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 한방에...'가족 경계'를 아시나요?
[주경심의 상담칼럼②] 원하지 않는 간섭과 참견은 폭력과 같아 부모의 통제도 정서적 학대에 포함돼 진덩한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필자소개
필자 주경심은 현재 ‘허그맘허그인 여수직영센터’ 원장이다. 10년간 상담사로 일하며 그동안 쌓은 지식과 노하우를 안고 고향에 돌아와 부모교육 및 폭력예방 강사로 활동중이다.
몸의 병도 보이지 않는 곳의 병이 더 치명적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인 것처럼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면 도움을 청해야한다.
주경심 칼럼니스트는 이번 코너를 통해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병을 살펴보고 근본 원인과 치료법을 소개한다.
민족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만나기 힘들었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가족애를 다지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층 풍성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다 행복하고 풍요롭지만은 않았다는데 있다. 이유인즉 명절 증후군 때문이다. 많은 며느리, 사위, 직장인, 부부, 학생들이 귀경길 만큼이나 긴 후유증을 앓게 된다.
'명절 증후군' 말이 원인
이런 ‘명절 증후군'의 가장 큰 원인은 ’말‘이다. 명절 때 듣기 싫은 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결혼은 언제 할래?
아이는 왜 낳지 않니?
큰 아이 대학 어디 갔어?
남편 승진했어?
살이 더 쪘네?
(며느리를 향해) 내 아들 얼굴이 핼쑥해졌네!
밤새 나열해도 다 못할 만큼 많은 말들이 이번 명절에도 취준생, 며느리, 미혼남녀(혹은 비혼), 딩크족 또는 난임 부부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말을 할까?
명절 준비를 하는데 성인이 된 조카와 오빠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오빠는 설 당일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는 조카의 말에 대뜸 ‘안 돼!’라고 고함을 쳤다.
이유는 여자는 술을 마시면 안 되지만,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을 주 1회로 허락했다. 하지만 10시 통금시간을 지켜야하는데 이번 주는 벌써 어겼다고 했다.
오빠의 주장에 대해 조카 또한 반발을 했다. 주1회, 10시와 관련된 규칙을 들은 기억이 없고 여자이기 때문에 외출이 안된다는건 구시대적 발언이라고 응수했다.
성인의 기준?
성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딸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여러 선택지 중에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것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선택에 책임질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물가에 내놓은 자식이 불안하면 미리 수영하는 법을 가르치면 되는 것을 언제까지 물가는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단도리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20여 분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조카는 아빠에게 서운해서, 오빠는 딸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서 삐지고 말았다. 갈등의 포인트는 통금시간이나 규칙이 아니다.
바로 성인이 된 한 인간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간섭하고 통제하는데 있다.
경계란?
우리는 타인의 인생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식은 타인일까 아닐까?
경계란 타인이 내 집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담을 쌓듯이 누군가 허락없이 내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정된 모든 것들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이일수록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그러니 부모자녀 간에도 경계는 당연히 필요하다.
부모라는 이유로 하나부터 열까지 묻고 알아야 하고 체크한다면 아이는 미쳐버리거나 또는 제 손으로 수저 하나도 들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자녀가 나무꾼이 되기를 바란다면 도끼를 손에 쥐어주고, 직접 나무를 찍어보게 해야 하는 것이다. 도끼는 다칠 수 있으니 잡지 말라고 하면서 아이에게 나무꾼이 되기를 종용하는 것. 즉 원하지 않는 간섭과 참견은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
폭력은?
일반적인 지식수준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할 수 있음에도, 수준이 높아질수록 폭력을 행하면서 사랑이라고 우기는 부모들이 많다. 왜일까?
부모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디에서 배우지 않아도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전해야 하며 그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부모들의 무한한 사랑이 아이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것 또한 진실이다.
삶에서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외상경험은 어린 시절의 정서적 학대라고 한다. 그 학대 안에는 간섭, 통제가 포함되어 있다. 사랑한다면서 때리는 행위, 아낀다면서 통제하는 행위, 그런 사랑에 의해 많은 아이들이 가슴에 생채기를 입고 상담 장면에 초대되거나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건강이란?
자식을 스스로 서지 못하는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일어나라! 밥 먹어라! 그렇게 웃지 마라! 얌전히 있어라! 공부해라! 연애하지 마라! 의사가 되거라!
만약 진심으로 내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서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능하기를 바란다면 이것 하나만 명심하면 된다. 이제껏 부모로서 당연하다고 믿으며 해왔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고 사회가 원하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버텨주면 된다.
고양이는 새끼에게 사냥을 가르칠 때 절대 잡은 쥐를 입에 넣어주지 않는다. 새끼고양이 앞에 쥐를 잡아다주고 충분히 탐색하고, 가지고 놀면서 스스로 먹이로 인식하고 사냥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취직 조금 늦으면 어때! 결혼 조금 늦으면 어때! 승진 조금 늦으면 어때! 어느 대학이 뭐 그리 중요하니?
진짜 중요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믿는다. 너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이다. 그런 믿음으로 경계를 지켜나가면 되는 것이다.
가족 '경계' 확인하기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경계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들어놓은 경계, 혹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가 건강한지를 확인해야만 나의 권리도, 타인의 권리도 지켜낼 수 있다.
나의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가족 누군가의 관심에 숨이 턱턱 막힌다면 이미 사랑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즉 내가 침범했거나, 침범당한 것이다.
경계만 잘 지켜도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절반은 줄일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어느 정도의 경계가 있는지 확인하고, 느슨해진 경계를 다시 다지는 기회를 통해 진정한 가족애를 다지기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