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독립운동가, 이선우 선생 기리는 태극기 행사 열려

유족대표 이동희 "이선우 선생의 뜻 기리는 행사 계속할 계획"

2023-02-28     오문수
▲ 여수지역 독립운동단체 회원과 유족들이 독립운동가 이선우 묘역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오문수

삼일절을 10여일 앞둔 지난 20일 오전 10시 30분, 여수 무선산 국군 묘지에서는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선우선생을 기리는 태극기 게양 행사가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유족을 비롯한 정채호 여천시장(전)과 여수지역 독립운동유족회 김충남회장, 선양사업발굴 윤치홍 위원장을 포함해 20여명이 함께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이어진 행사에는 내빈 31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했다. 이어 여수지역 독립운동유족회 김충남 회장이 기념사를 발표했다.

"이선우님의 묘역에서 행해지는 이 선양사업은 매우 뜻깊은 행사이며 여수지역 독립운동유족회 부회장으로 수고하시는 이동희 부회장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유족회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행사입니다"

▲ 여수 지역 독립운동가인 이선우 묘역에 태극기 게양 행사가 열렸다. ⓒ 오문수

정채호 전 여천시장은 "늦었지만 여수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자랑이신 이선우님을 바로 알리기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후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이선우 선생의 흔적을 발굴하기 위해 3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이동희씨는 "삼일절 10여일 전인 20일에 행사를 연 이유는 조부님의 묘역에 한 달간 태극기를 휘날리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이선우는 누구?

▲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이선우 선생의 내력이 적힌 사진과 글 모습 ⓒ 이동희

1899년 6월 26일에 여수 문수동에서 태어난 이선우는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서당에서 수학하고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여수간이수산학교(현 전남대학교 국동캠퍼스)에 재학하던 중 독립 만세운동을 거사하던 중 동급생의 밀고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그는 나라의 힘을 기르는 방법은 교육임을 자각하고 학교가 없는 농어촌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거나 운영하시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다. 전국적으로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할 때 거부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찍혀 운신의 폭이 좁아져 곤란을 겪기도 했다.

해방된 조국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소라남초등학교 초대 교장에 임명해 여수 지역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1961년 정년 퇴임한 그해 10월 1일에 서거하셨다.

▲여수지역 독립운동가인 이선우 선생에 대한 글이 실린 독립신문 사진으로 1920년 2월 5일에 발행되었다는 글이 보인다 ⓒ이동희

이번 행사에는 예년과 다른 전시물이 있어 의미를 더했다. 이동희씨가 <독립신문>에서 조부와 관련된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기사를 발굴해 전시했기 때문이다. 1920년 2월 5일에 발행된 <독립신문>의 '여수청년의 분기'라는 기사 속에는 "시위 운동준비 중에 동지 19명과 같이 체포" 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다음은 조부의 발자취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동희씨의 각오다.

"조부님의 발자취를 찾아다닌 3년 동안 꽤 많은 흔적과 자료를 발굴하였으나 아직 미진한 점이 많아 아쉽습니다. 이제라도 잘 못 알려지거나 덜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아 후세에 길이 귀감이 될 자료를 잘 정리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부님이 1919년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실행하려 했던 장소와 나라의 동량을 키워내기 위해 개량서당을 운영하며 인재를 육성했던 장소들을 찾아 떠나는 투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