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몽골여행기4] 멸종위기에 빠진 몽골 가젤, 실제로 보니
몽골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유전지대가 있는 곳
할힌골에서 한국인들의 조상일지도 모를 석인상을 확인한 일행이 하룻밤 묵기로 선택한 곳은 보이르호숫가에 있는 '보이르 패밀리리조트'. 여름철 이외에는 손님이 없어 주변 캠프장은 모두 철수했는데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니 주인이 나타나 문 열어준다. 리조트는 제법 깨끗하고 웬만한 시설은 다 있었다.
둥근돔 형태의 글램핑 시설에 침대, 에어컨, 냉장고, 식탁은 물론 따뜻한 물로 샤워도 가능했다. 밤새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피곤한 몸을 녹이는 자장가였다. 주방 아주머니가 호수에서 잡았다는 메기를 손질해 가져와 기름에 튀겨 아침밥을 먹고 캠프장을 출발했다.
일행의 다음 목표는 수흐바타르 아이막 다리강가솜. GPS를 보며 포장도로를 찾는데 1m크기의 잡초가 우거져 포장도로가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헤매다 드디어 포장도로를 찾았다. 깨끗하게 포장된 왕복 2차선 도로다. 몽골초원에서 포장도로를 만난다는 건 인근 어딘가에 커다란 도시나 마을이 있다는 것이지만 마을이 없는 곳에 포장도로가 있는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원유 운반 트럭 외에는 거의 차가 없는 초원에는 가축을 기르는 유목민도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오직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수풀 속으로 달아나는 가젤무리들 뿐이다. 운전사이자 가이드 저리거씨가 피곤할까 봐 길가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끓이는데 10여미터 앞에 가젤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4㎞쯤 달리니 또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멸종위기에 빠진 몽골 가젤
몽골 동부 지역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지프를 타고 달리다 만나는 가젤 무리이다. 최대 1만마리의 몽골 가젤로 이뤄진 무리가 스텝지대를 쏜살같이 내달리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기분이다. 끝없는 평원에 먼지구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저명한 생물학자인 조지 샬러(George Schaller)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어마어마한 수의 가젤무리를 보았고 이를 야생동물이 연출해 내는 세계적인 장관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계와 야생동물 고기 판매를 목적으로 한 무차별적인 포획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가젤의 수가 50% 이상 급감했다.
현재 야생에 남아있는 몽골 가젤의 수는 100만에서 200만 마리로 추측된다. 매년 전체 개체수의 약 20%에 해당하는 20만 마리가 불법으로 포획되고 있다고 한다. 목축업을 하는 가정의 약 60%가 매년 약 8마리의 가젤을 사냥한다.
요즈음 동몽골초원의 주인 가젤의 서식처가 위협받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가축의 방목, 도로건설, 울타리 설치 등으로 가젤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이는 가젤 개체수를 줄이는 또 다른 요인이다. 광업도 가젤을 위협하고 있다. 도르노드 아이막 남동 지역에서 석유를 채굴하기 위해 한때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에 각종 대규모 시설이 건설되었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몰려 왔다.
몽골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동몽골유전지대
우리가 달리는 포장도로는 몽골에서 생산된 원유를 싣고 중국까지 달리는 산업도로인 셈이다. 300여㎞에 달하는 원유 운반도로에는 원유를 가득 실은 커다란 중국 트럭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몽골에는 원유정제시설이 없어 중국이 채굴하고 원유까지 중국으로 가는 도로의 시작점은 몽골유전지대이다. 일행이 속상했던 것은 유전이 없는 지역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였다. 속 보이는 중국 모습이지만 힘없는 사람들의 설움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첫 번째 유전지대를 지나 두 번째 유전지대를 가니 50여개의 유정에서 펌프질하는 기계들이 보였다. 몽골이 하루빨리 채굴 방법을 배우고 정유해 부국이 되기를 빌며 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에르덴차강솜에 들러 차에 기름을 넣고 가게에서 먹을 것과 식수를 산 후 실링복드를 향해 출발했다. 저녁에 눈이 온다는 예보를 듣고 마을 호텔에서 숙박할 것인가를 논의했지만 할힌골호텔이나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 초원에서 야영하기로 결정한 후 길을 떠났다.
조그만 개울가에 널린 가축똥을 치우고 텐트를 설치해 밥을 한 후 침낭속으로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따다닥! 따다닥! 침낭 속에서 천막을 바라보니 눈이 쌓였다. 아직 9월인데! 몽골은 몽골이다. 텐트 안 온도는 영상 17도인데 바깥 날씨는 9도 정도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체감온도는 훨씬 낮을 것 같다.
텐트에 쌓인 눈을 털고 초원을 달리는데 앞에서 소떼를 몰고 오는 유목민이 보인다. 유목민에게 다가가 갈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주는 몽골 유목민. 물도 충분하지 않은 초원에서 가축똥으로 불을 지펴 보온과 식사를 하는 유목민의 강인함에 고개가 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