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포. 두룩여 74주년 특집] 국가는...국가정체성을 세우고 유지한다

③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2024-09-25     양영제 작가

목차 :   ①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②제2 노근리 사건이 아니다.
              ③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④아, 안도. 빨갱이 무덤.
              ⑤여수, 대한민국 제물 도시
              ⑥당신들의 나라, 당신의 천국 대한민국

▲ 주종섭 도의원이 여순사건 추모비 참배후 여순사건비에 새겨있는 .....(말줄임표)에 대한 사연을 듣고 놀라워하고 있다 ⓒ심명남

국가는 국가로 인한 죽음을 사후 분리 관리하면서 국가정체성을 세우고 유지한다. 국가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국가는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으로 분리한다. 좋은 죽음은 전사자나 희생자이다. 나쁜 죽음은 국가정체성에 반하는 죽음이다. 국가권력을 지배한 정권이 권력에 맞는 국가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에서 발행한 학살이나 억울한 죽음이다. 이렇게 죽음을 분리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정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죽음의 성격도 바뀐다.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죽음의 성격도 바뀌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일본 우익 자민당이 그렇다. 일본 55년 자민당 집권체제에서 극우 정치인들이 전범들 위패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동아시아 식민지화 과정에서 죽음에 이른 전사자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기념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까닭은 일본 군국주의 국가정체성을 이어받고 계승한다는 열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을 관리하면서 일본이라는 국가 토대가 바로 군대이며 희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면서 국가 전체주의 진한 향수를 뽑아낸다. 이를 ‘야스쿠니 논리’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국가가 계속해서 요구할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상징적 지배를 이룩한다.

그러나 희생이라는 레토닉 (rhetoric, 修辭學)에서도 ‘숭고한 희생’과 ‘안타까운 희생’으로 또 분리한다. 숭고한 희생이란 전사자처럼 국가유공자를 말한다. 안타까운 희생이란 정권이 국가정체성을 세우고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죽음을 말한다.

그러면 대한민국과 지방자치제, 특히 여수와 순천은 국가로 인한 죽음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대한민국은 절대 반공을 국가이념과 정권 유지 토대로 삼은 이승만 초대 정부로부터 지금의 윤석열 정부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죽음의 관리도 달라졌다.

국가를 위한 좋은 죽음 관리 상징은 국립현충원이 대표적이다. 1956년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국군을 합장할 목적으로 개장한 국군묘지는 국립묘지 그리고 현충원으로 변경되고 2006년에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국가를 위해 전사한 군경찰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희생된 숭고한 죽음을 기념하면서 추념하는 것이다. 이때 추념하는 것이 ‘희생’이다. 이를 ‘기념의 정치학’이라고 말한다.

▲간도특설대 출신 송석화 대전 현충원 묘 ⓒ양영제 작가 제공*만주군 소위로 임관 후 항일무장세력을 진압하는 간도특설대 창설에 영향을 많이 끼친 친일파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1948년 육군 제 2 연대 부연대장으로 여순사건 당시 여수지구 계엄사령관을 맡으면서 여수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의 지휘 책임을 갖게 되었다. 특히 여수 시내 방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기념의 정치학은 역대 정권마다 달라졌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죽음 역시 성질이 달라졌다. 1948년 대구 10월 학살, 제주 4.3 학살, 그리고 1948년 여순학살, 1950년 30만 명 추정되는 보도연맹 학살, 1980년 5월 광주 학살 성격을 달리 해석하면서 관리도 달리해 왔다. 정부가 바뀌면 죽음의 성격도 바뀌는 것이다.국가와 정부 안위를 위해 마땅히 토벌해야 했던 나쁜 죽음이 ‘희생자’로 성질 변화를 가져왔다. 제주 4.3과 여순 10.19 희생자가 그렇다.

이런 성질 변화는 희생자 유족의 처절한 진상규명 통곡에서 시작한다. 이어 사회단체가 참여하게 되고 시민이 움직이자 마지못해 지방자치제가 수용하는 단계로 이행된다. 그러면서 결국 죽음의 진실이 드러나고 죽음의 성질 역시 바뀐다. 척결할 좌익가담자 또는 동조 또는 혐의자이기 때문에 척살된 나쁜 죽음이 ‘희생자’라는 불가피한 죽음으로 죽음의 성질이 변한다. 80년 광주 죽음이 ‘폭동’에서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죽음으로 변하고, 제주 4.3이 대량 토벌과 48년 10.19 여순사건 학살로 인한 ‘억울한 죽음’은 ‘억통한 죽음’으로 바뀌었다. 억울해서 원통한 죽음은 ‘희생자’라는 애매모호한 레토닉으로 희석되기 시작한다.

