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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모인 어르신들 <백세인생> 떼창한 이유

어르신들에게 봄이란... 일자리가 시작되는 계절

  • 입력 2016.03.08 20:25
  • 수정 2016.03.10 14:42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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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왔든가? 나도 (노인 일자리가) 돼야 하는데…. 됐어?"
"엉~ 전화 받았지. 월요일날 오라고 하네. 호호호."
"난, 면접을 잘 못 봤나? 전화가 안 와!"

바뀐 계절이 오고 있다. 사람들에게 계절은 그가 보는 방향대로 가고 온다. 여기 점심 드시러 오신 어르신들에게 봄은 특별하다. 이 분들의 대화가 '합격자 발표'에 집중돼 있다. 겨우내 쉬었다가 3월에 시작하는 '노인 일자리'에 누가 선정되었는지 관심사다.

간이 삭탁에 앉아 점심을 기다리는 여수 성산공원. 지난 5일 시간을 내서 봉사하러 나왔다. 주말 '무료 이동 밥차'에 점심을 드시러 어르신들이 오늘도 150명 정도 오셨다(관련 기사 '자원봉사'와 '기부'로만 운영되는 이동 밥차).

이분들에게 오는 봄은 '돈 벌러 나가는 계절'이다. 겨우내 기다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합격' 여부 인사를 나눈 '노인 일자리'사업은 전국적으로 3월부터 시작한다. 12월까지 한 달에 30시간 이상 활동하면 월 20만 원을 받는다. 요사이 발대식도 하고, 선정되신 분들을 대상으로 사전 교육도 이뤄진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기준은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다.

식사 전에 네 분의 할머니가 앉아 계시는 간이식탁에 가서 인사를 나눴다.  네 분 모두 사정들이 있다. 설 바로 앞두고 뵈었던 분들도 계신다(관련기사 "설? 아들 집에 가긴 가는데... 발길이 무거워").

"설에 아드님은  다녀 갔어요?"
"아이고, 안 왔어. 사업체 부도나고 세금도 못 내고 어려워져서 힘든가봐!"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니가 거드신다. 아들이 힘든 대신에 이제 본인은 그나마 혼자 살기는 편해졌다며 부러워 하는 듯 한 말투다.

"전에 중흥서 알아주는 '서울집'이었어. 여천공단 들어설 때였지. 예약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큰 식당이었어. 그런데, 아들이 부도났대. 여태 번 돈 '홀라당' 해버린거지. 그래서 저 양반 석 달 전에 이제 '영세민'됐어!" 

들어보니, 왕년에 잘 나가는 여수산단 초기 1970~1980년대 단골이 많은 큰 식당 주인이었다. 그런데 번 돈으로 아들 사업에 제법 큰 액수를 지원했는데, 잘 나가다가 최근에 어렵게 됐나 보다. 그래서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신 할머니다.

"돌고 돌아. 다 변하지. 아들이 우리 담당 복지사한테 전화를 받았나봐. 이것 저것 확인하는데 아들이 '그렇다'고 확인해 주면서 '우리 어머니, 수급자 해주세요' 했대. 그때 맘이 어땠겠어?"

그러면서도 낙천적이시다. 옆에 계신 할머니를 끌어 들이며 대화를 이어 가신다.

"저 양반, 전어회로 유명했지. 솜씨 좋고 요리 잘해. 난 서대회 잘하고…. 공단 옆에서 서로 큰 식당했으니까. 이번에 거기도 일자리가 (합격)됐나봐"

노인일자리는 지역의 일자리 전담기관인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 같은 수행기관들이 제공한다. 어르신들의 경험과 재능, 전문성 등을 고려해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자치단체별로 특색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서 제공하기도 한다.

"같이 식당했었나 봐요?  할머니는 무슨 일자리인데요?"
"여기서 만나다 보니, 비슷한 때 공단에서 식당을 했던 거지. 나는 76살인데, 4년째 노인 일자리를 해. 그 전에는 일자리를 몰라서 신청 못했지. '여수 시니어클럽'에서 하는데, 지역아동센터 청소도 하고 도와주는 것이야. 일주일에 세 번 나가서 일해."

"그래도 일이 있어야 돼. 일 해야 건강에도 좋고!"

다른 두 할머니는 조용한 편이었다. 한 분에게 인사를 나누니 옆에서 이해를 해달라고 한다. 그 분은 표현이 어려우신 장애등급을 받으신 기초생활 수급자라고 하신다.

"내가 작년에 '노노케어'로 저 양반 도와줬지.청소도 도와주고, 시장도 봐주고. 혼자는 어려우니까. 저 분은 평소에도 이름표도 달고 다녀야 해. 딸이 달아줬어. 택시 타면 그 이름표 주소로 데려다 주고 그러지."

어르신이 더 어려운 어른을 도와주는 '노노케어' 일자리였는데, 올해는 동사무소에서 마을 청소하는 일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락이 안 온다고 걱정이다.

한 분을 제외하고 세 분이 일자리를 해봤거나, 하고 계신다. 한 분은 70대고 나머지 세 분은 80대다.

"일하시면 좋죠?"
"자식들한테 돈 안달라고 하니께 그거이 좋제!"
"돈 벌면 쓸 데 많아. 손주 용돈에, 시장도 보고…. 하하하."
"아이고 뭐!  늙어서 남 보기는 싫제. 어쩔 수 없어서 하긴 하지."
"아녀, 그래도 일이 있어야 돼. 일 해야 건강에도 좋고!"

마침 스피커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공연하는 노래가 나온다. 한 분이 선창하니 요즘 유행하는 <백세인생>을 약속이나 한 듯 함께 부르신다.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기사 관련 사진
▲ 밥차에는 재능기부하는 자원봉사자들의 공연이 가끔 펼쳐진다. 요즘 유행하는 이애란의 <백세인생>은 어르신들 모인 곳에선 단골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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