 농가일 것 같지만 이곳이 분교터다. 여기저기 흑염소가 노니는 운동장은 잡초로 무성하고 학교 건물 자체는 완전히 폐가다. 창문도 없이 합판으로 다 막아버렸다. 아마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듯싶다. 떨어져 나간 대문이 없는 교문은 계단으로 이어진다. 학교 담벼락에는 ‘위장평화 속지 말고 너도나도 간첩신고’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마을에 들어서니 폐가가 더러 보인다. 공동우물도 폐허가 되어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 해안길로 해서 다시 나온다. 이곳에서 관광안내도에 나와 있는 의성해수욕장을 찾았으나 없다.

제법 젊어 보이는 마을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해수욕장을 모른다. 이곳은 의성마을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지점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잔돌이 많이 있는 해변이 있는데 이곳이 해수욕장으로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법 길게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의성마을 번화가가 나온다.

전형적인 시멘트해안길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니 공공기관 건물 몇 채가 보인다. 우체국을 비롯하여 마을회관 등이 보여 마을 중심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포구 끝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항만시설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청정 해역으로 초도 근해에는 수산 자원이 풍부하여 문어 삼치 방어 등을 어획하며 톳과 미역, 전복, 소라 등이 공동 어장에서 공동으로 생산해 소득 규모가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일단 기반을 잡으며 섬을 떠나버리곤 한다. 전복이 특산물로 꼽힌다.

우체국을 나오면서 입구에 커피가 마련되어 있었다.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인데 커피 한 잔 타마시면서 밖으로 나왔다. 포구 주변을 둘러본다. 포구 안은 시간 탓에 물이 한참 빠진 상태였다. 포구는 대동마을에 비하면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다. 근처에 차양막을 한 버스승강장이 보이는데 학생들을 위한 통학차 대기소였다.

 

마을 공동묘지 부근의 ‘솜널이’란 지역의 바위부근에서 철이 많이 나와서 한때는 ‘이성금’이란 이름을 가졌다는 의성마을은 생각보다는 자그마한 어촌마을이었다. 고흥 녹동항에서 거문도를 거쳐 여수로 나가는 쾌속선은 대동리 선착장이 아닌 이곳 의성리 선착장으로 들고난다. 이 마을에서 여수 민선 3기 시장과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동네이기도 하다.

초도는 지난 1978년 삼산봉 계곡에서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전깃불을 밝혔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한데도 이곳 의성마을만 물 사정이 나빠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포구 대합실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커다란 나무와 더불어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비석은 공덕비이고 그 위 벼랑에 분재처럼 서있는 나무는 ‘은혜갚은 팽나무’다. 의성마을에는 이 외에도 ‘상술박엉에서 죽은 처녀’, ‘벼락맞은 이무기’에 관한 전설 등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선착장이 있는 항구 쪽에는 크레인이 멈추어 있다. 그리고 대합실 주위는 넓은 물양장이다. 대합실 앞에는 개 한 마리가 혼자 놀고 있다. 바로 옆에는 컨테이너박스로 된 사무실이 있는데 의성항감독실이다. 작년 3월에 착공을 하였다는데 준공은 2012년으로 되어 있다.

이곳 물양장에서 성산봉을 바라본다. 최고봉인 상산봉(339m)에서 바라본 일출과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진막-목섬 간 바다 갈라짐 현상은 초도만의 자랑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 굵은 바위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춘 것 같은 상산봉의 모습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상산봉 정상에는 막힘없이 활짝 열린 다도해의 풍경이 기다린다. 말 그대로 파노라마같이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 의성마을을 구경한다. 경사진 지대라 마을길이 다른 마을처럼 구불구불하고 돌담이 많다. 그만큼 바람이 많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올라갈수록 빈집이 많이 나타난다. 곳곳에 공동우물이 많다. 사용되는 것도 있지만 사용되지 않아 폐쇄된 것도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심하게 지나칠 방치되다시피한 효자각도 있다. 예전에는 상당한 의미를 둔 것 같은데.

다시 샛길인 오르막길로 해서 일주도로 쪽으로 나간다. 바람이 유난히 세차게 불어댄다. 그래서 ‘바람재’라 했던가. 안 그래도 오르막 구간이라 걸음이 더딘데 바람까지 세차게 부니 한 걸음 옮기는 게 쉽지 않다.

한 번씩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면 바람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다. 섬에서 불어대는 바람의 위력을 잠시나마 실감할 수 있다. 계속 가면 대동마을이다. 그리고 그 중간지점에 예미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밭이 많다. 어업을 주된 생업으로 하지만 농경지가 많아 보리·콩·고구마 등 농산물의 산출량이 많다.

초도에는 식당도 몇 되지 않는다. 대동리에서는 초도어민회관 1층에 있는 식당이 유일한 곳이다. 백반(5천원)에서 전복 해삼 활어회 매운탕 등 다양한 메뉴가 구비돼 있다. 가게와 슈퍼는 대동 의성 진막 모든 마을에 한 곳 이상씩은 있어 물이나 음료수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다.

참고로 1970년대 후반까지 초분을 했다고 하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초분은 음력 2월에 땅을 다루지 못했을 때와 출어기간이 길어 부모가 사망하면 초분을 하여 시체라도 보려는 마음에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 개의 마을에서는 각기 당제를 올리고 있는데 대동마을은 당제, 음력 초하룻날 상당, 하당에서 제를 올리고 진막마을 당제, 음력 초하루, 상당, 하당에서 마을 공동자금으로 제를 올린다. 그리고 의성마을 당제, 그믐날 간조 시, 마을 앞 해변가에서 마을의 안녕, 해상안전,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구전되는 민요로는 물질할 때 부르는 노래 등이 있다.

3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한두 사람 나타나기 시작한다. 배를 타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남자가 오더니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매표를 시작한다. 초도에서 여수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다시 거문도까지 갔다가 여수로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시간만 따져도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배를 타고 다시 거문도로 향한다. 아침에는 초도에서 바로 여수로 가지만 오후에는 초도에서 거문도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3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나 교통편 덕분에 섬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하지만 섬마을의 고생이 하나하나 느껴져 어깨에 한 짐을 얹은 듯 무겁다. 다시 초도에 왔을 때는 그 짐이 가벼워 지길 바라며 섬을 떠난다.

초도 개요

●초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딸린 섬으로 동경 127°15′, 북위 34°13′,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77㎞, 거문도에서 북쪽으로 18㎞ 해상의 여수와 제주 중간에 위치한다. 면적 7.719㎢, 해안선 길이 22.6㎞, 인구는 113가구 217명(2010년)이다. 주변에는 솔거섬·안목섬·말섬 등의 작은 섬들과 손죽도·평도·광도 등의 큰 섬들이 산재해 있다.

●지명 유래 염씨가 섬에 처음 들어와 구미리(仇味里)라 하여 그렇게 불리다가 후에 풀이 많아서 초도라 부르게 되었다고한다. 조도(鳥島)라고도 한다.

●관광 명소

모자(母子)바위(수리망대) 대동 마을 북동쪽에 있는 모자바위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왜군에게 잡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와 아들이 돌로 변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 이 바위는 수리망대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큰 독수리가 날아와 왜병이 몰려올 기미를 보이면 크게 울부짖으며 공중을 빙빙 돌아 우리나라 군사들에게 이를 알려 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2000년 지진으로 인해 바위의 원형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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