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 추진위원회 발기인 모임 열려

강용명 상임대표 “여수 최대현안, 좌수영성 복원사업이 결실 이루도록 하겠다”

2021-12-24     오문수
▲22일 오전 10시, 여수시 문화원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 추진위원회 모습. 회의에는 강용명 상임대표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대표 40여 명이 참석했다. ⓒ오문수

22일 오전 10시, 여수문화원 3층 회의실에서는 전라좌수영성 복원을 위한 추진위원회 모임이 있었다. 40여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복원사업 취지와 실천 방향에 대한 로드맵이 제시됐다.

전라좌수영성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1479년(성종 10년) 이후 왜구 방비를 위해 1485년부터 성보를 쌓기 시작해 1490년에 완성한 성이다. 주위 길이가 3,643척, 높이 13척, 동서길이 1,200척, 남북길이 98척, 성내 우물 6곳, 면적 3만5,700평인 성이다.

완성된 지 약 100년 후 이순신장군이 절도사로 부임해 전라좌수영 겸 삼도수군통제영까지 겸하면서 임진·정유의 두 왜란을 극복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성이었다. 화재를 당해 진남관을 잃기도 했으나 중건하였고 성곽 안에는 여러 채의 관아와 누각 등이 설치되어 명실상부한 조선시대 성곽으로서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제와 역사의식 부족 때문에 사라진 좌수영성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상임 대표로 추대된 강용명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문수

국난 극복의 상징인 좌수영성이 사라진 이유가 있었다. 1895년 갑오개혁을 통해 전라좌수영이 철폐되자 좌수영성 또한 방치되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민족정기를 말살시키려는 일제에 의해 철저한 파괴가 이뤄졌다. 1916년에는 일제가 여수를 거점도시로 삼기 위해 해안매립 공사를 시작해 철거된 성벽이 교동소재 선소, 굴강, 수장터 등의 바다 매립공사 현장 속으로 사라져갔다.

1936년에는 성벽이 완전히 사라졌고 동문로가 신설됐다. 현재 진남관만 유일하게 남았고 성곽과 성문, 관아 건물이 모두 자취를 감췄다.

옛 좌수영성은 고지도에만 남았을 뿐 잊혀진 지 오래다. 두 차례에 걸쳐 복원 노력이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수와 함께 이순신장군 3대 성지인 아산, 통영과 비교해 볼 때 그 위상을 지키려는 노력도, 보존과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없어 아쉬움이 크다.

▲호좌수영지에 그려진 전라좌수영 모습. 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 해자도 있었다 ⓒ오문수

200여개 시민단체와 전시민이 참여해 좌수영성을 복원하기로 뜻을 모은 참석자들이 합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범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시민위원회 구성과 출범식 개최
-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을 위한 모금 운동 전개
- 전라좌수영성 복원을 대통령 후보자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는 서명 작업 추진
-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을 위한 시민 공청회 개최
- 추후 지방선거 출마자(도지사, 시장)에게 공약으로 채택 권고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은 여수시 문화원 정행균원장을 비롯한 8개 단체 회장이 공동위원장이 되어 운영하기로 했다. 집행위원으로는 오병종 집행위원장을 위시한 8개 사무국장이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 추진위원회 상임대표로 추대된 강용명 대표의 각오다.

"여수지역 최대 현안은 좌수영성 복원사업입니다. 좌수영성 복원사업에는 여수시 27개 읍면단체와 주민자치회도 참여해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두 차례의 실패를 거울삼아 세 번째는 실패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 추진위원회의 복원취지문이다.

여수시민 모두 전라좌수영城 복원사업에 적극 나서자 !

전라좌수영城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1479년(성종 10년)이후 왜구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성 축조의 필요성을 판단한 조정에서 여수지역에 1485년부터 성보를 쌓기 시작하여 1490년에 규모를 갖춘 성으로 등장했다.

성종실록에는 당시 축성된 전라좌수영城 규모가 주위로 3,643척, 높이 13척, 동서길이 1,200척, 남북길이 98척, 성내 우물 6곳, 성내 면적 35,700평 등으로 나타났다.

그 후 약 100여년이 지나 이순신장군이 절도사로 부임하여 전라좌수영 겸 삼도수군통제영까지 겸하면서 임란을 승리로 이끌고 국난을 극복해 온 자랑스런 성채이었다.

임란 이후에도 추가 축성과 성안에 건물을 지어 좌수영성의 규모와 위용을 유지해 왔다. 화재를 맞아 좌수영성 안의 진남관을 잃기도 하였으나 중건하였고, 성곽 안에는 여러 채의 관아건물과 누각 등이 배치되는 등 곳곳에 성문도 설치돼 전라좌수영성은 명실상부한 조선시대 옛 성곽도시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1847년에 발간된 ‘호좌수영誌’에 수록된 당시 지도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그러나 1895년 갑오개혁을 통해 전라좌수영이 철폐되자 좌수영성 역시 방치되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시대에는 민족적가치를 말살시키려는 일제에 의해 철저한 파괴가 이뤄지면서 성터마저도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현재는 유일하게 진남관만 남아 보존되었을 뿐, 성곽과 성문, 관아건물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마 성곽 터 일부가 남아있었으나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져가고 그 흔적조차 추적하기 어려운 위기에 처하자 전라좌수영성을 복원하려는 시민들의 요구로 민과 관이 나서서 그간 몇 차례 복원을 위해 유적지 성역화사업을 추진해 성안에서는 진남관만 성역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성 복원사업은 겨우 용역조사에만 그치고 이후 전혀 진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또한 지역사회가 여수세계박람회같은 국제적인 이벤트에 치중함에 따라 전라좌수영성 복원 움직임마저 희미해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가고 말았다. 이제는 전통적인 성곽도시 여수 옛 좌수영城은 고지도에만 남았을 뿐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역사현장과 유적지가 눈 녹듯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특히 여수와 함께 이순신 3대 성지인 아산, 통영과 비교해 볼 때 과연 여수는 이 충무공 성지로서 그 위상을 지켜가려는 노력도, 옛 전라좌수영성 보존과 복원 움직임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전라좌수영 영민들의 후예인 여수시민들은 분연히 일어서서 옛 최초 삼도수군통제영과 전라좌수영 본영의 옛 성 복원사업을 범시민운동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전라좌수영성 전체를 일시에 복원하는 사업은 수 천 억에서 조 단위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있다. 단번에 무리한 추진은 예산벽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바,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은 단기 및 중장기로 추진함은 물론 ‘100년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전라좌수영성을 계속 방치해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하는 일은 이순신의 후예로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역사적인 과업에 전 여수시민은 물론 경향 각지의 향우들도 함께 힘을 모아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

우리 참가단체는 이러한 취지에 동의하며 전라좌수영 복원사업에 적극 참여는 물론 범시민운동으로 전개하는 데 앞장설 것을 밝힌다.

2 0 2 1 . 1 2 . 2 2.

전라좌수영성 복원사업 추진위원회

▲전라좌수영성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