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학생의 글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위수연 학생의 글...자살을 꿈꾸는 동년배 청소년들에게도 유익한 내용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삶에 대해서 내가 살아가는 하루에 대해서 큰 생각이 없이 그저 하루를 버티고, 버티다 보면 내 뒤로 이어진 긴 과거의 줄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된다. 적어도 나의 삶은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이 사이에서 형성된 질문들이 가리키는 방향성은 나도 모르고 나를 지켜보는 다른 이들도 몰랐다. 그 후 만난 카뮈의 질문은 내 인생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철학이 의미하는 궁극적인 논쟁 하나, 그것은 자살일 것이다"
윗글은 위수연(고3) 학생이 쓴 '<시지프 신화>를 읽고'의 한 부분을 발췌한 글이다. 필자와 교류하는 이민숙 선생님이 보낸 글에는 " 수연이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 글쓰기가 가장 뛰어난 학생으로 수연이가 쓴 글을 원본 그대로 보냈어요"라고 말했다.
수연이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6년 전 우연히 이민숙 선생님 글쓰기 교실에 들렀다가 수연이의 글을 보고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6년 만에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당시 중1이었던 수연이가 전태일 평전을 읽고 쓴 독후감에 놀란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훌륭한 글을 쓸 줄은 몰랐다. 수연이의 글을 읽었던 안준철 선생님이 오죽했으면 "무덤 속 카뮈가 다시 일어나 수연이한테 표창장을 줄 것 같다"고 칭찬했을까.
청소년들은 삶에 대해서, 앞으로 일어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수연이도 마찬가지였다. 수연이가 쓴 <시지프의 신화>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수연이 글솜씨에 감탄한 필자는 그녀를 직접 만나 고민과 해법을 들어보기로 했다.
시지프는 신으로부터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려놓으라는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산 정상에 올려놓은 바위는 너무도 크고 무거워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시지프 신화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은 부조리다. 수연이에게 "<시지프의 신화>를 읽고 부조리에 직면해 자살을 선택하는 동시대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를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카뮈는 가만히 있어도 죽게 되는 것이 인생이니 굳이 자살할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카뮈는 부조리를 보며 모든 열정 중에서 가장 비통한 열정이라고 정의했어요. 이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단계에서 한계점을 마주하고 비합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이 바로 실존의 지점 즉 자살과 대답이 자리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반항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반항이라는 단어는 책을 읽는 동안 나를 가장 괴롭힌 단어이자 명쾌한 깨달음이었어요. 시지프가 산정에서 굴러떨어지는 돌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건 용기이며 반항이고 그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한 수연이는 니체가 말한 '우리는 저들과 같지 않으며 같은 삶을 살아가지 말라'는 경구와 '평등하지 않은 것이 사람이다'라는 말에 공감을 표한다. 수연이의 말이다.
"저 또한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했어요. 그저 드러누워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 사과에 불평했어요. 끝내 떨어진 썩은 사과를 맛보고 한없이 불평했습니다"
수연이는 니체가 말한 '밤의 노래'란 글을 좋아한다. 현재의 어둠 속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지금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필히 다가올 빛의 기쁨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영원한 아침이 없고, 영원한 밤이 없듯, 우리 인간의 삶은 언제까지나 어두울 수도, 밝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아일랜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철학적 사유하며 심리적 안정 되찾아
수연이가 이민숙 선생님과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이니까 올해로 10년째다. 처음에는 선정된 책을 읽고 요약하며 핵심을 파악하는 훈련을 했다. 토론용 독서퀴즈를 하며 공부하던 수연이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는 역사논술, 시대별 요약, 시대의 특징 등을 배우며 역사의식을 키워나갔다.
어릴 때부터 신화와 과학, 철학, 역사 공부를 통해 사고력을 키운 수연이는 "서울대 교육대학원에서 펴낸 철학 논술용 동화를 읽고 난 후 내가 발전해가고 있구나! 내가 이런 책을 읽을 만큼 성장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졌다.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주최하고 교육부에서 후원하는 제61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학생부 특상을 수상해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이 주는 상을 받았던 그녀는 남한테 주목받는 게 싫어서 공부를 약간 등한시했다.
좀 더 넓은 안목을 갖고 싶었던 수연이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해 미국 1년, 아일랜드 1년의 유학길에 나섰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지금껏 살아온 바와는 다른 한계를 실감하며 막다른 골목에 몰리기도 했다. 차별과 언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수연이를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힘들면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코로나 때문에 1년간의 아일랜드 유학을 중단하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이민숙 선생님을 만난 수연이가 택한 철학 공부는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이다.
멋진 책으로부터 철학적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자기주도적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은 그녀는 신영복 교수의 <강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의 국가>, 동양철학을 읽으며 조금씩 심리적 안정을 찾아갔다. 대화를 끝낸 수연이가 자신의 인생관에 대한 결론을 말했다.
"니체가 인생이란 원래 비통한 것이다.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어차피 죽음으로 가늘 길에서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살아보자고 했어요. 시지프 신화를 읽고 나서, 부조리한 삶을 즐겨라는 글을 대하고 나서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수연이와 동행한 엄마가 말했다. "내가 힘들 때 항상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 친구 같은 딸입니다" 10여년 동안 수연이를 가르친 이민숙 선생님이 말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말자고 가르쳤어요, 한 인격체로서 자기 고뇌를 스스로 해결한 것과, 스스로 설 수 있게 한 것에 대해 한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나는 아직 너무나도 작은 존재일 뿐이며 아무것도 아닌 세상의 오점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오점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라고 반문하며 멀리 사라져가는 수연이가 먼 훗날 위버멘쉬(초인)가 되어 돌아와 우리 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