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포·두룩여 특집] 진실은 그림자를 찢어버릴 때 드러난다

③ 미군 전쟁범죄 이야포 두룩여 학살사건

2023-08-25     양영제
▲박금만 작 이야포. 두룩여 그림

“벵기가 배를 때려분께!”   
“할매 그래가지고 어찌 됐다요?”
“흐미…벵기 총에 맞은 피난민들이 바다에 빠져갓고 바다가 씨뻘개지는디!”

미군기에 의한 피난민 학살사건이 일어난 여수 부속 섬, 안도, 할머니는 내가 미군기에 의한 피난선 학살사건을 물어보는 말에 거기까지만 대답해 줬다. 그리곤 이내 두려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얼굴로 정색을 했다.

“뭣땀시 나한테 그런 걸 자꾸 물어싸! 나는 모른께! 저기 어촌계 사무실에 가서 물어 봐.”

갑작스런 할머니 역정에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할머니는 밭일 도움 받는 거 보다 목숨부지가 우선이었다. 그림자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시킨 것이다. 여수 부속섬 안도에 드리운 ‘빨갱이 무덤 RED TOOM' 그림자는 할머니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해 가을, 여수 주둔 14연대 군사봉기에 의해 촉발된 1948년 10월 여순항쟁은 이승만 진압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고 있었다. 진압군에는 일본 황군 하사관 출신 김종원 대위가 선봉에 있었다.

여수사람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살인마 김종원 대위는 미군상륙전 LST에서 여수시내를 향해 박격포를 마구잡이로 발사했다. 박격포는 진압군 머리 위로도 떨어졌다. 미군은 김종원을 진압작전에서 배제시켰다. 그러자 김종원 대위는 안도에 상륙하였다. 집집마다 청년학생 한 명씩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해서 살육했다. 배운 사람은 무턱대고 빨갱이라는 것이다.

작고 평화로웠던 섬 안도는 순식간에 빨갱이 무덤이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안도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좀처럼 벗어던지지 못하는 그림자. 신경정신과 표현으로는 트라우마 Trauma라고 한다. 안도주민은 지금도 그림자가 두렵다. 야만의 시대가 씌어놓은 그림자는 세월이 한참 흘러도 벗어던지기 참으로 힘든 것이다.

▲두룩여 해상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헌화하고 있다.  자료사진

그림자란 콤플렉스의 어두운, 아직 살지 못한, 억압된 인격의 어두운 부분이다. 우리 마음속에 잇는 우리가 모르는 마음을 말한다. 그림자는 낡은 방식들 Old away, 낡고 쓸모없어진 인격 Old personality, 인격의 열등한 부분, 감추어진 부정적 측면이다. 이 그림자는 폭압과 야만의 시대, 절대반공과 절대친미가 씌어놓은 것이다.

이런 야만의 시대 그림자는 상대적 악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군사독재정부가 짓눌러놓은 그림자를 찢어버리지 않는 한 진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승화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승화가 되려면 무척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건은 “미군 전쟁범죄요!!” 라고 소리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지역신문사 여수넷통 전 이사장 엄길수 씨를 비롯한 추모사업 추진위원 사람들이었다.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희생자 추모제에서 제를 올리는 엄길수 전 대표

이런 행동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이 진실이라는 빛을 향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뒤에 그림자도 따라서 커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의식의 빛에 눈을 돌리면 돌릴수록 등 뒤에 그림자를 더욱 느끼게 된다. 그건 피난선 마지막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정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날 잡으려 다가옵디다.”
“어디서요?”
“안도 서고지 산에서요. 이야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말이오.”
“그런 꿈을 꾸셨단 말이죠?”
“꿈은 꿈이지만 그래서 안도에 오지 못했던 것이오.”
“그럼 언제 안도를 다시 찾아 왔습니까?”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그때서야 죽을 용기를 내서 왔던 것이오.”

미군기에 의해 원통하게 부모형제를 잃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을 짓눌러 온 군사독재정권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나 마지막 생존자는 모진 세월을 통과 했어도 여전히 그림자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어디 마지막 생존자뿐이랴. 여순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 한 여수 순천을 비롯해 전남동북부 사람들, 전국에서 자행된 보도연맹 학살 유족들, 모두가 군사독재 권력자들이 씌어놓은 그림자를 찢어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제는 여수 순천 전남동북부 지역 에서 일어난 한국현대사 비극의 진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둘러봐야 한다. 여전히 진실은 외치지 못하고 원통한 것만 읍소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야포· 두룩여 학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추모제를 민관이 합동으로 지내오는 삼 년 동안 우리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림자를 찢어버리지 못 한 채 진실은 회피하고 그저 정치적 수사에 의한 위로만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진실이다. 사건의 진실은 미군의 전쟁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