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나는 지인...슬픔 못 느끼는 유족에 싸해져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유가족실, 안타까움에 우는 사람 찾아볼 수 없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외없이 누구나 가는 길이고 다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지인은 결혼 후 45년을 살면서 남매를 두었다. 자식들도 결혼해 이제 자녀를 하나씩 갖고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식을 낳은 지인은 아이들을 마른자리 진자리 가려 정성껏 키우고 유치원을 거쳐 초중고 대학까지 보냈다. 학업과 결혼을 시키는 동안 많은 희생은 물론 돈도 많이 들였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물질적 도움도 마다 않는 모습은 5~60년대에 태어난 거의 모든 이들의 공통적 현상이다.
그런데 옛날의 효자는 찿아볼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옛날, 그야말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옛날에는 거의 모든 자식들이 효자 효녀였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었고 당연시 되는 인간사였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한 달 동안 마당에 가묘를 만들고 ‘한달장’이 시작됐다. 장례 기간에 문상객이 올 때마다 곡소리를 내며 대접했고 동네의 큰 흉사이기도 했다.
장례식이 끝나면 빈소를 만들고 아침저녁 부모님을 그리면서 불효자였다는 마음으로 곡소리를 내고, 초하루 보름날은 삭망이라고 해서 더 크게 상을 차리고 굴건제복을 해서 집안이 다 모여 곡을 했다.
그 때는 일년상에서 삼년상까지 지냈다. 그때마다 먼 친척 또는 객지에 있는 친척들이 다 모여 음식을 크게 차려놓고 살아생전 업적과 그리워하는 제문을 지어 읽으면서 내용에 따라 통곡을 리듬에 맞춰했었다.
친척 일가 이웃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돌아가신 분을 애달파했다. 삼년상을 꼭 지냈다. 흰 광목으로 지어진 상복도 3년 동안 입어야 했다. 색깔있는 옷을 입는 사람은 常人(평민을 이르던 말)이라고까지 했다.
그때는 거지들도 많았다. 상을 지낼 때마다 거지들이 떼거리로 찾아온다. 국민소득이 낮은 시대라 얻어먹기 위해서 온다.(장부에 온 동네 초상날을 다 적어 놓고 그날그날 찾아온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요즈음은 효자라는 개념이 옛날과 완전히 다르다. 부모의 기대에 잘 따라 주고 제때에 직장과 결혼, 출산을 해주면 효자 소리를 듣는다. 부모를 위한 희생은 어불성설이다. 부모는 오직 비교의 대상일 뿐이다. 상대적인 불만만 늘어놓는 자식들도 부지기수다.
지인을 보내는 서울 장례식장에서 본 풍경이다. 지인의 성장한 자식들도 영구차를 타고 화장장으로 갔다. 사람이 많은 서울이라서인지 이른 아침부터 검은 옷의 행렬과 운구행렬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고 차례대로 내려 화장장으로 들어간다.
뒤따르는 검은 옷의 행렬들은 모두 가족일텐데 마지막 헤어지는 마당에 단 한 명의 울부짖음도 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회상하면서 우울할 때도 있겠지만 화장장 휴게실에서 대기하는 그 순간에도 커피의 여유를 즐기면서 담소한다.
기다리는 유가족실은 따뜻한 보일러가 가동되어 있고, 그 옆에는 유명한 작가들의 갤러리, 찻집, 식당이 현대식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화장하는 동안 유가족을 배려한 모습들이다.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함이다.
담소를 즐기며(?)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ooo의 화장 종료라는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나온다. 그러면 상조회 지도를 따라 다 화장된 뼈를 보여주고 아직 타지 않은 보철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유가족한테 물어본다.
잠시 후 뼈를 갈아 단지에 담아 하얀 보자기에 쌓여 가족에게 인계된다. 유가족은 그 단지를 들고 화장장을 벗어나 추모공원으로 간다.
가는 동안도 슬픈 표정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도착한다. 수천 기의 무덤도 있지만 수요가 딸려 화장한 단지가 두뼘 남짓한 아파트형 사각형 안으로 봉안된다.
평생을 살아온 우리 지인들의 단지가 손바닥만한 곳으로 안치되면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생 일장춘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어서 미리 예약된 곳에 넣고 문에 못질을 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가족과 영원한 이별이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그동안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의 담소만 이어질 뿐이다. 섭섭하고 안타까움에 우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현 시대의 이승 모습이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면서 지인들을 보내는 횟수가 늘어가고 어제까지도 동석했던 자리가 비어가는 데 어째 기분이 싸하다. 남아있는 동안 내가 살아온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