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성호 재심] "현직 검사의 이름으로 깊이 사죄! 무죄 구형해 달라"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에 이어 재심에서도 검사가 무죄 구형 요청 국가보안법·수산업법 위반으로 모진 고문당한 탁성호 53년 만에 한 풀리나? 탁성호 유가족 심명남 대표의 청구인 최종 변론... 10월 26일 재심 선고 앞둬
지난 7일 광주고법 제1형사부에서 여수에 사는 납북귀환 어부 동림호 피해자 신평옥(84) 어르신은 50년 만에 재심사건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우리 지역엔 또 다른 피해자인 탁성호 사건이 있다. 오징어잡이 배인 탁성호는 여수선원 31명이 승선했다. 특히 안도 동고지마을에서 5명의 선원들이 납치되었고 선원들은 모진 고문과 감시속에 한평생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로인해 이들은 오래전부터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지난 4월 마지막 생존자 김석봉 어르신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규명한 '진실규명'도 지켜보지 못한케 재심 공판을 5달 앞두고 갑자기 별세했다. 어르신은 자신이 겪었던 당시 납북귀환이후 수사기관으로 부터 당했던 고문에 대한 증언을 방송과 언론에 쏟아내며 한맺힌 사연들을 털어놨다.
지난해부터 재심을 준비해 왔던 심여종씨의 자녀 심명남 유가족 대표가 지난 1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중법정 제316호에서 열린 탁성호 재심공판 법정에서 낭독한 청구인 최후변론 전문을 싣는다. 아래는 재판장에게 낭독한 글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먼저 저희 아버님과 탁성호 선원들의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려주신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재판장 허정훈, 조혜정, 박아름 판사님을 비롯한 재판부와 검사님, 그리고 재심이 필요하다고 의견서를 제출해 주신 법룰사무소 생명 정진아, 함보현 대표 변호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녕하십니다. 저는 탁성호 유가족 심명남입니다. 저희 아버지 심여종씨는 당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여수에 있는 작은섬 안도 주민 5명과 함께 오징어잡이 탁성호에 선원으로 승선했습니다. 아버지가 탔던 탁성호는 1971년 선원 31명을 태우고 여수에서 동해로 오징어잡이에 나섰습니다.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탁성호는 정확히 1971년 8월 30일 오전부터 밤새 오징어 조업을 마치고 동해 묵호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북한 경비정에 ‘납치’당했습니다. 탁성호는 납치 직전까지 해군에 구조를 요청해 약 6시간 동안 대치되면서 언론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번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영토인 거진 앞 해상에 침투한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납치되었음이 기록상으로도 명백한 전례 없는 대한민국 어부가 납치된 사건입니다.
저는 2017년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납북어부의 아들>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아버지 사건을 조사하면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자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납치된 ‘탁성호 사건’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했습니다. 당시 8월 30일 <동아일보>는 '동해 분계선 우리함 북괴정과 대치', 31일 <경향신문> '동해 표류 중 북괴무장선에 30명 탄 오징어 배 납북', <매일경제> '오징어잡이 배 납북', <동아일보> '탁성호 끝내 납북'이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많은 기사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재심을 준비하면서 저는 아버지에 대한 판결문과 국가기록원에 있는 강원도지방경찰청이 조사한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국가기관의 문서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탄 탁성호는 200톤급 북한 경비정이 대포와 소총으로 위협했고, SOS를 받고 출동한 우리 해군과 몇 시간 동안 대치하고 있다가 결국 남쪽 정부가 구하지 못해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탁성호가 납치되었다는 점은 '묵호어협무선국'이 납치될 당시 탁성호와 해군이 실시간으로 나눈 SOS 교신내용을 기록한 국가기록원 문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명백히 남쪽 해역에서 있었던 일인데 국가는 이를 월선 조업이라고 조작했습니다. 이후 탁성호는 1년 뒤 1972년 9월 7일 동해의 승해호, 승운호, 해부호 등과 함께 귀환하면서 납북귀환어부들의 삶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귀환 이후 탁성호는 강원도 해동여관에서 합동심문반에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습니다. 귀한 어부 피해자들은 영장도 없이 1~2주 이상 불법감금 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경찰의 고문 수사과정에서 ‘고의 월선’한 것으로 조작되어 처벌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조사기록을 살펴보면 탁성호의 경우 대한민국 영해를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몇 시간 동안 납치된 과정이 명확한데 북한으로 월선한 것으로 처벌받았습니다. 당시 수사기관의 발표와는 달리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조업했다는 경찰의 조사는 사실이 아닌 명백한 '허위 조작'입니다.
