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칼럼] '내면아이' 만나보셨나요?

분노의 시작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 안의 어린 '나' 나를 이해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상처를 반복해서는 안돼

2024-07-21     주경심
▲내면아이는 정서 관련 기억의 원천 ⓒpixabay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한 사람의 정서와 관련된 기억을 설명하는 원천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평생에 걸쳐 영향을 주는데, 그 이유는 언어사용 이전의 기억은 감정 기억으로 흔히 말하는 무의식이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전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비슷한 상황, 감정, 단서, 대상 앞에서 감정 단추가 눌리면서 논리적 근거 없이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내면 아이의 발달은 부모의 양육 태도와 관련이 깊다. 아이의 요구에 부모가 얼마나 적절히, 적당히, 일관적이고 안정적으로 반응해 주었느냐가 내면 아이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관련해서 브래드쇼(J. Bradshaw)는 "어린 아이의 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억압된 채 자라면 상처받았던 그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계속해서 성인의 내면에 켜켜이 쌓게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부모의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충분히 돌봄 받지 못했거나, 위험에 노출되었거나, 정서적 학대 및 부모로부터 거부당했던 경험은 성인이 된 후 정서적 불안정 및 부적응의 원인이 되는데,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부모로부터 양육된 개인은 공상이 많고 자기주장을 못 하는 의존적인 내면 아이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와 딸은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pixabay

"엄마 이겨먹으려는 딸"... '전면 수정' 해달라는 어머니

민주씨는 자신과 너무 안 맞는 딸과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먼저 민주씨 면담을 하는 데 딸의 장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자 "이쁜 구석은 하나도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특히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묻자, "말하는 것도 나이에 안 맞게 앵앵거리고, 본인 외모 치장 외에는 무엇 하나 치울 줄도 모르고, 절약 정신도 부족하고, 엄마 알기를 개똥으로 알면서 이겨먹으려고 하고, 엄마가 말하면 무조건 ‘네네’ 하고 순종하는 게 당연한데, 어떻게 된 게 감히 엄마를 가르치려 하면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했다.

이런 딸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간다는 민주씨는 자신의 딸에게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고, 어디 가서 부모 욕 먹이지 않는 딸이 되기 위한 방법을 확실히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한마디로 딸의 생각과 가치관을 엄마 마음에 쏙 들게 전면 수정해 달라는 의미였다.

만약 딸이 엄마가 원하는 대로 바뀌면 민주씨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지 묻자, 자신이 좀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것 때문에 편안할 것 같은지 묻자, 자신이 시킨 대로 집이 정리되어 있고, 딸이 말대꾸를 안 하니 자신이 화낼 일이 없고, 딸한테 무시당하지 않으니, 자존심도 안 상할 것 같다고 했다.

"하나하나 꼬투리 잡으며 순종 강요하는 어머니"...이해할 수 없다는 딸

다음으로 딸을 면담했다. 딸은 엄마가 자신만 보면 지적하고, 혼을 내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엄마가 몸이 아픈 이후부터는 ‘내가 죽으면….’이라는 단서를 시작으로 청소, 외모, 시간 등 모든 것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소리가 듣기 힘들고, 그만해 달라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멈추지 않아서 한 번은 ‘죽겠다는 말 좀 안 하면 안 되는지…. 엄마는 내가 죽겠다는 말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했다가 머리채까지 잡혔다."

그러면서 엄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 딸인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말투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아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겠니?’라고 걱정하고, 자신에게 ‘순종’을 강요한다고 호소했다.

원하는 것은 엄마로부터 수용 받는 것이라고 했고, 엄마랑 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딸에게 수용과 순종의 차이에 관해 묻자,  "수용은 ‘그렇지…. 그럴 수도 있겠다. 엄마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너는 그렇다는 거지?’의 과정이라면 순종은 '이유 불문하고 엄마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 "이라고 했다. 게다가 "세 남매 중 유독 장녀인 자신에게 더 가혹하게, 엄격하게 순종과 희생을 강요하는 엄마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씨는 왜 자녀의 감정보다 집 청소가 중요하고, 소통보다 순종이 중요할까?

변화를 위해서는 첫 번째 이해가 필요하다. 민주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모습뿐만 아니라 민주씨 안에 있는 내면 아이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딸이었고, 어떤 누나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민주씨는 딸에게 내는 분노와 순종이 사실은 자신의 것이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주씨는 셋째였지만 오빠는 몸이 약해서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관심을 모두 가져가 버렸고, 언니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해서 민주씨가 실질적인 장녀 역할을 해야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었으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과 술주정을 견디는 것도 버거울 만큼 먹고사는 일을 책임지느라 눈코 뜰 새 없어서 민주씨 역시 어린 시절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대해 부모님이 한 번도 수용해 준 적이 없다고 했다.

너무 바쁘고 삶이 퍽퍽한 엄마를 이해하는데 40년 넘게 걸렸다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어쩌다 보니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남편을 만났고, 먹고살아야 하니 돈을 버느라 새벽에 나가서 밤이 돼서야 집으로 오는 자신, 그리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아이들을 봐도 칭찬보다는 야단이 나오고, 감사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왔다고 했다.

▲ 자유로운 요즘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민주씨 ⓒ pixabay

수용과 칭찬이라는 따듯하고, 달콤한 것을 먹어본 적이 없는 민주씨는 아이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주고 싶지만 어떻게 줘야 하는지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보다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자식들이 부러운 엄마...과거 상처를 스스로 건드려

"민주씨 아이들이지만 가끔 부럽기도 했겠어요. 그래서 서운하기도 했겠고요."

민주씨는 자신처럼 순종하지 않는 눈앞에 있는 딸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내 엄마처럼 또는 내 아버지처럼 야단과 비난과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건드려 부스럼을 만들고, 그 상처가 낫기 전에 다시 건드리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를 누구도 칭찬해 주거나, 보살펴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 시절의 어리고 힘없는 ‘내가’ 버텨주고, 살아주고, 참아주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었고, 지금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자신을 그만 미워하고, 내 부모가 챙겨주고 돌봐주지 못한 자신을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돌봐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이면 해결이 될까? 아니…. 평생 어린 시절의 나를 붙들고 살아왔다면, 앞으로 남은 평생을 그 아이를 돌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의 감정을 내가 알아채고, 내가 표현하고, 내가 해결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분노하는 나를 만나면 이렇게 물어보시라.

"나는 누구? 여긴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