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가...31일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만나보고 싶다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열려

2024-12-25     박귀단
▲ 전시장 입구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들이 도슨트 해설을 듣고 있다. ⓒ 박귀단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전남 고흥군 분청문화박물관에서 화가 탄생일에 맞춰 지난 11월 11일에 개막해, 오는 31일까지 전시된다.

천경자(1924~2015)는 20세기 대한민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다. 그림에서 색에 포인트를 주고, 자신이 원하는 채도가 나올 때까지 계속 덧칠해서 미묘한 색채로 표현하여 환상적이고 입체감 있는 채색화를 그렸다.

프랑스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1969~1954)를 '색의 마술사'라고 한다. 동양화에서 '색채 마술사'는 채색화의 거장 천경자화가다.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다. 입장 마감은 오후 5시다. 평일에는 3회(10시, 14시, 16시), 휴일에는 4회 도슨트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미술 대중화를 위해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회는 천경자 화가의 차녀 수미타 김(화가,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이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채색화, 드로잉 등 작품 60여 점과 수필집, 사진, 친필편지 등 아카이브 100여 점 자료를 통해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수십 년 동안 미공개 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수미타 김이 개막식에서 한 말이다."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꽃다발이자, 화단의 거물로 거듭나 돌아온 작가를 고향이 맞이하는 잔치다."

전시회는 '길례언니', '청춘의 문', '꿈과 바람', '파리시절',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자유로운 여자', '찬란한 전설' 등 총 7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어서 천경자 화가 예술 세계와 미의식 원천인 고흥의 수려한 경관을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이이남 작가 프로젝트로 연결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길례언니2>가 몽환적인 눈빛으로 응시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얼굴 모델은 큰 며느리다. 여고시절 고향에 내려와 초등학교 운동장 행사장에서 봤던 노란 원피스에 하얀 모자를 쓴 화사한 길례언니 모습은 작가에게 선망과 구원의 여인상으로 영원히 남았다.

제2주제 '청춘의 문'

'1955년 제7회 대한 미협 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작품인 <정(靜)>을 만날 수 있다. 맥없이 축 늘어진 해바라기 밭에 검은 고양이를 안고 홀로 앉아 놀랜 듯 불안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는 소녀, 모델은 큰딸이다. 왼쪽 발 옆에 쓰러져 울고 있는 처연한 해바라기에 내 시선이 멈췄다. 빨강 치마는 검은 고양이와 대비 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작품 정전시장내 사진촬영금지로 도록 사진임 ⓒ 박귀단

제3주제 '꿈과 바람'

⟨만선⟩, ⟨소녀⟩, ⟨언제가 그날⟩ 등 작품에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969년 작품인 ⟨언제가 그날은⟩ 화가의 미의식인 꽃과 나비, 여인을 그려 꿈과 환상을 표현했다.

제4주제 '파리 시절'

약 6개월간 파리 '아카데미 고에즈'에 매일 나가 그림을 그렸다. 당시 그린 유화 다섯 점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중 가장 큰 그림 ⟨누드⟩는 1970년 9월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남태평양 풍물 시리즈 스케치 전'을 열어 파리, 이탈리아, 하와이, 타이티, 사모아 등지의 생생한 기록을 선보였다. 이후 54년 만에 처음 공개된 작품이다.

제5주제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화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대중과 소통했다. 그녀는 소설, 잡지 등의 표지, 연재소설의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쓴 글로 대중과 소통했던 수필가였다. 그녀는 감성적인 표현과 솔직한 화법의 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영감을 불러 일으켰고, 20여권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그녀의 글은 한 폭의 그림이고, 그림은 문학적 서사가 있는 에세이다.

1977년 작품 ⟨유리상자 속의 꽃뱀⟩을 보니, 우리나라 동양화에 처음으로 뱀이 등장했다는 작품⟨생태⟩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여동생 죽음과 창자를 에이는 배고픔 속에서도 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평생 외로운 사랑을 했던 남자와의 갈등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작가는 그리움과 슬픔이 몰려올수록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 생각했다.

