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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널린 똥? 까짓것 피하면 된다

  • 입력 2012.03.23 12:52
  • 기자명 박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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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누리 공동체 인디고 여행학교 인도여행기 4] 손님에게 안방까지 내주는 사람들


벨로르에서 2박을 한 25명의 누리팀 인디고 여행단이 다음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티피파캄 마을이다. 남부 벨로르에서 한 시간쯤 거리에는 인도에서 최하층이라 불리는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티피파캄 마을이 있다.

인도에는 카스트제도가 살아있다. 카스트는 포르투갈어로 혈통을 의미하지만 인도인들은 색깔이라는 뜻의 ‘바르나‘라고 부른다. 이 제도는 모든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사회에 대한 의무와 권리도 카스트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 고대 마누 법전에 의하면 브라만은 베다를 가르치고 제사와 의식을 행하며, 크샤트리아는 사람을 보호하고 베다를 배우는 계층이다. 바이샤는 소를 기르고 상업을 영위하며, 수드라는 위의 세 계급에 봉사하는 것이 의무였다.



카스트 제도 안의 사람들은 누구나 위의 네 카스트에 들어가고 그 나머지는 불가촉민으로 취급된다. 인도사회에서 부정의 원천이자 사회적 금기인 불가촉민은 대개 죽음이나 배설과 관계 있는 부정한 일에 종사하는 더러운 사람들이다.

똥을 치거나 동물의 시체를 옮기고, 때묻은 빨래를 하는 세탁부와 남의 털을 만지는 이발사도 포함한다. 인도 인구의 약25%인 2억5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돼 사실상 5개의 계급이 존재하는 셈이다.

불가촉천민 마을에 있는 학교 책임자인 머시 말라니씨에 의하면 "인도인 중에는 SD라는 집도 절도 없는 방랑자 그룹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외국 관광객만 보면 손을 벌리며 돈을 요구한다. 어떤 이들은 손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밤이 되면 길거리에 담요를 깔고 잔다. 이들을 돕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차라리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이다.

표를 의식한 위정자들은 대학입학과 공무원 채용시 불가촉천민들에게 일정부분 할당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공무원은 될 수 있지만 사기업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멀라니씨의 귀뜸이다.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토레이페럼바캄 마을 사람들은 첫인상이 시커멓고 온 동네가 동물의 똥 천지다. 인도사회에서 차별을 받아 상처 받은 이들은 외부인들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들이 한국에서 온 학생들을 어떻게 대할지, 마음의 문은 열어줄 지가 궁금했다. 홍성현(중2)군이 처음 마을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선입견이다.

"길거리에 소똥이 널려 있고, 사람들은 우리나라 축사보다 못한 것 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어요. 사람들도 지저분하고 못사는 티가 나서 도시인 벨로르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틀을 살아보니 사람이 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2인 1조가 되어 홈스테이를 희망하는 집에 초대받아 짐을 풀었다. 열 평 남짓한 집에는 1미터 정도 되는 통로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두 평쯤 되는 방이 두 개 있다. 한국 같으면 이미 버렸을 것 같은 목조 침대가 있는 집안도 있지만 움집 같은 곳도 있다.

286컴퓨터 모니터 크기만한 TV가 있는 집은 사치스럽다고나 할까? 얼마나 오래됐는지 화면은 몇 줄의 선이 흐르고 소리도 지지직거려 잘 들리지 않는다. 항상 맨발인 이들이 사는 방에는 모래가 굴러다닌다. 방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손으로 밥을 먹을 때면 가끔 모래가 씹힌다. 가장 불편한 점은 화장실 가는 것과 손으로 맛없는(한국기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 그래도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은 평범한 한국인 집과 같이 훌륭하다.


나와 학생을 위해 안방 침대까지 내준 이들은 오후 9시면 잔다. 날은 덥고 모기는 물고 낯선 환경이라 잠은 안 오는데 억지로 자는 척해야 하는 게 고역이다. 더욱 난처한 것은 통로 바닥에서 자는 가족들을 깨우지 않고 조심스럽게 건너서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

하지만 세상 모든 게 처음이 문제다. 두 번째 날에는 아예 일찌감치 용변을 보고 우리를 위해 밤새 틀어주는 선풍기 바람을 의식해 옷을 뒤집어쓰고 잠을 푹 잤다. 길바닥에 널려 있는 똥? 까짓것 물기 있는 것만 피하면 된다. 없는 형편인데도 자신의 집을 찾아 따뜻하게 대해주는 한국 학생들을 위해 소고기가 들어간 ‘쿠루마‘를 듬뿍주는 음식 인심? 조금만 주라는 의미의 "꼰좀꼰좀"이라고 하면 전통 음식인 ‘도사이‘를 두 장만 준다.


세상 어딜가나 아이들은 똑같다. 꾸밈이 없고 천진난만하다. 단지 어른들이 만든 제도에 종속되어 커가면서 사회화되어갈 뿐이다. 아이들은 외부세계에서 온 중고생들과 놀면서 금방 친구가 되고 동생이 됐다.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 등에 업혀 다니는 아이들. 팔짱끼고 다니는 아이들.

한국 학생들도 이들을 따뜻하게 대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선입견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손만 대도 불결해져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데 업고 뒹굴고 악수하고 이들에 대한 금기사항을 깼다. 무슨 일 있었냐고? 천만에 말씀.

원유찬(중2)군이 불가촉천민과 이틀간 보내고 난 느낌을 말했다.

"처음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현지인들과 이틀간 지내보니 아이들은 순수하고 어른들은 친절할 뿐만 아니라 남에 대한 배려가 깊어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느꼈어요."

김도하(중3)군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마을이 지저분하고 범죄도 자주 일어날 줄 알았는데 와보니 모두가 친절하고 착했어요. 다음부터는 직접 체험하고 느끼지 않고는 함부로 나쁘게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권민수(고1) 학생은 사려가 깊은 학생이다. 그녀의 변이다.

"홈스테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 한 집에서 먹고 자고 싸고 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버려야 한다니요. 이곳 사람들은 제가 만났던 그 어떤 사람과도 달라요. 어째서 저에게 이토록 애정을 갖는지, 절 빠져들게 해 버렸어요. 이곳에서의 매 순간순간은 아름다웠습니다."

이 마을엔 학생수 86명이 다니는 공립 초등학교가 하나있다. 학생들 모두가 불가촉천민의 아이들이다. 1905년에 개교해 1939년에 정식인가를 받은 초등학교엔 책상과 제대로 된 의자가 없다. 20명이 들어가도 좁을 공간엔 판자에 각목을 댄 의자가 전부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공부하는 아이들. 비록 얼굴은 검지만 천진하다 못해 하얀 종이 같다.

동네를 찾은 학생들은 아이들과 함께 비누방울 만들기, 지점토로 과녁 맞추기. 물풍선 터뜨리기, 꼬리잡기 놀이를 하면서 선물을 전달했다.학교엔 두 명의 교사와 한 명의 책임자(중학교까지는 교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헤드 마스터(Head Master)‘라고 부른다. 책임자인 머시 멀라니씨가 선물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학교의 연혁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한국 학생들이 여기까지 찾아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수업을 해줘서 감사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어린이를 돕는 사람은 하느님이 어린이를 돕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학교를 다닐 때는 건물도 책걸상도 없었어요. 단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칠판을 놓고 공부를 했죠. 아이들을 열심히 공부시켜 불합리한 카스트제도를 타파하도록 가르칩니다. 신 앞에서는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이 평등한 존재일 뿐입니다."

여행할 땐 다른 문화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백번을 접어서 이해하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가 카스트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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