원통한 죽음이 ‘희생자’라는 희석된 레토닉을 얻기까지 국가의 방조, 묵인, 부인, 축소, 죽음의 성질 변경, 일부 시인, 국가는 이렇게 제노사이드를 부인하는 공식 과정을 거친다.

*제노사이드가 있었음을 부정할 것

*정부 고위당국자 아닌 말단 직원이 이를 부인할 것

*제노사이드에 관한 사실들을 다른 사건으로 바꾸어 부인 할 것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꿔 칠 것

*제노사이드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다른 사건과 비교해서 혐의를 덜어낼 것.

*그래도 유가족이 진실규명을 줄기차게 요구하면 유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월을 질질 끌 것.

국가 주도 ‘공식 부인’으로 정형화된 수법은 제주4.3과 여순10.19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의심만으로 학살했음에도 사실 자체를 부정해 왔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서부터 군사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학살 부정은 지속되었다. 그 암흑기간 동안 군사독재 정부가 임명한 여수시 행정관료들도 학살이 있었음을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침묵해 왔다. 심지어 원통한 죽음을 나쁜 죽음으로성질 자체를 바꿔치기까지 했었다.

이렇게 국가가 부인할 수 있는 까닭은 정권이 국가정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학살을 통해서 ‘자국 인권의 식민화’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내국인을 인권을 식민화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동원한다. 1948년 여수 순천 10.19 항쟁에 놀란 이승만 초대 정부와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국가보안법’이 대표적이다. 이외 형법의 간첩죄(제98조) 일반이적죄 (제99조) 또 긴급조치 계엄령 등등을 제정하여 인권 식민화를 타파하려는 민중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억압하는 물리적 수단 근거로 법을 사용해 왔다.

국가가 법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인권을 식민화하면 대중은 진실을 들여다보거나 소리 내는 용기를 갖지 못하고 ‘내부 방관자’로 전락한다. 내부 방관자란 자기 사회에서 일어난 인권침해와 인간의 고통을 알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도 반응하지 않는 수동성을 지니는 사람이다.

수동적 내부 방관자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오인’ 또는 ‘오염’되어 가는 위험성에 놓이게 된다. 역사 비극을 가해 집단 또는 가해 집단에 편승해 신분상 이득을 얻으려는 자들이 조작 배포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식에 젖어 들어가는 것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소 불행한 사건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가해자의 세계관에 동조하는 내부 방관자들은 어떤 인권침해를 목격했더라도 십중팔구 개입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국가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부수적 피해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이런 오염에 의한 제노사이드 묵인 현상은 정신 마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단순 정신마비 현상으로 보이는 내부 방관자 내면은 가해자 행위에 수동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여순반란을 진압하지 않았으면 자유대한민국이 위태로워 어쩔 수 없이 일부 무고한 희생자가 나왔다는 조작된 국가 이데올로기에 무의식적으로 동조된 현상이다. 더 나아가 국가에 의한 대량 학살을 반란군이 저지른 학살로 오인한다. 이런 오인은 내부 방관자 태도에서 오는 무심한 착각이 아니라 가해자 세계관에 서 있는 적극적 동조인 것이다. 국가가 제노사이드에 의한 죽음을 관리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현상을 조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여수시 지자체는 1948년 10월 여순학살, 1950년 7월 애기섬 보도연맹 학살, 8월 미군기에 의한 남면 이야포 두룩여 민간인 학살로 인한 죽음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어떻게 관리했든 결과는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해방 후 미군정 삼 년을 거쳐 남한에 대한민국 초대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저지른 제노사이드 제주 4.3 위령제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것에 반해, 여순 10.19에는 한 번도 역대 대통령이 참석한 적 없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마찬가지다. 여수가 지역 배경인 행정인 정치인 책임이 우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점에 있어 여수는 해양관광도시일 뿐, 한국 현대사 갈림길을 결정지은 역사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관광 휴양 도시로 홍보하지만, 정작 친일파 부활 저지와 동족 학살과 분단 획책 저지에 나서다 대량 학살당 한 저항의 도시, 한국 현대사 비극 도시, 여수에서는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 웨워드 카(E.H.Carr)가 말한 역사가 여수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남면 이야포. 두룩여 미군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나, 여순사건이나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학살이나 하나의 과거 개념으로 현재와 단절된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수시 지자체나 시민이 여순사건을 한국 현대사를 규정하는 대한민국 역사로 정의를 설정하지 못하고 하나의 과거 사건, 시민들의 개별적 기억을 공적 역사로 포섭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여순사건이나 미군기에 의한 이야포 학살 등 여수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초대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역사 사건은 그저 하나의 과거 불행한 사건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어지는 연재에서 희생이라는 레토닉에 대해 조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