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베를린 감동의 무대 여순사건 ‘검은 풀’ 공연

[창간 11주년 특집인터뷰] '검은 풀' 작곡가 라이너 펠트만 교수(통역: 곽연후/이은주) 여수 출신 젊은 뮤지션 유진오케스트라 이은주 대표와 곽연후 현악총괄

2022-11-30     심명남
▲ 여수넷통뉴스 창간 11주년을 맞아 특집인터뷰에 나선 검은 풀 작곡가 라이너 펠트만 교수 부부와 유진오케스트라 이은주 대표(좌)  음악총괄 곽연후(우측)씨의 모습 ⓒ 심명남

 

저는 김치를 많이 사랑해요. 저에게 한국은 곧 여수입니다

여순사건을 다룬 ‘검은 풀‘을 직접 작곡한 베를린음대 교수 겸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라이너 펠트만(Rainer Feldmann) 교수(63세) 말이다. 그의 여수 사랑은 특별하다. 그가 쓴 <여수야 사랑해>를 통해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여수야 사랑해! 그리운 여수야. 언제 볼 수 있나. 당신이 그리워요. 예울마루의 음악과 여수 밤바다~ 제일 그리워요.

 

여수야 사랑해! 여순사건 창작곡 '검은 풀' 

지난달 10월 9일 여수 예울마루에서 한독 한마음 유진오케스트라가 여순항쟁을 주제로 음악회를 가졌다. 제11회 유진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가 바로 그것. 이날 김사도 지휘로 펠트만 교수의 창작곡 ‘검은 풀’(Schwarzes Gras) 공연이 여수에서 세계 최초로 펼쳐졌다.

‘검은 풀’은 라이너 펠트만 교수가 여순항쟁을 보고 직접 쓴 곡이다. 검은 연기로 휩싸였던 여수를 배경으로 여순사건으로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추모하는 곡이다.

펠트만 교수가 여수와 인연을 맺은 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다. 동료인 얀 토마스(Jan Tomes) 베를린 국립음대 바이올린 교수와 처음 여수에 온 이후 다섯 차례 한국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부인과 함께 여수를 찾았다. 그의 여수 사랑이 가을 단풍처럼 붉게 물들고 있다. 검은 풀 공연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여수에서 여순사건을 다룬 검은 풀 연주도 의미가 있지만,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연주하고 이 사건에 대해 음악과 예술활동을 통해 널리 알리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 2022년 현대음악페스티벌 연주회 모습 ⓒ 이은주 제공

10월 여수공연에 이어 지난 11월 6일 자신의 고국인 베를린에서 한독 한마음 유진청소년오케스트라(단장 이은주, 지휘 김사도)와 독일자유청소년오케스트라(FreieJugendorchester)는 2022년 현대음악페스티벌(Kiangwerkstatt in Berlin)에서 라이너 펠트만 창작곡 ‘검은 풀’과 김사도 지휘자가 편곡한 전통 국악 관현악곡인 ‘축연무’ 연주회를 가진바 있다(관련기사: 여순을 기억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검은 풀’ 연주한 유진청소년오케스트라)

<여수넷통뉴스> 창간 11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16일 소호동에 위치한 태백산맥에서 펠트만 교수와 특별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독일 펠트만 교수 부부와 독일 유학파 유진오케스트라 이은주 대표, 그리고 곽연후 바이올리니스트 가족이 함께했다. 펠트만 교수가 여순사건에 관심을 가진 이유에 대해 유진오케스트라 이은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첫번째 시작은 여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여수의 가장 근원적인 아픔부터 시작해 기쁨까지 모두 알고 싶어 했어요. 여순사건에 관심이 있어 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 소장님을 찾아가 교육도 받고 칼마이던스의 책과 사진을 선생님께 보내드렸죠. 당신이 사랑하는 여수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알려드렸더니 독일에서 그와 비슷한 2차 세계대전때 히틀러의 아픈 사건이 연상되었다며 가슴 아파했어요.

▲ 유진오케스트라 이은주 대표는 소호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시작으로 올해 11년째 여수음악인 꿈나무들의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은주

여수의 젊은 뮤지션 '유진오케스트라'

이후 펠트만 교수는 여순사건에 몰입했단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를 빗대 여순사건도 비슷한 사건”이라 말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다른 점에 대해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해 철저히 반성하고 청소년에게 처음부터 교육했지만, 한국은 그와 반대로 이 사건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진단했다. 아래는 펠트만 교수와 나눈 인터뷰다.

- 검은 풀 공연은 어떤 공연인가요

”여순사건을 기억하고, 직접 연주하고 싶어 오케스트라와 함께 기타가 협연하는 곡을 썼어요. 연주시간은 7분 22초 정도입니다. 여순사건에 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 논문을 보면서 학교에서 손가락 총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여수 시내가 화재로 인해 검은 연기에 휩싸이는 사진을 보고 검은 풀이 생각났어요. '따다당' 하고 관악기들이 차례로 나오고 플루트, 트럼펫, 트럼본 순서로 '빠바방' 하면 그게 손가락 총을 의미하고 더블베이스가 처음에 '뿌~우'하고 울리거든요. 마치 진혼곡처럼 땅의 모든 영혼을 불러요.“

- 검은 풀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요?

