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쌍굴다리 벽에 새겨진 ○△□의 진실
[창간 11주년 특집] 노근리 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을 만나다 노근리 쌍굴다리 비극의 총상...마치 오징어게임’ 보는듯 '섬짓' 8년전 뉴욕타임스가 깊이 애도한 정은용 선생... 애국의 의미를 되새기다 정구도 이사장의 명강연... 노근리에서 이야포미군포격사건 해법 찾아야
과거 아픔의 추모와 미래 평화를 위한 격려의 공간으로 탄생한 노근리 평화공원을 찾았더니 ‘비극의 끝 평화의 시작’이라는 단어가 눈에 쏙 들어왔다. 충북 영동군 노근리의 쌍굴다리 벽면에는 생소한 기호들로 가득했다. 이를 본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저게 무슨 의미지? 왠지 오징어게임 보는 기분이네!
오징어게임 보다 훨씬 잔인한 노근리 쌍굴다리 비극
쌍굴다리에 하얀색으로 그려진 동그라미, 네모, 세모 표시를 처음보고 마치 넷플릭스 인기작 <오징어게임>의 기호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빗나갔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난 뒤 고개가 숙연해졌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비행기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양민을 학살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탄환이 아직 박힌 곳은 세모(△) 흔적만 남은 곳은 동그라미(○) 명확하지 않은 곳은 네모(□)의 뜻이 담겼어요. 당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인근에 지어진 평화공원 입구 역시 쌍굴다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으로 지어졌습니다.
지난달 5일 본지와 여수시의회 이야포미군폭격사건 특별위원회가 공동기획으로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한 노근리 평화공원 현장답사를 다녀왔다. 박성미 이야포특위 위원장을 비롯해 40여명이 참석했다.
주최측은 노근리 특별법 제정과정을 알아보고 노근리 평화공원과 미군폭격사건 현장인 쌍굴다리를 둘러보며 제2의 노근리사건인 이야포미군폭격사건에 대한 특별법 제정과 노근리 정신을 배우고자 마련한 행사였다.
노근리사건은 6.25 전쟁 초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말한다. 학살은 1950년 7월 26일부터 4일간 이어졌다. 故 정은용 노근리 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해 노근리사건 생존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노근리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결국 1999년 AP통신의 보도로 클린턴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했고 한미 양국 조사단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 결론지었다. 생존자들은 사망, 부상 또는 실종 인원을 총 248명이라 신고했다.
선친은 평생 동지 "아버지 소설읽고 인생 판도 바꿨다"
노근리사건 발발 일주일 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이야포미군폭격 사건은 1기 진화위 조사결과 250여명이 탄 피난선을 미군폭격기가 폭격해 150여명이 사망하고 피해자 중 5명의 희생자만 확인했다. 노근리 사건과 궤를 같이한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노근리 국제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은 ”6.25 전쟁이 없었으면 제가 막내가 됐거나 안 태어났을 것 같은데 부모님은 거기서 아들딸을 다 잃었고, 내가 큰아들로 태어나 이 시대에 노근리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어 33년째 이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여수가 여순사건을 해결하고 여수시의회 박성미 위원장님을 비롯해 위원들이 중요한 이슈로 이야포미군폭격사건에 대해 진실규명과 인권 평화를 위한 노력이 있는 것 같아 참 보기 좋다”면서 “그렇게 하는 동네가 많지 않은데....”라며 일행들을 응원했다. 그는 말이 이어졌다.
노근리사건은 명확히 미군에 의해 이루어진 전쟁 범죄 행위예요. 5일 동안 벌어졌어요. 그게 어떻게 학살이 아니겠어요? 사실 미국은 우리의 우군인데 친구나라 와서 공격하고 거기다 어선이고 피난선이고 작살내고 그 많은 이들이 돌아가셨잖아요. 여기 계신분들이 비록 힘들더라도 우리 아이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분이 관광오면,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는데 안도에 그분들이 오시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돼요. 노근리도 운영이 잘 되니까 영동군에서 8만 평을 더 사서 평화치유의 숲으로 추진한다고 올부터 시작했습니다.
