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칼럼] 이름대로 사는 당신이 바로 영웅이다

당당하게 살라. 그러면 임을 진정한 영웅이라 부르겠노라

2022-12-02     김광호
▲ 임은 지금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혹 임의 이름을 아는가? 임의 이름은 부모님이 주신 생명에 맞추어 지어준 호칭이다. 그 이름은 생명이 사라지기 전까지 삶을 살아가는 방향키 역할을 한다. 임은 지금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바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요, 이름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에게 부여된 이름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그 이름의 의미는 늘 진행형이며 그 가치는 생의 끝자락에서 꼭 드러난다. 그렇게 이름이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렸지만 냄새나는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슬처럼 맑은 이름을 남긴 사람도 많다.

사람은 이름을 알리고자 한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이름을 알리고자 한다. 그것도 가능하면 빨리 알리고 싶어 한다. 그 이름에는 자존, 욕망, 성취, 명예 등 많은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는 자신이 왜 이름을 알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부나방처럼 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우린 살면서 이름을 바르게 쓰고 아름답게 남겨야 한다. 고전의 정수(精髓),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 되찾기 위하여 10년을 넘게 모험의 시간을 보낸다. 그만큼 이름을 지키고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으며, 그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  푸른 바다가 풍랑속에서 아름답듯이 인간의 삶은 시련과 고통속에서 완성이 된다.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사람을 내게 말하라, 무사여! 곡절 많던 그는 많이도 떠돌아다녔다. 트로이의 신성한 도성을 파괴한 후에 많은 사람의 도성들을 보고 생각도 알게 되었으며.....”로 이어진다. 

첫 단어는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사람’이라는 추상 명사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며 주인공 오디세이아의 이름을 숨기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을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고 숨겼을까? 이 작품은 이야기가 한참 전개되다가 마침내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이 나온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그는 전쟁을 끝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신(神)들은 그를 쉽게 고향으로 보내주지 않는다. 신들은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시련과 고통의 선물을 계속해서 안겨준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쪽 눈만 가진 외눈박이 식인종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힌다. 폴리페모스는 오디세우스의 일행을 동굴에 가두고 한 명씩 잡아먹을 때, 오디세우스는 지혜를 발휘하여 폴리페모스에게 달콤한 포도주를 먹여 환심을 산다. 기분이 좋아진 외눈박이 거인은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오디세우스는 이름을 말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거짓으로 “저의 이름은 우티스(Outis, 아무것도 아니다)다”라고 말한다. 폴리페모스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별 경계심 없이 술에 취해 깊은 잠을 자다가 위험에 처한다. 오디세우스는 날카롭게 깎은 거대한 나무를 불에 달궈 거인의 하나밖에 없는 눈을 찌른다.

분노에 찬 폴리페모스는 오디세우스를 잡으려고 동굴 밖까지 쫓아와 바위를 던지며 몸부림을 치지만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나의 이름은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다”라고 말하며 숨겨왔던 이름을 지켜낸다.

하지만 신들은 이렇게 위기를 극복한 인간 오디세우스를 가만히 둘리가 없다. 그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동료를 다 잃고 표류하다가 세상 서쪽 끝에 있는 섬, 오기기아(Ogygia)에 이른다. 그곳에서 그는 바다의 정령, 칼립소(Calypso, 가리는 자, 감추는 자)를 만나 무려 7년 동안을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그는 그 낙원(樂園)의 섬에서 살고 있지만, 정령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신들은 오디세우스의 간절한 소망을 지켜보다가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칼립소에게 그들의 뜻을 전하지만, 그녀는 단칼에 거부한다. 그녀는 곧바로 주인공 오디세우스에게 질문을 한다. 만약 당신이 이곳에 남는다면 신들의 음식,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영생(永生)과 불사(不死)의 신이 되길 거부하고 숨겨진 이름을 되찾고자 유한한 삶, 인간의 삶을 선택한다.

▲ 영웅이 되고 싶은가? 이름대로 사는 임을 진정한 영웅이라 칭하고 싶다.

그는 하나뿐인 이름, 오디세우스를 자랑스럽게 지켰다

그는 감추는 자, 칼립소의 곁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비록 그는 계속해서 신들의 바람에 따라 모험의 길을 떠나며 한계상황에 직면하지만 꿋꿋하게 견뎌내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영생과 불사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영웅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운명 앞에서 놀라운 결단을 내렸다. 그가 인간의 길을 포기하고 신의 삶을 택했다면 그의 이름인 오디세우스는 흔적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젊음, 쾌락, 영생“까지도 포기하며 결국 하나뿐인 이름, 오디세우스를 자랑스럽게 지켰다.

우리도 불사신 같은 돈과 영원할 것 같은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 자본주의의 광야를 질주하고 있다. 어떤 이는 돈과 지위와 명예를 택하며 자신의 이름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본주의의 유혹에 빠지기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고뇌한다. 임은 어떤 태도로 자본주의와 대면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통해 삶과 이름 그리고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왜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신격화하지 않고 사람의 길을 걷게 했을까? 혹 호메로스는 인간에게 시련과 고통을 쉼 없이 주어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결국 생명과 이름을 지키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오디세우스처럼 이름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이름대로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임을 기억하자. 영웅들이여! 그대의 삶을 찬양하노라.

추신 : 오디세우스는 말한다. 인간의 삶은 불멸과 영생을 사는 신(神)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인간은 모험과 시련을 넘나들며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대로 사는 당신이 바로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