당시 광주역 앞 뱀 집에 가서 징그럽고 무서운 뱀을 유리 상자에 넣어 약 한 달간 스케치했다. 스케치한 뱀들을 화폭에 옮겨놓고 성냥개비로 세워보니 33마리였다. 순간 자신에게 고통을 남기고 떠난 남자가 35세 뱀띠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화면 상단에 꽃뱀 2마리를 느슨하게 꼬인 새끼줄처럼 그려 넣었다.

작품⟨생태⟩는 1952년 부산 칠성다방에서 열린 대한미협전에 출품했으나 '징그럽다'는 이유로 다방 주방에 감춰뒀다. 공초 오상순 시인이 주방에서 우연히 보고 소문냈다. 소문을 듣고 그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주방으로 몰려들었다. 그 후 부산 국제구락부 개인전에서 ⟨생태⟩를 전시했다.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밤 9시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작가는 이 그림으로 일약 스타가 된다. 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윤효중 학장 제안으로 서양화과 교수 김환기 추천을 받아 1954년 같은 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임명된다.

천경자 화가는 작품⟨생태⟩를 그린 이후 인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수호신처럼 뱀을 그렸다. 화가는 스케치에 몰입하는 순간만은 모든 고통을 잊고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천경자 화가가 뱀 그림을 회고하며 했던 말이다.

"징그러운 뱀을 그림으로써 나는 생을 갈구했고, 그 속에 저항과 뜨거운 열기가 공존하는 저력이 심리의 저변에 깔려 있다."

제6주제 '자유로운 여자'

1974년 교수직을 내려놓고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세계 오지 여행길에 오른다. 화가에게 그림은 종교였다. 그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오지에서 불안에 휩싸일 때도 화판을 꺼내 스케치를 하다보면 포근한 안도감이 밀려왔다"고 술회했다. 작가는 자식 못지않게 귀중한 것이 그림이었다. 부모님 종교는 천주교였다. 그녀는 종교를 갖고 행복해지면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아 종교를 갖지 않는다고 하면서 "내 종교는 그림이다." 라고 했다.

1988년 작품 ⟨아이누 여인⟩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인의 눈빛은 슬픔과 고독이 뒤섞인 듯하다. 여인의 삼단 같은 머릿결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원하는 질감과 색채가 나올 때 까지 수없이 덧칠해서 입체감을 내는 독창적인 창작기법이다.

▲작품 아이누여인전시장내 사진촬영금지로 도록사진임 ⓒ 박귀단

제7주제 '찬란한 전설'

1978년 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여인의 고독과 슬픔이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화가의 자화상이다. 고독한 여인의 담배연기는 꽃과 나비로 승화된다.

화가는 유년시절 듣고 자란 남도판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꿈과 환상은 아름다운 꽃과 나비로 표현했다. 화가의 미의식 원천은 어린 시절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뛰어놀던 체험에서 왔다.

1991년도에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이 발생했다. 진본 확인의 권리는 작가의 몫이다. 화가는 "내가 내 자식을 몰라보겠느냐?"고 항변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화랑협회, 검찰' 의 카르텔에 의해 "자기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작가다"라는 오명을 쓴 채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생전에 천경자 화가 말이다.

"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나 봐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아요."

화가는 1998년도에 자식처럼 아끼던 주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미술관 2층에는 그녀의 영구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예술총감독 수미타 김은 특별전시회 의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시의 주제를 '감동과 그리움'으로 잡았다. 그는 독창적인 그림과 솔직한 글, 그리고 용기 있는 삶으로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선구자적 예술가였다. 그리고 그리움을 남기고 떠났다. 이번 전시에 그리움에 답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천경자라는 거목의 미술사적 중요성을 조명하고, 그의 인간성과 삶을 알아가는 친밀하고 특별한 여정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녀는 '꽃과 여인의 화가', 화선지 위 '색채 마술사', '고독과 한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로 불린다. 천경자 화가의 자화상 <탱고가 흐르는 황혼>을 31일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만나보고 싶다.

▲ 전시회 포스터천경자 탄생100주년 타이틀 사진 ⓒ 박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