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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해녀가 사는 그 섬에 가고싶다

강태공들은 다 가봤다는 어장터, 추포도

  • 입력 2016.02.12 13:08
  • 기자명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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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포도 바다에서 본 최고의 낚시섬 추포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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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답사한 추자면 추포도는 제주도에 딸린 유인도 중 가장 작은 막내 섬이다. 행정 구역은 제주도지만 101년 전에는 전라남도에 속해서 그 문화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섬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몇몇 이유가 있다. 대표적으로 낚시 천국. 강태공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낚시터다. 사시사철 해남 땅끝의 황제호, 진도 서망항의 뉴진도호가 단골로 이곳에 들어온다. 또 하나는 추포도에 제주도 최연소 해녀가 살고 있다.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주 최연소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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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포도에서 물질하는 정소영씨와 지기진씨 최연소 해녀 정소영(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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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포도는 하추자도 예초리 포구 북쪽 바다에 떠 있는데 예전에 이곳 주민들은 '추가리'라고 많이 불렀다. 요즘은 '추포도(楸浦島)'로 더 많이 알려졌다. '추가리'의 그 뜻은 잘 모르겠다. 추포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300여 년 전. 추자도에 지씨 문중이 귀향 살이를 왔는데 그 후손 중에한 사람이 이곳 추포도에 정착한 것이다. 

추포도 해변에 배를 대고 올려다 보니 모두 5~6가구 정도의 집이 보인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올라가기 쉽게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어르신들이 다니기에는 힘든 길이다. 이 때문에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 매우 특이하게 보였다. 아슬아슬한 급경사 바위로 된 해안에서 모노레일에 사람과 화물을 싣고 오르내린다.

미역과 전복을 채취하고 생필품을 운반하는 데 일손을 많이 덜어준다. 이런 모노레일 시설은 무엇보다도 고령화로 섬의 무인도화를 막고 일손을 덜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가스통과 생필품을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올라 다녔는데 뱃머리에서 집 앞까지 레일을 깔아 운반해 주어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추포도는 마을이 형성됐을 당시를 보여주는 폐가와 높은 돌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73년에는 6가구 31명, 분교생 8명이 있었다. 원시림처럼 우거진 풀숲을 헤치면서 섬의 초고봉인 113m의 정상에 있는 능선까지 올라갔다. 능선에서 보면 앞으로 추자 군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뒤로는 횡간도가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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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포도 마을 전경 우측은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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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바로 앞 바다에서는 추석을 맞이해 주문한 물량을 맞추고 또 추석을 보내려고 전복과 소라, 해삼을 잡고 있는 두명의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물때가 딱 맞아서 정소영(31), 지기심(69)씨 두 모녀가 부지런히 물질을 하고 있다. 소영씨는 추자도에서 태어나 추포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2014년 봄부터 어머니가 살고 있는 추포도에 들어와 전복과 소라를 잡는 해녀가 되었다. 제주도 수영 대표 출신인 그는 제주도에서 최연소 해녀가 됐다. 60~70대가 차지할 정도로 노령화된, 위험하고 힘든 해녀 작업을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외면한다.

제주시에 따르면 해녀 연령 분포는 30대 6명, 40대 44명, 5~60대 1221명, 70대 1015명, 80대 이상 296명 (70대이상 51%차지) 등 2582명의 해녀들이 있다. 소영씨는 "몸이 계속 비대해 지고 우울증에 빠져서 있을 때 해녀를 하면 몸도 날씬해지고 수입도 괜찮다면서 어머니의 끈질긴 권유를 받아 들여서 해녀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뭍에 나와 살면서 늘 고향인 추포도와 추자도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들이 그리웠고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해녀를 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추포도는 추자도에서 배로 15분 거리다. 어머니 지기심씨는 추자도 출신으로 1985년도에 추자도에서 소영씨를 낳고 곧바로 친척들이 살고 있는 추포도에 들어와 해녀 작업을 하며  2남 2녀를 교육했다. 추포도에서 모녀가 해녀로 활동한 것은 특이한 사례다. 소영씨는 어릴 때부터 바다와 친해 수영을 했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제주도 수영 대표로 나가 전국대회에서 동메달을 딸 정도로 수영에는 일가견이 있다.

