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10·19사건] ② 또다시 서럽고 가슴 아픈 10월이 왔다

여수·순천 10·19사건 76주년을 맞아

2024-10-17     백인숙 시의장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반대하며 촉발됐다.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사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자 미·소의 냉전체제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수레바퀴의 무게에 짓눌려 동북아시아 작은 시골마을 여수는 여순사건 발발이라는 현대사 최대의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여수는 불행하게도 비극적 사건의 시작과 끝 지점에 있었다. 그로 인해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지역은 혐오와 갈등의 구렁텅이로 빠졌다.

2021년, 지역민의 염원 '여순사건특별법' 제정

강요된 침묵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참고 견뎌낸 지 70여년 만인 2021년, 마침내 지역민의 염원이었던 여순사건특별법이 제정되었다.

특별법 제정으로 지역사회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리라 기대했다.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무고한 희생자와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지역의 갈등은 풀리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져 상생의 길을 열어 갈 것을 고대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 이후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민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고, 또다시 탄식만 쌓이고 있다. 이는 마치 1960년 4·19혁명에 의해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과거사 진실규명의 목소리가 박정희 정권의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짓밟혔던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는 형국이다.

진실은 우리 앞에 더욱 뚜렷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여순사건 발발 76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웠음을 아는 것이 삶의 지혜다. 국가와 정권이 여순사건을 가리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진실은 우리 앞에 더욱 뚜렷하게 다가올 것이다.

여수시의회는 시대적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주어진 권한과 역할을 최대한 활용해 진실의 문이 활짝 열리는 날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 용왕매진하고 있다.

의회가 제안하고 시장이 제출한 「여수시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 유족 생활보조비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올해 10월 18일부터 시행되며, 지역사회는 여순사건 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반성과 배려의 뜻을 대·내외에 천명하게 되었다.

또한, 전 국민에게 여순사건 진상을 올바로 알리고,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홍보관 건립을 강력히 추진해 그 결과, 여순사건의 발발지 이자 당시 국군 제14연대 주둔지인 신월동 지역에 아픈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의미있는 장소가 될 역사홍보관이 곧 개관을 눈앞에 두고있다.

의회 역사상 처음...유족들의 깊고 오랜 슬픔을 위로

아울러, 여수시의회는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가슴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세심하고 따뜻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10월 14일,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민의의 전당인 여수시의회 본회의장에서 한·독 유진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유진 레몬트리 합창단을 초청해 ‘여순사건 희생자 추모 청소년 음악회’를 개최해 당시 여순사건으로 희생된 분들과 비슷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참여해 유족들의 깊고 오랜 슬픔을 위로하였다.

더불어, 여순사건 특별법 개정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여수시의회와 여수시민들의 노력으로 특별법 개정 결의안을 채택하였으며, 여수시의회 제7대에 이어 제8대에서도 여순사건 및 과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여수시의회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순사건 진실규명의 일주명창(一炷明窓)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고자 한다.

- 백인숙 여수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