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정수, 대학을 다시 해석하다 - 세번째 이야기
그 맑은 영혼을 찾아 나서다
사물(物)에는 근본과 말단[本末]이 있고, 일에는 종말과 시초[終始]가 있으니,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안다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物有本末하고 事有始終이니 知所先後이면 則近道矣리라.)
여정(如井)의 샘터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다. 근본은 덕(인격)을 쌓는 것이다. 말단은 백성을 새롭게(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시작은 지극히 착함(인격과 덕을 쌓음)에 이르러 자신이 나가야 할 인생의 방향을 아는 것이요, 끝은 그 인격의 높은 경지에 도달했으니 마음 또한 고요하고 평안하여 생각까지 세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먼저 행하고, 그 다음 일을 하나하나 실행한다면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국 배움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됨 즉 인격 수양에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큰 공부를 하다 보면 직업도 경제력도 부수적으로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작은 배움에 연연하다 보면 인성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출세욕에 빠져 인간의 길을 온전히 걷지 않고 곡학아세(曲學阿世)형 지식인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언제부터인지 인성보다는 지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그 지식 또한 직업 찾기라는 파편적 수단으로 쓰이다가 가치 없이 쓰임을 마감한다.
혹 임은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이 실용적인 가치가 있으며, 꼭 익혀야 할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여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국, 영, 수 등의 도구 교과를 중심으로 가르쳐 등수를 정하여 서열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공자는 배움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제자는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집 밖으로 나가면 공손해야 한다. 몸가짐은 늘 삼가야 하며 언행은 언제나 믿음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널리 사람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과 가까이해야 한다. 그리하고도 남은 힘이 있거든 그때 배움을 시작하라."
우리의 영혼은 언제쯤 순백색의 이미지로 물들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노라면 이천 년 전에 공자가 말했던 배움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이 뼈 아프기에 현 교육제도를 냉철하게 통찰할 필요가 있다. 그 고통의 원인은 좁은 교육이 낳은 사생아와 같은 천덕꾸러기 지식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대한민국 교육은 언제쯤이나 아이들에게 통 큰 가르침을 안내할 수 있을까?
Things have their root and their branches. Affairs have their end and their beginning. To know what is first and what is last will lead near to what is taught in the Great Lea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