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만의 해원,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최초 민관합동 추모제.. 희생자 넋을 위로하는 조형물 제막에 이어 국악단 살풀이춤까지 처음으로 지역 두 국회의원, 시의장, 부시장이 참석해 추모사 읽어

2021-08-03     전시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 참여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시은

한국전쟁 중 미군전투기 폭격에 희생당한 피난민을 애도하는 민관 합동 추모제가 열렸다.

3일 안도 이야포 평화공원에서 열린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에는 칠십년 전 그날의 아픔을 기리려는 시민 몇몇이 참석했다.

오전 8시경 여수넷통과 여수시, 여수시의회, 여수뉴스타임즈,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 여수교육재단 관계자들은 돌산 신기항에서 안도 이야포를 향해 출발했다.

늦은 아침, 뜨거운 한여름의 햇살 아래에서 참가자들은 경건하게 피해자를 기렸다. 추모제는 조형물 제막으로 시작됐다.

▲조형물 제막식 모습 ⓒ전시은

참석자들이 다함께 “이야포 희생자는 하늘꽃이다”를 외치며 끈을 잡아당기자 최병수 조각가가 완성한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화를 가득 실은 배가 파도 위에 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는 파도 위에서 균형이 맞지 않고 불안정한 배의 모습은 기총사격을 받은 피난민의 공포스러운 심정을 상징한다.

특히 올해는 최초로 민관이 함께한 추모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조형물 제막식이 끝나고 여수시립국악단 박은애, 김운현 무용단의 살풀이 지전무가 무대에서 공연돼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해주었다.

▲여수시립국악단 박은애 단장과 김운현 무용단이 살풀이춤을 추고 있다 ⓒ전시은

 

▲심명남 여수넷통 이사장이 추모제 경과를 알리고 있다 ⓒ전시은

1부에서 심명남 여수넷통 이사장은 추모제 경과를 보고했다.

심 이사장에 따르면 여수넷통이 주관한 추모제는 2018년 8월 시작됐다. 68년만에 열린 첫 추모제는 ‘1950년 격침된 피난선 추모제’라는 제목으로 실시됐고 안도 주민 김성수 시인과 여남고등학생이 참여, 첫 수중탐사가 진행됐다. 2019년에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및 표지판 제막식이 실시됐다. 두 번째 수중탐사가 있었음에도 당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20년 8월 3일 평화탑 쌓기에 이어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가 침몰선 잔해로 모이는 물건을 찾아냈고 이는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또한 같은 해 9월 여수시의회 전 의원은 안도를 찾아 주민들을 만났고 이야포사건 조례 제정 필요성에 공감했다. 마침내 올해 6월 박성미 의원이 대표발의한 조례안이 의회를 통과, 추진위가 발족됐다.

심 이사장은 추모제를 앞두고 열린 국화 한 송이 모금운동과 10차에 걸친 추진위 활동을 알리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엄길수 추진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전시은

다음으로 엄길수 추진위원장이 인사말을 낭독했다. 엄길수 추진위원장은 빠른 시간 안에 침몰선을 인양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길수 추진위원장 역시 박성미 의원이 대표발의한 조례안 통과와 추진위 구성 성과를 일깨우며 “앞으로도 더 많은 수고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엄길수 추진위원장은 “억울하고 불명예스럽게 돌아가신 사람들을 추모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며 미국의 사죄와 한국 정부 역시 미국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길수 추진위원장은 “이번 추모제로 참여자들이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전쟁의 비극을 깨닫고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길 바란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박성미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특별위원장이 조례안 통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전시은

추모제에 참석한 주철현, 김회재 국회의원과 전창곤 시의장, 박현식 부시장도 추모사를 전하며 피해자를 애도했다.

주철현 국회의원은 "얼마 전 여순특별법이 제정됐다. 그 과정에서 저와 많은 시민들은 스러진 역사를 일으켜세우는 게 얼마나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지 몸소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점도 동시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의원은 "안도 이야포의 아픈 역사를 바로잡는 데 뜻있는 분들이 나서 주셔서 이렇게 뜻깊은 자리도 마련된 것이니 그분들께 감사하고 앞으로 저 역시 함께 하겠다고 약속드린다. 올해 활동을 시작한 2기 과거사조사위가 미군의 국제법 위반 여부를 추가조사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회재 국회의원은 "피해자가 여수 주민들은 아니지만 추진위가 적극 나서주셔서 이들의 억울한 희생이 알려졌다"며 "진화위에서 규명하지 못한 점을 앞으로 우리가 밝혀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으니 의정활동을 하면서 이야포 사건도 빠른 시일 내에 명예회복이 이뤄지도록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전창곤 시의장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피해자 명예회복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전 의장은 "무더운 8월이면 가슴이 먹먹해졌을 안도 주민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자리가 마련되기까지 꾸준히 활동해오진 분들께 감사인사를 올리고 잊혀진 역사를 세상에 드러내주신 추모위원들, 또한 조례를 발의하고 통과시킨 박성미 특위위원장 등 많은 분들의 공이 크다. 앞으로 정부의 명예회복활동 미군의 공식적 사과가 이뤄지도록 여수시의회가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박성미 시의원은 조례안 통과가 가진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피난민 뿐 아니라 조기잡이 어민 등 지역민 역시 사망한 사건임을 강조하며 자리한 주철현, 김회재 국회의원이 힘써 줄 것을 부탁했다.

