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감시당한 납북귀환어부, '탁성호 선원' 53년만에 무죄판결 나오나
1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탁성호 선원 재심재판 열려 검사도 무죄구형 요청..."현직 검찰의 이름으로 피고인들에게 깊이 사과"
1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탁성호 선원 재심재판이 열렸다.
1971년 탁성호 선원은 동해에서 어로 작업 중 북한경비정에 피랍되어 불법 구금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 및 기소되었다. 이후 1972년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재심개시'가 결정되었다.
"검사의 이름으로 깊이 사과"
이날 검사는 최종의견을 발표하면서 “피고인들은 수사와 재판 후에도 낙인효과로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피해와 고통을 입었다. 북한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피고인들은 대한민국에 와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수사와 재판을 받는 등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적법 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서 현직 검찰의 이름으로 피고인들에게 깊이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피고인들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되어 증거능력이 부정되고 그 외 피고인이 범행을 공모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피고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말했다.
법룰사무소 생명 정진아 대표변호사에 따르면 탁성호는 사건 당일 해당 지역의 지리를 몰라 헤매던 중, 북한 경비정에 납치되었다. 북한 경비정이 탁성호에 밧줄을 연결해 강제로 예인했으나, 선원들은 이를 끊어내고 장시간 대치했다. 그러나 결국 북한 경비정은 탁성호를 납치했다.
당시 수사기관은 탁성호 선원들이 납치로 인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을 두고 반공법 위반과 탈출죄를 적용했다. 재판에서 정진아 변호사는 “북한 경비정에 끌려가는 과정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이므로 반공법 위반을 적용할 수 없다. 게다가 당시 탁성호는 총기를 가진 북한 경비정과 대치까지 했는데 이러한 피고인들이 스스로 북한으로 탈출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변호인의견서에는 피고인들은 군사분계선을 자의로 넘지 않았으며 수산업법 위반의 고의가 없었다는 점 등이 담겼다. 변호인의견서에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도 인용됐다.
가혹행위 자행된 납북귀환어부, 월선하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귀환 전 작성된 납북어선 발생보고, 경위서 등에서 피납 당시 선박의 납북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한 점, 선박이 납북될 것을 충분히 인식하였다는 검사의 공소장 기재 내용과 달리 악천후로 인해 어로저지선과 군사분계선을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선장 등의 답변서, 월선하지 않았다는 다수 선원들의 진술, 북한 경비정이 선박에 줄을 묶어 강제로 끌고 갔다는 선원들의 진술, 납북귀환어부들이 수사기관의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진술을 강요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할 때 당시 납북귀환어부들이 자의로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납북되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정진아 변호사는 “원심 재판부는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속에서 작성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모두 인정하였으나 이는 형사소송법 제309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으며 이러한 위법수집증거를 제외한다면 이 사건에서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도 없다”며 “오랜 기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았으며 끝내 무죄선고를 보지 못하고 사망한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피고인들과 청구인인 피고인의 유족들이 간첩의 가족이라는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이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탁성호사건 "고의월선으로 허위조작한 국가폭력"
여수넷통 심명남 이사장도 이날 재판에서 청구인 변론에 나섰다.
심 이사장은 국가기관의 문서와 당시 신문 지면을 장식한 탁성호 사건 기사를 설명하면서 “탁성호와 해군이 납치됐다는 점은 실시간으로 나눈 SOS 교신 내용을 기록한 국가기록원 문서에 잘 나와있다. 명백히 남쪽 해역에서 있었던 일인데 수사기관에서 월선 조업이라 조작했다”고 설명했다. 탁성호 선원들은 1972년 9월 7일 귀환과 동시에 수사기관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다.
“귀환 이후 탁성호 선원들은 강원도 해동여관에서 합동심문반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영장도 없이 1~2주 이상 불법 감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경찰의 고문 과정에서 고의 월선으로 조작되어 처벌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조사기록에 따르면 탁성호는 대한민국 영해를 침법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것이 명확한데 북한으로 월선한 것으로 처벌받았습니다. 당초 수사기관 발표와 달리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조업했다는 경찰조사는 명백한 허위조작입니다. 아버지와 선원들은 현장에 파견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여수경찰서에서 조사 받고 순천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는 조사 과정에서 북한 지령을 받은 이중간첩, 빨갱이로 몰아붙여졌습니다.”
북한에 피랍되어 돌아온 탁성호 선원들의 삶은 ‘감시의 연속’ 이었다. 오징어잡이로 한없이 고달프기만 했던 이들은 다시 국가보안법과 빨갱이라는 억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했다.
당시 모진 고초를 당했던 어부와 유가족은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과 수산업법 위반으로 빨갱이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고 있다.
이날 심 이사장은 “탁성호 사건의 핵심은 국가가 당연히 지켜줘야 할 어부들에게 대한민국이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심 이사장은 “한 번의 납치사건으로 평생 감시당한 아버지와 탁성호 유가족들이 살아 생전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재심에서 무죄를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며 발언을 마쳤다.
탁성호 선원 재심재판 선고날짜는 오는 10월2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