”저는 여수를 정말 좋아합니다. 여수사람들과 인연이 깊어 이 사건을 들었을 때 굉장히 쇼크를 받았고 슬펐어요. 여수에 대한 정이 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여순사건처럼 독일에서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도 그렇고 프랑스를 가든 어딜 가든 항상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앞장섰어요. 이같은 사건 앞에서 우리는 다 하나입니다. 그 사건들 을 인종으로 나눌 게 아니라 우린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독일에서도 그런 아픔이 있었는데 여순사건은 그와는 완전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사건자료를 보면서 이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 여수넷통뉴스 창간 11주년을 맞아 특집인터뷰에 나선 검은 풀 작곡가 라이너 펠트만 교수의 모습 ⓒ심명남

- 완전 다른 느낌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순사건은 분단되기 전이잖아요? 독일은 본인들의 실수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켜 동서가 갈렸기 때문에 분단은 피해갈 수 없는 거였다면 남북한은 강대국에 의해서 분단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독일은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그런 교육을 시켰지만 한국은 아직 침묵하고 덮여 묻혀있다는 사실이죠.“

자연스럽게 청소년 오케스트라 유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펠트만 교수는 ”여수의 유진오케스트라가 여수 음악인의 후학양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또 당시 연주회를 찾은 한국 유학생의 부모가 펠트만 교수를 찾아와 그의 숨겨진 선행도 뒤늦게 알려졌다.

전주사는 펠트만 교수의 한국제자 A군의 어머니는 이번 연주회 때 교수님을 직접 찾아왔다. 이후 또 뵙고 싶어해 그 사연을 물었더니 유학 간 아들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독일에서 아르바이트로 유학을 이어온 아들이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가 끊겼다. 결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했더니 펠트만 교수는 곧바로 만류했다. 자신이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돈을 대주겠다며 직접 도움을 줬다. 또 제자가 계속 유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애틋한 사연은 훈훈한 미담으로 남았다.

- 지방 여수에서 유학 간 사람과 대도시 서울에서 유학 간 사람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여수나 서울에서 온 학생들의 차이점은 전혀 없어요. 한국인이 독일에 온 이유는 독일이 클래식의 나라이기 때문이예요. 서양음악의 본고장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익히는 건 엄청난 경험이지요. 훌륭한 교수진도 많죠. 특히 이은주 선생님은 20년 가까이 독일로 학생들을 보내고 있어요.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해외 유명한 교수님들을 초청해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가능성 있는 학생들에게 독일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죠. 이은주 선생님의 그런 역할 덕분에 여수에 재능있는 학생들은 독일 유학을 더 쉽게 적응하는것 같아요.“

- 타국에 비해 한국 유학생 평가를 하신다면

“한국 유학생 정말 잘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인들이 유학을 많이 오는데 특히 한국인의 재능있고 부지런한 모습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예요.”

- 다른 선생님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나요?

“당연하죠. 인종과 상관없이 좋은 선생님이 있는 곳에 좋은 학생이 있어요. 독일에 있는 오케스트라에도 좋은 한국인 음악인들이 많아요.”

문화도시 여수...베를린 국립 음대교수에게 묻다 

- 유진오케스트라가 후학양성과 연주 등을 어렵게 운영하는데 여수시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여수시가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진오케스트라는 전문연주자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유진오케스트라는 전문연주단이 아닌 청소년 오케스트라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은 환경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일정한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향후 계획이 있다면

“내년 10월 75주년 여순사건때 학생들과 같이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판문점의 봄’과 검은 풀 2버전인 여순사건을 주제로 4중주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곡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혹시 이야포 미군 폭격사건에 대해서도 연주할 수 있나요?

“처음 여수가 생소했는데 지금은 독일에 있는 이웃처럼 느껴집니다. 새로운 곡을 쓸 수 있냐고 물었는데 이야포사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지난 6일 베를린에서 한독 한마음 유진청소년오케스트라(단장 이은주, 지휘 김사도)와 독일자유청소년오케스트라(FreieJugendorchester)와 2022년 현대음악페스티벌(Kiangwerkstatt in Berlin)에서 '검은 풀’과 ‘축연무’ 연주회에서 이은주 대표가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이은주 제공

한편 유진오케스트라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오디션을 통해 1년에 2번을 평가한다. 레벨이 필요한 현악기는 2월, 관악기는 7월에 뽑고 있다. 유진오케스트라 탄생은 소호초등학교와 자매결연으로 시작되어 올해 11회를 이어왔다. 현악총괄책임에 곽연후 선생님과 음악감독은 이은주 대표가 맡고 있다. 앞으로 포부를 이은주 대표에게 물었다.

유진이 청소년 오케스트라지만 학생들과 더불어 각 파트에 훌륭하게 공부를 마치고 온 젊은 선생님들이 충분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일자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곽연후 선생님을 시작으로 여수시가 후원한다면 젊은 음악가들이 고향인 여수를 떠나지 않고 머물며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 여수넷통뉴스 창간 11주년을 맞아 특집인터뷰에서 펠트만 교수 부부와 독일 유학파 유진오케스트라 이은주 대표, 그리고 곽연후 바이올리니스트 가족의 모습 ⓒ심명남

베를린에서 클래식을 마스터한뒤 고향에 정착한 여수 출신 젊은 뮤지션들이 대도시로 떠나지 않고 여수에서 후학양성을 결심한  현악총괄 곽연후(29세)씨의 말은 지방소멸시대 그나마 작은 위안을 안겨준다.

제가 여수를 떠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요. 동시에 여수는 제가 자라난 곳입니다. 제가 은주 선생님께 잘 배웠듯이 독일에서 배운 것을 여수에 있는 음악인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여수를 음악이 살아 숨 쉬는 문화의 도시가 되는데 진심으로 일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