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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참, 저런 기사 아저씨가 있구만"

  • 입력 2012.06.26 10:42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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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오동운수 운전사 정진오씨... "친절운전, 아내 지적 고치다 보니..."

"어르신, 할머니가 짐이 무거워 차에 올라타지 못하네요. 좀 들어주시죠."

현충일 아침 일찍 여수 서시장에 들러 물건을 산 후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설마 나한테 어르신이라고 하지는 않았겠지"하고 빈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운전사 아저씨가 또 다시 재촉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라고는 나밖에 없다. 얼른 앞문으로 달려가 낑낑대는 할머니 짐을 들어서 버스에 실었다.

기사아저씨는 연신 오르내리는 손님에게 "어서오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내가 벌써 어르신이 됐나"하고 속으로 혼자 웃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아이구! 고맙소이~. 내 나이가 팔십이 다 되어 들어 올릴 힘이 없어요. 세상을 오래 살아본깨 100명 중에 1명만 나쁘고 다 좋아요. 기사도 참 좋은 사람이네."

우연일까. 할머니가 내리는 정류장도 나하고 같은 정류장이다. 짐을 들어서 내려주며 출구 머리맡에 써진 기사의 이름을 외웠다. 여수 오동운수 정진오. 며칠 후 퇴근하던 길에 오동운수를 찾아가 담당 부장을 만나 "정진오 기사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자 오늘은 쉬는 날이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입사 때 받은 교육 그대로... 역지사지 정신으로 운행하죠"

22일 금요일 퇴근길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정진오(43)씨의 친절은 사내에서도 정평이 나있고 이미 MBC 라디오 방송에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살아온 얘기와 왜 그렇게 오가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인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요즘은 인사 안 하는 게 당연한 세태라 그가 눈에 띄었다.

"저희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만석군은 하늘이 내리고 천석군은 노력이 내린다고 하셨어요. 회사 입사할 때 교육받은 그대로 하다 보니까 몸에 밴 것 같아요. 손님들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애기 엄마나 학생들이다 보니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 가면 아내가 시내버스를 이용하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해줘 고치다 보니 몸에 뱄어요."

교육 내용대로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운행한다, 남보다 천천히 그리고 덜 쉰다"는 정신으로 운행한다는 그는 "제 시간에 노선을 지키는 걸 원칙으로 삼아요. 손님은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예정시간보다 빨리 지나가 버리면 기분 나쁘지 않겠습니까?"라며 자신보다는 손님의 입장을 배려한다.

그가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자신이 속한 ‘분임조‘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9개의 ‘분임조‘로 나누어 공익을 위한 일을 하거나 직원 애경사 시에 서로 돕는다. 자신의 승객들에게 친절을 베풀면 그가 속한 조의 평가 점수가 올라간다. 평가 요소는 친절, 무사고, 청결, 과속금지 등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분임조를 매달 포상한다.

그가 친절을 베풀다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겼다. 어느 날 아침 일찍(오전 6시15분) 율촌 산수리에서 여수행 버스를 운행할 때 일이다. 할머니가 여러 개의 짐 보따리를 들고 오길래 내려서 차에 실어줬다. 할머니는 서시장에서 옥수수를 팔기 위해 짐을 들고 온 것이었다.

오후에 장사를 마친 할머니가 또 다시 정씨의 차를 탔다. 할머니는 "아침에 고맙다"며 비닐에 싼 옥수수 두 개를 건네줬다. 차를 운전하고 여수로 돌아오는 길, 감사하다며 먹은 옥수수가 배탈을 일으켰다. 문제는 할머니가 그에게 주겠다며 비닐에 꼭꼭 싸놓은 옥수수가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두 시간의 동행취재, 사람 움직이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친절‘

일요일(24일) 오전 그의 친절을 확인하기 위해 동행 취재를 했다. 차고지를 떠난 버스가 약속 장소인 봉산동 경호약국 정류장에 11시 정각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중부 지방엔 가뭄으로 고생하는데 남해안 지방에만 비가 내려 안타깝다. 차에 올라타니 3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다. 돌산에서 일하는 중국인 근로자들이 뭐라고 얘기를 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내릴 곳이 가까웠나 보다.

돌산대교를 건너니 비옷 입은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어디 가시냐?"고 물어보니 서울과 평택에서 어제 왔는데 박람회 구경을 마치고 향일암에 간다고 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제일 인기 있는 Big O쇼는 볼 엄두도 못 냈단다.

11시 10분. 김이 서려 희뿌연 창밖으로 관람객은 없고 텅 빈 관광버스만 주차돼 있는 진모지구 환승주차장이 보인다. 차는 계속 달리고, 돌산중앙중학교 인근 마을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내린다. 빈자리가 생기자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잡으러 가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 운전하다 백미러로 살폈을까 그가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정씨는 운전하는 동안 내내 오르내리는 승객들에게 "어서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란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버스 바닥에 커다란 함지박이 비어있다. 시장에 생선을 팔고 온 듯한 느낌이 난다. 할머니 옆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군내리요. 근데 저 기사가 참 좋구만."

"뭐가 좋아요?"

"다른 기사는 내리든지 말든지 그냥 운전만 헌디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미끄럽다고 조심해라고까지 말하니 참 좋은 기사지."

돌산의 도로는 구불구불해 강원도 길이 생각날 정도로 흔들린다. 죽포에 도착하니 서너명의 손님이 내리고 4명의 초등학생들이 올라탄다. 5분여를 달려 버스가 선 곳은 서기마을이다. 초등학생들이 우루루 내린다. "잘가~" "예~" 운전사와 학생들의 대화가 아버지와 딸의 대화 같다.

버스가 신기마을에 도착했다. 등산화를 입고 배낭을 멘 행색이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다. 금오도행 배를 타는 곳을 안내해준 정씨에게 관광객이 말한다. "친절한 기사 아저씨, 복 많이 받으세요."

5분 뒤 작금에서 한 노인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으로 다니는 기사 중에 저 기사양반이 최고여. 근디 속은 모르지." 웃으며 한 마디 던지고 내린 할아버지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기사의 속이야 어찌 알랴마는 겉으로라도 친절하니 최고라는 의미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세상인심을 두고 하는 말이다.

11시 50분, 마지막 종착지인 성두다. 앞자리에 한 여학생이 앉아 있다. 정씨에게 목적지를 말하니 "아이구! 진작 말하지, 거기는 지나쳐 와 버렸으니 다시 돌아갈 때 내리라"고 말한다. 뒷자리로 가 의자를 돌아보던 정씨가 "아이구! 누가 여기다 껌을 씹고 붙여놨네"하며 껌을 뗀다.


종착지 성두에서 차고지를 향해 출발하는 시간은 낮 12시 8분이다. 정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해 신기마을에 오니 학생과 아주머니들 여럿이 차를 탄다. 정씨는 노인들이 탈 때마다 "어서오십시오, 출발하겠습니다"하며 출발한다. 힘없는 노인들이 넘어질까 걱정돼 손잡이를 꼭 잡으라는 의미다. 다시 서기마을을 지나는데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어허 참! 저렇게 친절한 기사 아저씨가 있구만."

비가 뿌리는 돌산대교를 건너 차를 탔던 경호약국에 오니 정확히 1시다. 시원한 비가 계속 내린다. 가물었던 대지에 비가 내리니 해갈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다. 두 시간의 동행 취재를 한 내 마음도 가볍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 때문만은 아니다. 진심어린 친절은 말라붙었던 마음속 가뭄도 촉촉하게 적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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