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해 싸워... 참전군인 기억해달라”
제69회 현충일 추념식, 상이군경 회원 참여
여수시가 종화동 자산공원 현충탑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국군장병을 추모하고 호국영령의 명복을 기리는 현충일 추념식을 거행했다.
6일 오전 10시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는 국가유공자회 관계자, 정기명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여수시 기관단체장을 비롯해 상이군경 회원도 함께 했다. 이들은 국민의례에 이어 애국가를 제창하고 헌화 및 분향했다.
정기명 시장은 추념사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께 경의를 표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자유와 평화는 선열분께서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셨기 때문이다. 이분들을 기억하고 걸맞은 예우를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추념식에 참석한 백마부대 29회 참전용사 박 씨(82세)는 1944년생으로 월남전 참전 당시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베트남 닌호아에서 싸우다가 퀴논으로 옮겨갔다.
“여수에 살다가 부산 군부대에 들어가 백마부대 29연대 소속이었다. 몇 번을 죽을 뻔 한 것을 살아남았다. 어깨와 다리에 총알을 맞아 부산 일류군병원에서 수술을 몇 번이나 했다.”
그는 “온몸 천지에 총에 맞은 상처”라며 당시 총에 맞아 혈관이 튀어나온 손등을 보여주었다.
박정희 정부, 월남전 파병으로 외화 받아 고속도로 깔아
또다른 참전용사 A씨(82세)는 십자성부대 소속이었다. 그는 1966년 7월에 베트남전에 파병됐고 퀴논과 나트랑에서 싸우다가 1968년 5월에 귀국했다. 그는 50년 가까이 매년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마두1호 작전부터 6호 작전까지 다 보고 왔다. 그때는 우리도 이렇게 전쟁이 길어질 줄은 몰랐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오니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형제들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형님들은 모두 6.25전쟁에 참전하신 분이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오니 형제들이 모두 울고불고 난리였다. 그 뒤로 살아온 내 삶은 말로 다 못한다. 각종 병에 시달려, 몸이 종합병원이나 다름 없다.
귀국 후에도 참 살기 힘들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는데 한국 정부는 월남전 파병 통해 외국에서 받은 돈 중 10%만 우리 같은 참전용사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90%로 고속도로를 깔고 포항제철소를 지었다. 우리는 1990년부터 국가에 파병으로 받은 돈을 돌려달라고 꾸준히 말하고 있지만 대꾸도 없다. 그저 매달 주는 참전수당만 조금 올려줬을 뿐이다. 국가는 그때 가져간 90%를 돌려줘 우리가 좀더 살기 편하게 해주길 바란다.“
나라 지킨 6.25 참전용사, 한국경제 살린 월남전 참전용사
여수 화양면에서 태어난 80대 이상근 씨는 1968년 월남전에 참전했다. 백마부대 소속으로 나트랑에서 싸우며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군인으로 9사단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자 가족들은 모두 기뻐했다. 제대하고 체신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1950년 6.25전쟁 참전용사는 나라를 지키고 우리 같은 월남전 참전자는 외화를 벌어와 한국경제를 살렸다고 말한다.
그때에 비하면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됐는데 참전군인이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우리 같은 참전군인을 잊지 않고 많은 사람이 기억해주길 바란다.”
기념식에서 만난 또다른 참전 유공자는 “협소한 웅천 현충탑을 공원 같이 넓은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제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