2부에서는 희생자 유족 증언과 함께 사건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이 위령조형물에 적힌 자신의 증언을 살펴보고 있다

추모제 전날 부산에서 여수로 내려온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민간인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은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아침도 못 먹은 그날, 미군 비행기 4대가 폭격을 시작했다”

이춘혁 어르신이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삼남매와 어렵게 살아온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두 형제와 얼마나 굶고 못살았는지 밥 얻어먹으러 다녔다. 그렇게 살다보니 삼남매 중 둘은 가고 나만 87살까지 살게 됐다"

▲'여수역' 저자 양영제 소설가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에 관한 의문점을 설명하고 있다 ⓒ전시은

여수 출신 양영제 소설가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일어난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양영제 소설가는 현재 이야포 사건과 관련된 르포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양영제 소설가는 이야포를 자주 방문하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양영제 소설가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설명했다. 양 작가는 미군 증폭기가 어떻게 피난선 정박 위치를 알고 일본 오키나와에서 날아와 폭격을 했는지, 왜 경찰이 피난민 시신이 놓인 배에 기름을 부어 소각시켰는지, 그리고 피난선 선장이 빨갱이라는 소문이 어떻게 퍼지게 됐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폭격을 가한 모스키토 정찰기가 안도에 나타났는지 여부를 확인하려 안도와 주변 섬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정찰기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양 작가는 “폭격을 가한 정찰기가 어떻게 피난선을 알고 찾아왔는지 밝혀야 하고 피난민을 소리도로 이동시킨 세력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작가에 따르면 피난민들은 소리도에 5일간 머물다 군함을 타고 거제도 수용소로 보내졌다. 양 작가는 “이 조직적 힘을 여기 계신 역사학자와 의원, 기자분들이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시를 낭독하는 주철희 박사   ⓒ전시은

추모제에는 주철희 박사도 함께 했다. 주철희 박사는 직접 쓴 추모시를 낭독했고 참가자들은 준비된 국화를 헌화했다. 참가자들이 헌화한 국화는 지난 20일부터 시민들이 모금한 액수로 구입하여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담았다.

주 박사가 직접 쓴 시 ‘이야포 하늘‘은 참여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야포 하늘

                                  주철희

‘해방’ 그 만세소리

삼천리 방방골골

심장에 도달하기도 전

다시 나부끼는 점령군 깃발

불가침 성역의 나라

아메리카, 미국

전쟁 포화 그리고 8월

점령군의 폭격기

이야포 하늘을 포효하고

굉음의 붉은 파편

그 파도를 물들인다

그 바다를 삼키었다

울음조차 숨소리조차

그 깃발아래 허우적일 때

한 소년이, 노인이

오목가슴 피토하며

불가침 성역의 나라를

노도(怒濤)한다

추모제는 참여자들이 조형물 앞에서 “이야포 희생자들은 하늘꽃이다”를 외친 후 마무리됐다.

이날 추모제에는 여수교육재단 정재화 이사장과 뉴젠리더쉽학교 김인옥 교감도 함께 했다. 

김인옥 교감은 “갑자기 초대받게 돼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관련 기사를 부랴부랴 읽고 오게 됐다. 여수에서 태어나고 살아왔음에도 내가 몰랐던 역사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먼저 정확하게 공부하고 나서 뉴젠리더십학교 학생들에게 이 역사를 가르쳐줄 생각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함께 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학생들과 함께 오겠다”고 말했다.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 박근호 대장, 김창수 대원도 추모제에 참여했다. 이달 1일 이들 구조단은 지난해 바닷속에서 발견한 피난선 잔해물로 추정되는 수중구조물을 재확인했다. 박 대장은 "큰 구조물이 인양되지 못해서 아쉽다. 여수시가 나서서 꼭 인양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조형물에 헌화하는 참여자들 ⓒ전시은

이기재 여수넷통 이사는 그간 꾸준히 추모제에 함께 해왔다. 이기재 이사는 “여수에서 태어나 살아왔지만 안도에 이런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여수넷통이 미군폭격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꾸준히 개최한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시간이 된다면 앞으로 꾸준히 추모제에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여수넷통과 여수뉴스타임즈는 매년 안도 이야포에 모여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진행된 올해 추모제는 최소 인원만 참여한 가운데 간소하게 열렸다.

▲헌화하는 참가자들  ⓒ전시은
▲전창곤 의장을 비롯한 여수시의원들이 조형물에 헌화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근세
▲헌화하고 있는 김회재 국회의원  ⓒ박근세
▲추모사를 하는 주철현 국회의원  ⓒ박근세
▲박현식 여수시부시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박근세
▲무더위에 그늘막에서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 ⓒ박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