노리근 정신을 배우려고 전국에서 찾아온 사례도 소개했다. 매향리 주민대책위원장이 와서 화성시에서 매향리 폭격장 일대 1200억 원을 주고 땅을 사서 생태평화공원 조성하는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얼마 전 양평군수가 노근리처럼 평화공원을 운영하고 싶다고 찾아와 노근리 평화공원이 롤모델이 되는 것 같아 고무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노근리 평화공원이 있게 한 선친 정은용씨 얘기도 꺼냈다. 선친은 노근리 사건으로 아들과 딸을 잃었다. 정 이사장의 어머니는 97세로 최고령 피해자다. 당시 미군 폭격으로 어머니는 중상을 입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아들딸을 다 잃고 전후에 자신이 큰아들로 태어나 33년째 이일에 묵묵히 임하고 있다.
첫 직장이 한국전력공사였던 그는 당시 전국 대학생 중 장학생 한 명을 뽑는 한전에 입사했고, 40대에 이미 박사학위 코스를 마치고 청운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한국전쟁 상황을 자세히 수록해 놓은 선친이 쓴 <그대 우리 아픔을 아는가> 실화소설을 읽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자신의 인생의 판도를 바꾼 계기라고 설명했다.
AP기자 퓰리처상 안긴 정구도 이사장....이야포 사건 해법제시
당시 군사정권이 절정에 이른 박정희 시절에는 미국이 불편해하는 진실을 얘기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고 지금의 국정원과 경찰에 끌려가서 고초를 받는 시대였다. 그 상황에서 노근리 사건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길은 유일하게 문학의 힘이라는 사실을 안 선친은 중편소설에 이어 80년대 장편소설을 썼다.
이 책이 없었으면 노근리 공원도 없었을 겁니다. 선친은 23년 동안 저에게 동지였어요. 노근리 진상규명과 공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2014년 평생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400명 가까운 억울한 피해자들이 너무나 고통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우리에게 도움 준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6.25전쟁으로 강토가 반 토막났지만, 미군 5만명 이상이 희생되어 조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알되 미국이 잘못한 것에 대해 혈맹이라면 친구의 잘못도 지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AP통신의 보도로 노근리사건을 보도한 기자가 언론의 노벨상인 퓰리처상을 받았다. 노근리사건이 특집으로 보도되며 미국 안팎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일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AP통신 기자에게 두 가지 조건을 달았어요. 첫 번째는 정말 끝까지 보도할 수 있겠나? 물었더니 끝까지 하겠다고 해서 고생 엄청했죠. 두 번째 당신이 열심히 취재해서 큰 상을 받으라고 축복했어요. 퓰리처상 받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그 기자가 6개월간 취재했어요. 그런데 미국 AP 본사가 보도를 허용하지 않았어요. AP 회장과 임원 편집국장이 보도를 못하게 갑질하면서 막는 바람에 1년 동안 내부 전쟁 끝에 어렵게 보도를 했어요. 이듬해 취재 기자가 퓰리처상을 받기전 연락이 와서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것이 당신 같지만, 시작은 하나님이 이미 하신 거다. 상 받을 만큼 열심히 취재했기에 위로와 축하를 해드렸죠.
정구도 이사장은 현재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추진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이야포미군폭격사건에 대해서도 “세상에는 가치있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서 “여수가 평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특별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소망한다"라며 "여수시 예산이 1조가 넘기 때문에 시 조례를 만들어 반미가 아닌 인권과 생명 존엄, 반전의 문제로 접근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역사문제는 중요하다”면서 “한나라의 얼이고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해야 하지만,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며 지역의 아픈 역사를 바로세우는데 동참해 줄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