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불교는 일본의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였을까

  • 입력 2012.06.16 13:19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수에서 열린 제26차 세계불교도우의회 학술 포럼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제26차 세계불교도우의회 셋째날인 지난 13일. 오전 8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여수 디오션리조트 컨벤션홀에서는 ‘불교가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학술 포럼이 열렸다.

폴 눔리치, 카르마 렉세 쏘모, 브라이언 앙드레 빅토리아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불교학자가 발표한 자리에는 500여 명의 불교도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아시아인의 종교에서 세계인의 종교가 된 불교가 21세기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봤다.

안티옥대학 브라이언 앙드레 빅토리아 박사가 발표한 ‘현대사회에서의 불교의 영향에 대해 어둠의 장으로부터 배우다‘는 일본 군국주의에 끼친 불교의 영향에 대해 분석한 것으로 우리와 연관이 깊어 조명해 본다.

일본 불교계 지도자들, 군국주의 열정적으로 지지해

1997년에 출간된 <전쟁에서의 선>(Zen at War), 그리고 더 좁게는 2003년에 출간된 <전쟁과 선 이야기>(Zen War Stories)는 미국과 유럽 선불교계에 충격파를 던졌으며 일본 불교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많은 지도자급 선사와 학자들이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광신적인 지지는 아니었지만 열정적이었다는 것을 폭로했다.

군국주의 지지에 앞장섰던 ‘묘심사‘를 포함한 임제종 지부에서는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책임을 인정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최근의 사건들(9·11 테러)을 반성하면서 우리는 과거에 우리나라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여러 나라에 크나큰 고통과 상처를 입힌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그 당시의 국가정책이기는 했지만 우리 종단(임제종)이 단호하게 전쟁 반대의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전쟁에 협력하는 것으로 끝맺었던 것을 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과거 우리 범죄를 고백하며 우리의 행동에 대해 엄격히 반성한다."(2001년 9월 27일)

스즈키 다이세츠의 전시 역할에 대한 배경

일본의 스즈키 다이세츠는 서양에 선을 소개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1912년 가을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유럽에 가는 도중에 ‘가난한 나라‘로 묘사한 한국에 대한 논평이다.

"그들(한국인)은 그들이 일본 정부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모르고 있다. 독립이나 그러한 것들을 얘기하는 것들은 다 좋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서기에는 능력이나 생명력이 부족한 때에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나처럼 여기를 단지 지나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한국은 일본에 병합된 날을 그들의 부활의 날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스즈키는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무시하고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의 가난을 이용한 식민주의자다.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동의했지만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있다. 그는 불교적 신념에 호소해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 일본의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4만7000명의 일본 청년이 목숨을 내던졌다. 1904년에 스즈키는 영어로 다음과 같이 썼다.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이 목숨 줄을 끊어버리자. 그리고 운명에 대해 불평의 소리를 내지 말자. 이러한 신념으로 불교도들은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넘어 진리의 깃발을 견지하라."

스즈키의 일본제국 장교들에 대한 연설

스즈키의 1941년 저서 <무사도의 신수> ‘무사도와 선‘이라는 장에서는 중국과의 전쟁을 명백히 말하거나 일본 군부를 정확히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침공에 대해 동정적인 태도를 암시한다. 스즈키의 기고 제목은 유명한 선 문구인 "망설임 없이 나아가라(邁直向前)"에서 취했다.

선은 원래 인도에서 왔지만 실제로는 중국에서 완성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실제적 효능은 대부분 일본에 온 이후에 보완되었다. 일본인들의 성격과 선이 놀랄만치 일치하는 것은 ‘망설이지 않고 사물의 본질에 곧바로 나아가는 것‘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좌우를 살피지 않고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나아간다.

예를 들면, 일본인들은 칼을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으로 잡는다.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칼을 잡을 때 한 손으로 잡는다. 더 나아가 그들은 왼손으로 방패를 잡는다. 이것은 다른 한 손으로는 적을 쳐부수면서 또 한 손으로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두 손으로 칼을 잡는다. 거기에는 자신을 방어한다는 의도는 없다. 오직 상대를 내리칠 뿐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자신의 몸을 포기하고 상대에게 돌진하는 것이다.

일본의 선방에는 길이가 대략 121cm쯤 되는 경책이 있다. 이것은 좌선하는 사람이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뻣뻣해지는 경우에 때리기 위한 도구이다. 중국에도 대략 76cm 정도에 이르는 경책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오직 한 손만 사용하지만 일본은 두 손을 쓴다.


어떤 일에서든 기꺼이 죽으려는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다름 아닌 선이다. 왜냐하면 선은 종교의 근본적인 이상이기 때문이다. 선은 죽음을 초월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기꺼이 죽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것으로서 ‘삶과 죽음의 통합‘이라고 부른다.

스즈키는 그의 저서에서 장교 독자들에게 6가지 이유를 들어 ‘죽을 준비‘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했고 ‘선이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는 최상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스즈키는 선과 일본 국민의 상징적인 관계를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망설임없이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분별하는 생각을 그만 두는 것‘이 일본 국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함축하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을 돌보지 않으면서 목숨을 버리고 앞으로 돌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 국민, 특히 선과 군인들의 견해가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제국군대 장교 잡지의 편집자들은 스즈키의 글들을 출간하는 데 흥미를 가졌다. 그것은 선 훈련을 통해 얻어진 두려움 없고 자기희생적 전사 정신의 역사적인 예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자신을 방어할 의도없이‘ ‘자신의 몸을 버리고‘ ‘상대에게 뛰어 든다‘와 같은 일본 제국 공군의 가미가제 조종사와, 해군의 유인 어뢰 작전이라는 악명 높고 전술적으로 유용한 ‘반자이 공격‘을 낳았다.


스티븐 베철러는<붓다는 없다>라는 책에서 ‘도덕적 정당성의 방파제를 군주국가에 제공하려는 조직화된 종교의 힘‘을 지적했다. 그는 일본 불교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국가폭력 사용에 대한 방파제를 제공하기 위한 도구였는가에 대해 반성하기를 권한다.

나는 몇 번에 걸친 일본 여행 중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왜? 일본인들은 집단자살을 할까?‘ ‘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까?‘라는 의문이 쌓였다. 단순히 천황에 대해 충성하기 위해 죽는다는 것으로는 시원한 해답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브라이언 앙드레 빅토리아 박사의 발표로 의문점이 풀렸다. 역사를 보면 종교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전쟁이 허다하다. 사랑을 앞세워야할 종교가 더 이상 국가폭력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