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 집단시설 인권침해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발간

"집단수용시설 구조적 인권침해 확인... 국가 책임 명백”

2022-04-21     조찬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진실화해위원회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정근식)는 『집단시설 인권침해 실태조사 연구용역 사업 -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및 강원권』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연구용역은 집단수용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의 성격과 국가책임 여부를 규명하는 것으로, 수도권(서울·경기·인천)과 강원 지역 시설 13개소에서 1993년까지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해당 연구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의뢰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에 의해 진행됐다.

연구진은 5개 시설에서 1970년대부터 1993년 이전까지 작성된 입·퇴소 기록과 사망자 관련 기록 등을 입수해 분석하고, 집단수용시설 수용 경험자들의 구술인터뷰 등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부랑인 일소’ 명목 일제단속… 연고자 비율 60% 넘기도

우선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한 단속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이 확인됐다. 1960년대 이후 집단수용시설 입소 경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행정기관을 통한 인계’였다. ‘부랑인 일소’를 명목으로 한 단속은 1980년대 초중반까지 활발히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연고자 확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입소자들의 신상기록카드를 분석한 결과, 전체 입소 사례 중 연고자가 있는 입소자의 비중이 60%를 넘는 시설들도 존재했다.

보고서는 “일제단속 행정이 무연고자 등 생활보호 대상자를 엄격하게 가려내고, 이들을 자의에 기반하여 수용조치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형태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한 수용시설로의 수용처분이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의 분쟁과 갈등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보고서는 사소한 친구들과의 말다툼, 경찰 행정에 대한 시비 등이 자의적인 수용조치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선행연구의 성과들을 다시 확인했다.

시설 내 사망률, 최대 30배… 일상적 감금·폭력

연구 결과 “단속 및 수용처분 과정뿐 아니라 집단수용시설 내에서 매우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인권침해가 지속해왔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퇴소 과정과 그 이후의 삶에서도 집단수용시설에서의 경험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피해는 지속됐다”고 결론지었다.

부랑인 ‘보호’라는 명분이 무색하게도, 집단수용시설 입소자의 사망률은 일반적인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연구진은 집단수용시설 사망자 통계 분석을 통해, 1980년대 중후반 집단수용시설 내 사망률이 일반 한국 성인의 20~30배에 달했음을 밝혔다.

1986년 한국 성인(15~64세) 사망률은 0.41%인 반면, 시설에서의 사망률은 8.2~12%로 조사됐다. 이는 집단수용시설 입소자는 같은 시기 성인과 비교할 때 수명이 13~23년 정도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집단수용시설에 입소시키는 것은 국가가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높은 사망률은) 시설 환경이나 운영이 매우 열악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연구진은 수용 경험자들의 구술인터뷰를 통해 감금과 폭력 등 집단수용시설 내 인권침해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그밖에도 입소자들은 주거·식사·위생·의료·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서 광범위한 인권침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명분은 사회복지, 실상은 ‘치안’ 목적… “국가 책임”

연구진은 단속·수용 과정뿐 아니라 집단수용시설 내에서 발생한 심각한 인권침해에 “국가의 책임이 명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진은 “집단수용시설과 관련한 법률은 구호와 사회복지를 목적으로 제정됐지만 이러한 법률에 근거한 집단수용시설의 설치와 운영은 치안의 성격이 더 강했다”라며, “국가가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법률을 위반하여 인권침해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보고서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집단수용과 관련한 인권침해는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연구에 대해 “집단수용시설 내 다양한 인권침해 양상을 조사하고 국가적 책임을 확인한 점은 아주 중요한 성과”라며, “연구 결과를 향후 조사활동에 적극 반영해서 진실규명의 길을 열어나가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한편, 『집단시설 인권침해 실태조사 연구용역 사업 -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및 강원권』 보고서는 진실화해위원회 누리집(www.jinsil.go.kr, 자료실 > 일반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