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정신에 반란의 불꽃을’ 여순항쟁 올바르게 이해하기

르포소설 여수역 저자 양영제, ‘여순10.19 정신현상’ 주제로 세미나 여순항쟁이 지역에 남긴 집단사회심리 파헤쳐.. 시민 개별정체성에 영향 여순항쟁은 시민들이 일으킨 민족저항, 다음 세대가 자긍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2022-03-26     전시은
▲양영제 소설가가 에그갤러리에서 여순10.19가 시민들의 의식에 끼친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르포소설 ‘여수역’의 저자 양영제가 26일 여수 도성마을에 위치한 에그갤러리(관장 박성태)에서 ‘여순10.19 정신현상’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 앞서 박해수 바이올리니스트가 피아졸라의 곡 ‘오블리비언(망각)’을 연주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여순항쟁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곡 선정이었다.

양영제 작가는 먼저 자신은 역사학자가 아니고 학자들이 연구한 바를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려 한다며 세미나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73년 전의 여순항쟁이 망각 속에 사라졌음에도 현재까지 중요한 이유를 “망각은 예기치 못하게 튀어나와 현실과 결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영제 작가는 여순사건을 겪은 어머니를 둔 2세대이다.

양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여순항쟁을 겪은 시민들의 집단 무의식은 이후로도 3세대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이들이 개별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양 작가는 “여순사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여수에 드리워져 있는 망막의 그림자를 없앨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수에서 태어난 양 작가는 과거 여순항쟁을 반란사건이라고 교육받았다. 때문에 스스로를 반란이 일어난 지역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정체성이 형성될 시기에 교과서에 적힌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설명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그는 그 후로 자의식을 접할 수 없었다.

▲양영제 작가는 1948년 당시 여수의 정서를 이해해야 역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순은 항쟁이므로 지역에서 긍지를 갖고 살아야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레드컴플렉스에 갇혀 있다. 이걸 벗어던져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우리는 역사를 새로 인식해야 한다.”

양 작가는 다음 세대에 여순항쟁이 반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주려면 이들이 ‘추체험적 인식’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즉, “그 당시에(1948년 여수에서) 살아본 것처럼 생각을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정서를 이해한 후에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추체험적으로 인식해야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양 작가의 설명이다.

“여순항쟁은 시민들의 저항이지 절대 남로당의 책동으로 발발한 게 아니다. 여수 시민들의 아나키즘 정신이 14연대에 의해 촉발되었을 뿐이다. 독립운동가 당수 유림, 우당 이해영이 조선의 아나키스트이다. 여순항쟁 당시 사회주의 선호도가 70%가 넘었지만 이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던 게 아니라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원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국민은 억압을 당하면 그 원인제공자가 누구든 저항하게 돼있다. 즉, 아나키즘과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당시 여수에서 코뮌이 만들어진 것은 아나키즘 정신과 시민운동이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양영제 소설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여순항쟁에 명예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순항쟁은 대한민국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국가보안법과 학도호국단, 연좌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친일, 친미, 반민족 우파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 양 작가의 설명이다.

“여순항쟁 1세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커다란 죄책감 탓에 반동형성이 일어나 시민들은 기존 질서에 동화되었고, 여순항쟁을 잘못된 일로 인식하는 방법을 택했다. 여수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순응했고 이 때문에 여수시민들이 오히려 더욱 반공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여순항쟁을 14연대의 반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항쟁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특별법 통과가 만사는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여순항쟁에 명예를 부여해야 한다. 국가가 정의를 바로세울 때 경찰유가족과 학살 유가족이 화해와 상생을 할 수 있고 그제야 비로소 해원이 이뤄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양 작가의 세미나가 끝나고 주철희 역사학자의 마무리발언이 이어졌다. 주 박사는 “지역사회의 힘을 모아 여순특별법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여기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여순위원회에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역사를 새롭게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청중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박해수 바이올리니스트가 피아졸라의 곡 ‘오블리비언(망각)’을 연주하고 있다.
▲도성마을 에그갤러리.

이날 세미나에는 선원동에 사는 60대 선 씨도 참여했다. 그는 “여수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순사건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우리 부모세대가 겪었던 아픈 사건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강의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앞으로 여수시민으로서 더 많이 알고 새롭게 바꿔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