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란의 장도블루노트] 연주회가 끝난 후

이혜란의 장도블루노트(25)... 심포니 모든 역량을 쏟은 후 허무함이 밀려올 때 찾아듣는 음악 희노애락을 여과 없이 담아내 후련함이 느껴지는 심포니 음악에 나를 맡길 때 찾아드는 행복을 느낄 수 있어

2021-12-06     이혜란
▲지난달 예울마루소극장에서 열린 '달빛처럼' 리허설 모습

몇 달에 걸쳐 준비했던 연주회가 끝난 후에는 한동안 피아노 앞에 앉을 수가 없다.

더욱이 연주했던 곡들을 전혀 칠 수가 없음은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연주를 하였기에 나의 육체안에 깃들인 영과 혼이 연주와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마치 종이처럼 바스락거리는 영혼없는 육체는 한참동안 흐느적거리며 빈 허공 속에 떠돌아다닌다.

이제는 내 영혼이 담겨있는 육체가 많이 지친 듯하다. 병원에 입원하여 그동안 무심했던 건강을 체크하여 본다. 연주 후로 만나야 할 이들과의 약속들도 또 저만치 밀어놓는다.

주어진 시간들도 잠재우며 마냥 게을러진다.

음악이 없는 허한 마음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아무 생각 없이 나의 영과 혼을 바닥까지 비우며 있는 그대로인 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사랑 많은 둘째딸을 만나 엄마가 딸에게 어린양을 부리며 마냥 받아주는 그녀와 함께 시간보낸다.

그러면서 피아노가 내게 주는 의미와 지금까지 피아노와 함께 해 왔던 시간들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모든 악기가 등장하는 심포니(Symphony,교향곡)을 듣는다.

아래는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연주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다.

 

‘교향곡’은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다악장형식의 악곡으로 18세기 후반에 형식이 갖추어지는데 기본적으로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이어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으로 고전파 교향곡으로 완성되며 낭만적 이념을 담은 자유로운 형식의 교향곡이 슈베르트, 슈만과 브람스, 시벨리우스, 챠이콥스키와 말러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교향곡을 듣고자 할 때에는 마치 대자연 앞에서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며 온몸으로 자연의 광대함을 느끼듯이 음량을 크게하여 나 자신이 지휘자가 되어 마음껏 음악 속에 빠진다.

때로는 악기의 음색에 빠지며 때로는 모든 악기의 울림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교향곡, 즉 심포니(Symphony)의 어원이 ‘동시에 울리는 음’을 뜻하는 것임에 시대와 작곡가를 초월하게 되는데 몇일 전에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제5번을 여러 번 반복하여 들었고 지금은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을 듣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도 듣고 싶어진다.

교향곡에는 모든 감정들이 음악 속에 담겨있다. 거침없이 하고싶은 말을 한 후의 후련함처럼 꾸미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걸러짐없이 느껴지는대로 전달되는 편안함이 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순전히 음악을 듣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음악을 듣는 순간 내게 들려지는 만큼만 이해하고 싶고 나의 감정에 와 닿는대로 느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교향곡을 들을 때에는 음악에 나를 맡기면 되기에 한결 편안하다.

핀란드의 작곡가인 시벨리우스(J.Sibelius,1976-1981)의 교향곡으로 음악을 바꾸며 딸이 출근한 그녀의 집에서 그녀의 손길이 닿아있는 소소한 일상들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나도 그녀의 엄마가 되어 그녀가 어릴 때 좋아했던 음식을 준비하며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서서히 나의 일상으로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