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밖에 모르는 우리시대 아버지에게

[주경심의 상담칼럼④] 자녀에게 아버지는, 아내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패밀리에 담긴 의미 "아빠 엄마 사랑해요" 좋은 아버지는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변화해야

2021-10-11     글:주경심 편집:심명남

필자소개

필자 주경심은 현재 ‘허그맘허그인 여수직영센터’ 원장이다. 10년간 상담사로 일하며 그동안 쌓은 지식과 노하우를 안고 고향에 돌아와 부모교육 및 폭력예방 강사로 활동중이다.

몸의 병도 보이지 않는 곳의 병이 더 치명적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인 것처럼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면 도움을 청해야한다.

주경심 칼럼니스트는 이번 코너를 통해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병을 살펴보고 근본 원인과 치료법을 소개한다.

우리시대 아버지는 억울하다 ⓒ 주경심

‘세상에서 부모에게 인정받기가 가장 어렵다’

제목 없는 짧은 시 한 편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막 끝난 부모상담 때문인지도 모른다.

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아빠와, 아빠의 말과 행동때문에 이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울먹이는 딸.  상담을 하다보면 종종 이런 경우를 접한다. 

갈등, 폭력

아빠는 그저 딸이 잘되기만을 바란 것뿐인데 모든 원망이 자신에게 쏟아지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단다. 그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는데 그 동안 자신의 삶이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딸의 입장은 180도 다르다. 학교생활, 친구관계로 힘든 지금 “그렇게 할꺼면 다 때려 쳐! 힘든데 뭐하러 하냐?”라는 아빠의 말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불만이 가득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한결같다. 하지만 부모의 잔소리 덕분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부모는 잔소리를 멈추지 못하고, 자신의 희망과 바람을 자녀에게 마치 사명처럼 강조한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부모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아이들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되어버렸을까? 그 말이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관심과 말은 폭력일 뿐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입을 억지로 벌려서 들이 붓는다면 고문이고 폭력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다. 부모를 통해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배운다. 또 세상에 나갈 용기를 얻는다. 자녀는 부모를 따라하면서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배우고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준비한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부모가 자신의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자신과 같은 삶을 내 아이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들의 성격과 진로, 대인관계를 재단해 제한하고 천편일률적으로 키워내려한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이 인생을 놓고 부부가 싸우는건 기본이고, 폭력을 행사하고, 풀리지 않는 감정들을 애먼 아이들에게 다시 던진다.

들어가서 공부나 해. 아이구 지겨워!

상담에 오는 많은 아버지들은 "부부싸움을 했다. 딸이랑 싸웠다. 아들이랑 싸웠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의 말은 다르다.

물건을 던지고, 욕하고, 술 마시고 협박하고, 골프채를 집어 들고 아들을 때려요.

가족들을 향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싸웠다고 말한다. 싸우는 건 힘의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고받는 행위다. 싸움이 끝난 뒤 문제가 해결되지만, 폭력은 힘이 센 사람의 일방적인 행위로 상처와 아픔은 오롯이 약한 사람의 몫으로 남게 된다.

폭력을 행하는 사람은 “예전에 몇 번 그랬고, 지금은 안 그래요”라고 말하고, 당한 사람은 “그때부터 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졌고, 아이들도 그때부터 아빠를 무서워하고 피해요. 근데 사과도 안하고 우리가 잘못했대요. 자신이 돈 벌어오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자신을 무시한대요.”라고 설명한다.

가족, 억울함

같은 공간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상처를 갖고 있는 이 사람들을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족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렇다.

가족(FAMILY) =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아빠, 엄마 사랑해요!

하지만 아빠들은 억울하다. 어쩌다 한번인데 매일 그런것 처럼 사람을 매도해서 억울하고, 다 가족들 잘 되라고 한 것인데 그 마음을 몰라주니 억울하고, 설사 잘못을 했더라도 그 동안 가족들 위해서 뼈빠지게 일해 온 것을 하나도 몰라주니 더 억울하다고...

억울함 = 억수로 울고 싶은 마음? 억지로 울지 못하는 마음?

아버지의 두얼굴

내가 만난 최악의 가정이 있다. 남편은 일명 자수성가한 사람이고, 엄마는 아이들 양육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머리도 좋아서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누가 봐도 부유하고 완벽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그 가정이 깨지는건 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던 아이가 조현병 진단을 받고, 엄마는 우울증으로 매일 베란다 창문이 유혹하는 손짓에 흔들렸고, 동생은 자해를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남편의 폭력이었다. 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니까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된다고 가족들을 협박했고, 자신이 부르면 그 곳이 어디건 5분 안에 집으로 와야 했고, 아이들의 성적이 나쁘면 엄마를 향해 여지없이 폭력이 쏟아졌다.

엄마는 맞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했다. 말로 하지 않으면 때렸고, 잠도 재우지 않았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형은 동생을 시도 때도 없이 때리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남편은 아이들과 부인이 피폐해져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먹고사니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다시 가족들을 괴롭혔다.

비정상적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대로는 모두가 죽겠다는 두려움으로 부인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을때도 그동안 내가 더 먹이고 키워놨는데 어딜 가느냐?며 차라리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큰 아이는 조현병 진단을 받고 학교를 그만두고 입원치료를 받았고, 작은 아이도 품행문제와 자해로 입원치료를 받았고, 엄마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매일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모든 가정이 위와 같지는 않겠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무엇이 문제일까?

가족은 소유물이 아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그 힘으로 약자를 보호해야한다. 아버지는 그리고 남편은 밖에서만 ‘호인’이 아니라 내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바람막이’가 되어주어야 한다. 세상에 아버지를 완벽히 마음에 들어하는 자식은 없다.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아버지의 쓸데없는 고집과 아이같은 행동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자녀와 아내에 대한 변화의 시작은 '사과와 용서'임을 기억하자

몇 년 전 아버지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다. 30대부터 50대까지 아버지 25명이 참석했다. 부인에게 끌려온 아버지, 아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도움을 받기 위해 온 아버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온 아버지 등,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은 같았다.

강사로 오신 분은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 가족이 세상에 치이고 다쳤을 때 마지막에 찾아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그때 괜찮다 애썼다 말해주는 마지막 존재가 바로 아버지다. 그러니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내 아이들 잘 지내고 있나보다 하면 된다.

살아있을 때 대접받고, 존중받을 생각하지 마시라. 아버지는 죽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리워지고 찾아가게 되는 존재다. 살아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세상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보여주면 된다. 윗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하고, 가족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의 행동은 자식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가 된다. 교과서가 잘못하면 자식들도 잘못 된 것만 배우게 된다. 내 아버지도 한때는 아들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내 아들이 언젠가는 나처럼 아버지가 된다. 내가 아들이었을 때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던 것을 지금 내 아이들에게 주면 된다. 그것이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한다! 고맙다! 이런 말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가운데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떤 아들이었고, 어떤 아버지였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자. 그리고 내가 원했던 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내가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제라도 변화를 시도해보자. 여기서 변화의 시작은 '사과와 용서'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