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노리는 데이트폭력 '가스라이팅'

[주경심 상담칼럼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연인에게 행하는 폭력 '가스라이팅!’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어 결국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회복시키는 것도 사람’

2022-06-18     글:주경심, 편집:심명남
▲ 출처 pixabay ⓒ주경심의 상담칼럼

30살 지민씨(가명)는 3년 전 사귀었던 남자친구로부터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이후 모든 일에서 자신감이 사라졌다.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서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도 선뜻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데이트폭력의 또다른 이름 '가스라이팅!'

화가 나는 건 3년 전에 자신이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것을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지만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지민씨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니가 잘못하고 있어

너 같은걸 사귀느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는 내게 정신적 피해보상을 해야 돼.

지민씨는 헤어지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져야 했지만 이렇게 있다가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직장과 집, 친구까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이후에도 한동안 남자친구가 다시 찾아올까봐 외출도 마음 편히 하지 못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가스등 (1944년 영화)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의 작가이자 미국 정신분석 심리치료사인 로빈 스턴은 영화 가스등(Gaslight)의 제목을 인용해 가스라이팅(Gaslight Effect)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영화는 아내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남편이 온갖 속임수와 거짓말로 멀쩡한 아내를 정신병자로 만드는 과정을 그렸다.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희미하게 해놓고 아내가 어둡다고 할 때마다 "당신이 잘못 본 거야,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계속 핀잔을 준다(tell her off).

또 주변 환경과 소리까지 교묘히 조작해서 현실감을 잃도록 해 갈수록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자책하며 가해자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가스등 효과(Gaslight Effect)'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이런 행위를 하는 자는 '가스라이터'라고 한다[출처: 위키백과]

▲ 출처: pixabay

지민씨의 경우도 남자친구는 지민씨의 직장생활 및 친구관계, 돈 씀씀이, 옷 입는 스타일, 그리고 스킨십 방식까지 간섭하고 통제 했다. 이유와 상관없이 화가 날 때면 모든 것을 지민씨 탓으로 돌린 채 때리고, 괴롭히면서 지민씨가 울면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해야 비로소 지민씨를 용서했다. 그런후 이렇게 말했다. 

나같은 남자 없다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그런거야.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지민씨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조금만 참으면 남자친구 화가 풀려 다시 자신에게 잘 해 줄꺼라 믿었기 때문이다.

영화 가스등 역시 ‘전등이 좀 어둡죠?’라고 말하는 부인에게 남편은 ‘아니 어둡지 않아. 당신이 착각한거야!’라는 말로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스스로 의심을 품게하고,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는 어떤 것도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것을 이용해 여자의 재산, 신체, 정서, 감정, 가치관까지도 다 통제하고 조절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출처: pixabay

상담에 오는 성인 중 많은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에 대해 언급한다.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가스라이팅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여성의 피해가 월등히 높다. 자신만이 소유하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를 조정하려는 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심리상담사가 본 인간의 기본적인 5가지 욕구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사인 윌리엄글래서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다섯가지 욕구가 있는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기 때문에 직장이나 가정, 사회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섯가지는 바로 이것.

첫째, 생존의 욕구는 생명을 유지하고 생식을 통해 생존하려는 욕구.

둘째, 사랑과 소속의 욕구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욕구로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결속되려는 마음.

셋째, 힘의 욕구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구.

넷째, 자유의 욕구는 삶의 영역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다섯째, 즐거움의 욕구는 작은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욕구.

가스라이팅은 이 다섯 가지 욕구 중에서도 사랑과 소속의 욕구뿐만 아니라, 힘의 욕구, 자유의 욕구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더불어서 자신의 생각과 의사표현을 통해 타인을 통제할 수 있고 영향력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한번 가스라이터가 된 사람은 대상이 바뀐다고 해도 그 행위를 쉽게 멈출 수가 없다. 그는 이런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 

연인사이에 사생활이 어딨어!

그러니까 하루에 한번씩은 나한테 통화내역이랑 문자 공개해!

니가 다른 사람 만나는거 싫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 만날려면 나한테 허락받아!

연인사이 스킨십은 당연한거야. 거부하는게 이상하지!

만약 나 버리고 딴 놈 만나면 죽어버릴거야!

니가 자초한거다. 그러니까 넌 길에 버려져도 내 탓 하지 마

앞으로는 뭐든 나한테 허락받고 해라. 넌 믿을 수가 없어!

▲ 출처:pixabay

너무나 많은 통제와 폭력적인 언어들이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되어서 행해지고 있다. 지민씨도 그랬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건 아니어서 만났고, 자신이 조금만 노력하면 달라질 것 같았다고...

착각.... 서로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사랑? 

언젠가부터는 남자친구의 모든 행동이 적응이 돼서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됐는데, 문제는 갈수록 간섭과 폭력이 심하고, 자신을 인간이하로 대하는 모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됐다고 말을 했다. 지민씨는 가스라이팅과 데이트폭력을 당하면서 점점 무기력해져갔던 것이다.

결혼적령기가 됐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다는 지민씨를 이토록 아프게 한 것도 사람이고, 지민씨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그걸 알기에 지민씨는 남자친구가 해주지 않았던 위로와 격려를 받고자 상담실로 찾아왔다. 믿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어떤 상처보다 아프고, 흉터도 오래 남는다.

아직도 많은 연인과 부부는 서로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상황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한쪽은 철저한 피해자로, 한쪽은 완벽한 가해자로 서로가 서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헤어질 때 한쪽은 ‘많이 아팠다’고 말을 하고, 한쪽은 ‘내가 잘못한게 뭐냐?’고 따져 묻는다. 이제 사랑을 다시 정의할때다. 사랑은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이해로 마무리 된다. 내 입맛에 맞추기 위해 상대를 바꾸려는 것은 나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시도일 뿐 결코 사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