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기획] ⓺ '덕담' 건네고 '독담' 거둔 설날... 반응은?

듣기 싫은 독담이나 내 자랑 대신 가족위한 따뜻한 한마디로 자신보다 남이 해내기 바라는 보상심리는 금물 간섭은 줄이고 모범보이는 어른이 필요해

2022-02-02     주경심
44년째 ‘마을 합동세배’를 이어오고 있는 여천동 반월마을의 설날 풍경

민족 대명절 설날이다. 코로나 시국에 많은 가족이 모일 수는 없지만 설을 맞이하는 마음은 설레고 분주하기만 하다.

매년 명절 무렵이면 천정부지로 뛰는 물가 앞에 망설이면서 '그럼에도 기본은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애쓴다! 수고했다!" 센스쟁이 필요한 설날

게다가 지금처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며느리는 시댁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시어머니는 아들 내외를 집으로 오라고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한다. 그 중간에 가야하나 참아야 하나 고민하는 아들이 있다. 분주함의 양상은 이렇게 다양하기만 하다.

시국이 이렇다보니 일명 '센스'에 대한 개념도 달라졌다.

센스있는 시어머니는 “며늘아, 이번 설은 코로나도 있다하니 각자 안전하게 지내자”라고 말하고, 센스있는 며느리는 ”어머니, 필요한거 다 주문해뒀으니 끓여만 드세요”라며 못가는 마음까지 밀키트에 담아 전달해야 비로소 시대가 원하는 센스쟁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절이면 긴장 된다. 바로 타인을 위한다는 이유로 던지는 덕담, 아니 ‘독담’이 원인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질문이 상처가 되고, 뒤이어 공부에 대한 얘기와 다른 형제 자매와의 비교가 듣고 싶지 않은 독담이라고 한다.

또한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꼽은 독담은 ‘누구는 취직 했다더라' 하는 말이고, 직장인의 경우 결혼이야기에 이어 남과 비교하는 이야기가 있다.

더불어 여러 이유로 평균 세 가정 중에 한 가정이 난임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출산’에 대한 언급은 상당한 스트레스와 불편감을 가져올 수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듣기 싫은 독담으로는 ‘자랑질’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고 눈치가 있어야 절간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을 수 있듯이,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묻지 않는 자랑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독담과는 반대로 설날에 듣고 싶은 덕담으로는 가벼운 안부를 포함해 긍정적인 이야기가 차지한다. 바로 ‘좋아 보인다' '애쓴다' '건강해 보인다'는 말이다.

특히 주부들은 진심 어린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주부나 며느리라는 이유로 그들의 신체노동을 당연시 한다면 설은 '풍요와 감사를 나누는 민족대명절'이 아니라 '가족붕괴와 부부싸움의 촉발요인'이 될 뿐이다.

이렇게 주부들의 노동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풍토 때문에 명절은 스트레스의 한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를 전후로 두통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주부가 늘고 있다.

덕담과 독담의 차이

▲간섭은 그것을 하는 자만 만족을 느끼는 행위이다.

덕담과 독담의 차이는 뭘까?

덕담은 관계를 좋게 하지만 독담은 관계를 나쁘게 만든다. 덕담은 타인을 위한 말이지만 독담은 타인을 상처내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덕담은 어디서든 환영 받지만 독담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독담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안다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친하다는 이유로, 걱정된다는 이유로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내가 너니까 해주는 말인데...
나 이런말 아무한테나 하지 않는데...
내가 너한테만 특별히 해주는 거야.

덕담을 가장한 독담을 내뱉으며 합리화하는 이유는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 하지 않으면서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도 타인에게 필요한 상황이 아니고 타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간섭일 뿐이다.

그리고 그 간섭을 통해 만족을 느끼는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결혼하라는 말이 하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주위에 모범을 보이면 된다. 취직하라는 말이 하고 싶다면 직장생활의 만족감을 경험한 이야기를 하면 된다. 또 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으면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점,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타인에게 요구하는 행위를 우리는 ‘보상심리’라고 한다. 즉 '너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말을 하지만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이며,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을 타인에게 떠넘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타인에게 얼만큼 상처를 줬는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타인이 조금이라도 불편감을 표시하면 이런말이 오간다. 

성격 참 이상하네.

아니 잘되라고 해줬는데 되려 성질을 내?

그래서 네가 안되는 거야. 

 누가 너한테 그런 말 해달래?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한 명절이 되려면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나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유연하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채 조금의 상처도 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겁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이 상처받지 않으려고 타인을 먼저 공격하고, 애써 강한 척 하면서 약한 사람을 보면 "이렇게 험한 세상을 그렇게 약해서 어찌 살아내겠냐?"라고 거들먹 거린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경험치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마련이다. 평생 고기만 먹은 사람과 이것저것 먹어본 사람이 대하는 음식과 식사에 대한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 타인에게 무언가를 던질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이것이 나의 문제인가? 너의 문제인가?"를 구분해야 한다.

나를 어른으로, 친척으로 존중하고, 친구로서 인정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상처주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자.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애써 어른인 척, 멋진 척, 있는 척, 배운척 하지 말고 “괜찮아?”라고만 묻자.

그렇게 한다면 명절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는 끔찍한 날'이 아니라 '풍요롭고 행복한 날’로 기억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