아울러 아버지와 선원들은 현장에 파견된 중앙정보부 요원(지금의 국정원)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후 여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순천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북한 지령을 받은 이중간첩 혹은 빨갱이로 몰아붙였습니다. 아직도 섬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는 몸이 불편해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섬에서 어린 저를 업고 면회를 다니며 7남매를 키운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느그 아부지가 원주시청에서 조사받을 때 참 많이 맞았어. 얼마나 두들겨 맞았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 용갈이 팬티를 잘라서 옷을 벗었어. 정보부 직원들이 북한에서 무슨 지령을 받았냐고 빨갱이로 몰았거든. 다들 정보부 직원들에게 안 죽을 만큼 맞고 전기고문도 당했어. 그런 일 있고 나서 느그 아부지는 몸서리난다며 북한 얘기는 말술이 돼도 절대 말을 안 해. 죽을 때까지 안 하드만. 오죽했으면 북쪽을 보고는 오줌도 안 싼다고 그랬겠냐?
당시 아버지의 일상은 '감시'의 연속이었습니다. 섬에서 어업에 종사했지만, 납북자라는 꼬리표를 단 아버지와 선원들은 경찰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 왔고, 경찰은 계속 아버지의 동향을 파악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제 나이 22살 때입니다. 섬에서 방위병으로 군복무 당시 졸병 때부터 파출소에서 행정업무를 계속 봐 왔는데 고참이 되자 여러 업무를 처리하다 어느날 지서에서 서류 정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눈을 의심케 하는 문구에 눈이 멈춰섰습니다. 매일 경찰들이 작성한 ‘3급비밀’ 서류에 아버지에 대한 최근까지의 동향파악이 쭈~욱 적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당시 아버지가 납북된 지 20여 년이 흘렀고 아들인 제가 군복무를 하고 있는데도 계속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던 소회를 제가 쓴 책에 기록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납북되었던 동네 선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일상에서 감시와 모진 고초를 당했던 어부들과 유가족들은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과 수산업법 위반으로 빨갱이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탁성호 사건은 국가가 당연히 지켜줘야 할 대한민국의 어부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핵심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징어에 남북이 있을 수 있고, 이념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징어잡이로 한없이 고달프기만 했던 아버지는 험한 파도에 시달리며 밤잠을 못 자면서 처자식을 키워야 했습니다. 고기떼를 쫓다가 납북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집채만 한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지만, 어부들은 먹고살기 위해 다시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며 살아야 했던 저희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습니다.
예컨데 국가보안법과 빨갱이로 덧씌워진 탁성호 선원들의 억울한 사연을 다시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저희 유가족들이 살아생전 풀지 못한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이번 재심에서 꼭 ‘무죄’를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한번의 납치사건으로 평생을 감시당한 아버지와 탁성호 유가족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었다. 결코, 빨갱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당당히 말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이 눈을 편히 감을 수 있도록 현명한 재판을 내려주실 것을 다시 한번 호소드리며 이것으로 청구인 변론을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이날 재심공판에서 최종의견을 발표한 검사측에서는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검사측에서는 ”피고인들은 수사와 재판 후에도 낙인효과로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피해와 고통을 입었다. 북한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피고인들은 대한민국에 와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수사와 재판을 받는 등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적법 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서 현직 검찰의 이름으로 피고인들에게 깊이 사죄드린다”라며 "피고인들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되어 증거능력이 부정되고, 그 외 피고인이 범행을 공모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피고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달라”라고 말하자 청구인 유가족들은 깊은 탄식과 함께 환호했습니다. 탁성호의 최종선고는 10월 26일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