오전 내내 모녀가 물질하는 순간을 멀리서 지켜봤는데 전복을 잡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웃으며 하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때로는 모녀처럼, 때론 친구처럼 물장난을 치면서 물질을 했다. 저 모습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는 듯 하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한 물질은 1시 반경에 마무리를 지었다. 소영씨는 소라 31kg, 어머니 지기심씨는 소라 39kg로 잡았다. 초보자인 소영씨의 실력이 상군 해녀인 어머니를 따라 잡을 날이 머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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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소영 해녀 물질을 해서 갓 잡아온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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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은 정소영, 가운데 지기심, 우측은 정승현 물질하여 잡아온 소라를 선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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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천국을 만든 청년의 힘

추포도에서 또 한 가족을 만났다. 이 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정길동(71)씨와 지난 봄에 결혼한 길동씨의 아들 승현(39)씨다. 정씨 가족의 집은 흰색 건물로 이 집을 교육청에서 임시 강습소로 사용했는데 그래서 예전에 추포 분교 자리였음을 알 수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충복 영동이 고향인 길동씨는 41세 때 아내의 고향인 추자도에 왔다가 만 30년을 이곳에서 정착했다. 정씨는 지독히도 가난했던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는 섬이 너무 작아서 밭도 없고 너무 가난해 바다에서 채취한 톳을 가지고 밥을 해서 많이 먹었지요, 나중에 톳이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그것이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톳으로 밥을 지어 먹던 것이 일본으로 수출하는 덕분에 그 당시 가구당 3백만 원의 커다란 소득을 올리며 빚을 지지 않고 밥을 먹고 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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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현씨와 모노레일 해안가로 사람과 짐을 실로 가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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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포도에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당시 수십 년 전부터 야간에 출몰하는 해적선들이 추포도 주위에서 삼중망 그물로 고기씨를 말리는 바람에 고무총을 만들어 그 배에 대항했다고 한다. 애지중지해 키운 값비싼 염소를 잃어 버린 적도 있다고. 한 번은 20여 마리를 훔쳐갔다고도 했다. 그는 염소와 바다를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운 시절이 엊그제 같다고 웃었다.

이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승현씨가 모든 것을 물려 받았다. 승현씨는 낚시꾼들이 와서 낚시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민박과 더불어 식사 및 냉장고를 제공하고 있다. 사시사철 황금 어장터로 유명한 추포도에는 1년에 2천 명이 넘는 낚시꾼들이 모인다.

이들을 위해 집 주위에는 6개의 파란 물통이 놓여 있다. 정씨 가정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2천 명이 넘는 낚시꾼을 위한 식수 겸 생활 용수란다. 아직 선착장이 없고, 전기 시설이 없음데도 추자도가 지금까지 유인도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전국 최고의 낚시 섬이기 때문이다. 정씨 가족의 남다른 추포도 사랑 덕분이었다. 추포도에는 고급 어종인 도미와 삼치 등 씨알 굵은 고기들이 잘 잡혀 뱃길이 멀고 사나워도 낚시꾼들이 몰려 온다.

승현씨는 1톤짜리 보트와 도보로 추포도를 매일 순찰하면서 섬을 지킨다. 대를 이어 수십 년 동안 불법 어선과 싸우면서 자망이나 삼중만 그물 그리고 불법으로 고기를 잡는 것을 막아왔기 때문에 오늘 날 황금어장터를 이룬 것이다.

그는 낚시꾼들이 포인트를 향해 가는 길도 농약을 살포할 수 있지만 한 달에 두 번 정도 풀을 직접 낫으로 깎을 정도로 섬과 낚시꾼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섬에서 살면 낙후되고 험악한 섬이라고 하여 총각이 결혼을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며 불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다. 추자도 청년 대부분도 결혼을 하지 못해 외국 신부를 맞는다.

