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잠들었던 아라홍련(阿羅紅蓮), 누가 깨웠을까?
옛 가야지구의 천연늪지에 들어선 연꽃테마파크 '군자의 꽃'이라 불린 연꽃, 먼 미래에도 민족과 함께 꽃피우길
7~8월 초록의 연잎 물결 사이에 아름다운 연꽃으로 세상이 향기롭다.
지난 6월말 지인들과 경남 함안군 강구 해바라기 축제에 갔다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함안연꽃테마파크에 들렀다. 뜻밖에 그곳에서 7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고 다시 피어난 연꽃 ‘아라홍련(阿羅紅蓮)’을 만났다.
700년 깊은 잠에 빠진 연꽃 아라홍련(阿羅紅蓮)을 누가 깨웠을까?
2009년 5월 함안 성산산성(사적 제67호) 성터 발굴 작업에서 ‘연(蓮)씨 10알’ 귀중한 유물을 발견했다. 이 연을 함안군은 가야 연맹시절 ‘아라가야’였던 역사를 근거로 ‘아라홍련(阿羅紅蓮)’이라 이름 지었다.
그 중 2알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700년 전 고려시대 씨앗으로 밝혀졌다. 함안박물관에서 파종한 씨앗이 2010년 7월에 700년 만에 다시 연꽃으로 활짝 피어났다. 그 후 박물관 입구 시배지에서 해마다 아라홍련을 만날 수 있다.
아라홍련 꽃잎의 하단은 백색, 중단은 선홍색, 끝은 홍색으로 현대의 연꽃에 비해 길이가 길고 색깔이 엷다. 고려시대의 불교 탱화에서 볼 수 있는 연꽃의 형태와 색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함안군은 ‘아라홍련’의 부활을 기념, 옛 가야지구의 천연늪지 10만 9,800㎡를 활용해서 자연 친화적인 연꽃테마파크를 만들었다.
연꽃은 쌍떡잎식물로 여러해살이 수생식물이다. 주 원산지는 아시아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나와 높이 1~2m의 잎자루 끝에 달린다. 잎의 지름은 40㎝ 내외 정도이며 물에 젖지 않는다. 꽃은 7~8월에 피고 줄기마다 끝에 1개씩 핀다. 꽃말은 청순, 순결, 고고한 아름다움, 다산, 신성 등이다.
함안연꽃테마파크는 법수홍련, 아라홍련, 가람백련, 수련, 가시연꽃까지 다양한 연꽃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중 법수홍련은 법수면 옥수 늪에서 자생한 홍련으로 연분홍빛 아름다움과 특유한 향이 난다. 경주 안압지 연꽃과 동일한 유전자라 한다.
2007년도에는 경복궁 경회루 연꽃 복원 품종으로 선정되어 함안에서 서울로 시집보낸 연꽃이다. 또한 가람백련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조 시인인 ‘가람 이병기’선생이 길렀다고 전해져 붙여진 이름이다. 가람백련은 연꽃과 연잎에서 진하고 독특한 연향이 난다.
연꽃테마파크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곳곳에 방문객이 쉴 수 있도록 햇빛 차단용 지붕이 있는 쉼터와 벤치를 배치했다. 군데군데 원두막도 보인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시원한 분수와 인공안개 시스템을 설치하여 고객을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수질 정화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연잎 덕분에 정원 여기저기서 오리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연꽃 탐방로에는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징검다리 사이사이로 초록 연잎이 자라고 백련과 홍련이 조화를 이루며 피어나고 있었다. 연꽃 군락지 사이로 ‘선왕정(先王亭)’이라는 정자를 세워 자연 친화적인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진흙탕 속에서도 순결하고 아름다운 연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선비들은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이라 표현했다.
연잎은 비타민C가 많고 항산화 물질이 많아 연잎차 또는 연잎밥을 만들기도 하고 약재로도 사용한다. 뿌리줄기인 연근은 식재료로 사용한다. 연꽃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예부터 연은 우리 일상에서 친숙한 식물이다.
아라홍련(阿羅紅蓮)이 700년 잠들었던 비밀은?
몇 년 전 도립도서관에서 줌으로 들었던 ‘종자저장소’ 관련 강좌가 생각났다. 높은 산에 있는 성산산성 내부의 온도와 습도가 ‘천연 종자저장소’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세계종자저장소는 씨앗의 발아를 억제할 수 있는 적정수준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여 의뢰받은 식물 종자를 장기간 휴면상태로 보관하는 기구다.
핵전쟁이나 기상이변, 예측할 수 없는 재난으로 식물 자원이 고갈될 경우를 대비하여 만든 세계종자저장소가 2곳 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에 있는 저장소에는 주로 식량작물을 보관하고, 우리나라 경북 봉화군에는 야생식물 종자를 보관한다.
함안군은 아라홍련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2018년에 경북 봉화군에 있는 종자보관시설인 시드볼트(Seed Vault)에 종자 160점을 기탁했다.
함안연꽃테마파크는 7월말이 절정기다. 풍성한 초록 연잎 속에서 연분홍빛 홍련과 가람백련이 향기로운 연향을 실바람에 날려 보내고 있을 것이다. 먼 옛날 고려시대 역사를 안고 날아온 아라홍련은 현재에도, 아주 먼 미래에도 우리 민족과 함께 영원히 꽃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