승현씨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어머니의 물질을 돕고 섬을 관리하기 위해 이 섬에 들어와 산 지 11년이 되었다. 이렇게 착실한 청년이 마음에 들었던지 30년 단골 낚시꾼이 중매를 서서 지난봄 영광에 살던 예쁜 색시와 결혼해 이곳에 들어와 신혼 살림을 차렸다. 승현씨도 중매를 선 이도 대단하지만 승현씨 아내는 참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문화 시설의 단절 등으로 답답한 이곳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큰 고민과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물질하는 바다로 필자를 안내한 승현씨는 자신의 보트에 나를 태운 후 물질하는 동생과 어머니의 태왁에 가득 채워진 소라와 전복을 보트로 옮겨 싣고 추포도를 한 바퀴 돌았다. 공을 차면 바다에 빠지고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섬은 천혜의 낚시터로 안성맞춤이었다. 다시 마을 입구에 배를 대고 저울에 무게를 달아 방금 잡아온 소라와 전복을 바다로 내려 보관했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한 물질은 오후 1시 반경에 마무리됐다.

추포도는 발전기를 돌려 밤에 불을 밝히고 있지만 24시간 발전기를 돌리지는 못한다. 잦은 고장과 연료비 때문에 온통 신경을 이 발전기에 써야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승현씨가 말했다. 주력 발전기 외에 예비로 두 개나 더 준비되어 있다.

가장 힘든 사항은 종종 집을 비우고 제주도나 육지로 외출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발전기를 끄고 냉장실과 냉동실에 있는 모든 음식을 꺼내 모노레일에 싣고 조그만 보트에 옮긴 다음 추자면 사무소에 근처에 얻어 놓은 집 냉장고 2개에 넣고 나간단다. 돌아오면서 다시 음식물을 보트에 싣고 추포도로 들어와 발전기를 돌린 뒤 냉장고에 보관한다. 극소수 인구가 사는 신안군이나 완도나 진도의 섬들은 100% 태양열 전지판을 놓아 전기를 불편 없이 쓰는데 제주도의 섬 정책은 많이 뒤떨어진 모습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울릉도 죽도 벤치마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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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은 정길동, 중앙은 소영, 좌측은 승현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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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자치 단체의 섬 정책을 잠시 소개할까 한다. 울릉도 도동항 바로 앞에는 죽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한 사람이 사는 이곳은 모노레일과 전기 시설, 배의 접안도 용이해 아직도 유인도로 남아 있다. 지난해 결혼한 김유곤(47)씨는 여기에서 태어나 죽도에서 더덕 농사를 지어서 생활 한다. 박관용 경북도지사가 직접 결혼식에 참석했고 수많은 언론과 도청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대하게 치렀다. 경북이 섬 정책에 대한 공을 얼마나 많이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낚시로 1년에 2천명이 넘게 들어오는 보배 같은 추포도에는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선착장 시설이 없어서 불편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약 전기가 24시간 들어오고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면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더 많은 낚시꾼이 이 섬을 찿지 않을까. 그러면 소득은 배로 늘어날 것이며 낚시꾼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다행이 추포도를 오고가는 배는 추자면 사무소의 행정선이다. 일주일에 월, 화, 목, 금요일을 운항하는데 금요일은 주민의 편의와 낚시꾼을 위해 부근의 횡간도와 추포도에 오전 오후 두 번 다닌다. 이 연락선이 없으면 추포도는 아무도 찾지 않는 버림 받은 섬이 되었을 것이다. 육지로 말하자면 시내 버스다.  이렇게 사연이 많은 섬 그래서 눈을 떼지 못하고 떠난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곳 주민의 고생길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유배지 같은 이 섬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살고 싶어서 그랬다. 이제 나에게 유배 시기가 곧 다가올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이 섬을 떠난다. 섬을 지켜주는 그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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