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작가들 모임, 사람의 깊이 28집 출판기념회 가져

여순사건 아픔 배인 곳... 사람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까

2025-01-18     오문수
▲ 순천작가회의 멤버들이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지난 11일(토) 오후 4시, 순천 웃장 국밥거리 먹거리 주차장 2층 '좋은 친구들'에서는 2025 순천작가회의 정기총회 겸 <사람의 깊이> 28집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모임에는 오하린 회장을 비롯한 서울과 전주 구례 등에서 온 회원 30여 명이 참석했다.

사람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천길? 만길? 외형상 2m도 안 되는 사람 속내는 측량하기 어렵다. 30여 년을 동고동락하며 속내를 다 알 것 같아 간도 쓸개도 내줬는데 결정적일 때 안면 바꿨던 동료에 대한 배신감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순천작가회의 회의장 모습 ⓒ 오문수

멀리 갈 것도 없다. 강골 검사로 알려져 대한민국의 자유와 정의를 지켜줄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짓밟을 줄 누가 알았을까? 세상이 속였는지 사람이 속였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며 사는 일일지 모른다.

행사장에 모인 회원들의 나이를 보니 산전수전 다 겪었을 지긋한 나이다. 회원들이 발행한 책은 <사람의 깊이>다. 회원들은 1997년 7월 1일, 한국작가회의 순천지부를 결성해 매년 기관지인 <사람의 깊이>를 발행해 왔다. 그 결과가 28호다.

순천작가회의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정신을 계승하고 세계문학 속에서 참다운 민족 민중문학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모인 비영리민간단체다. 이들은 문학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역의 문화 공간 확대를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매년 문학아카데미 교실을 운영하며 시민과 함께하는 시낭송 모임을 갖는다. 이들이 벌인 주요 활동에는 '순천만 갈대제 환경시화전'을 시작으로 순천작가회의 회원 개별창작물 출판(약 40권 이상), 문예지를 통한 우수문학작품 및 문학도서 선정, 한국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시, 소설, 동시 부문) 등이 있다.

여수 순천은 여순사건의 아픔이 진하게 배어있는 지역이다. <사람의 깊이> 28호 특집 속에는 여순 10·19 항쟁 증언록 및 관련 논문이 들어 있다. 여수에 살고 있어 여순사건을 잘 알고 있는 필자에게 오하린·정미경의 <내 아버지 송욱 교장은 멋쟁이 시인이었어>는 책을 펼치자마자 들여다본 글이다.

▲ 김인호 시인의 사진집 출판기념회에서 회원들이 축하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 오문수

특집 2에는 살면서 자신이 겪은 뼈저린 아픔을 절절하게 그린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장진희의 <미역장시 이야기>, 오하린의 <나의 병상 일기>는 지금도 아파하는 삶을, 정성권의 <왼팔이 전하는 말>은 군시절 훈련 중 폭발사고로 왼팔을 잃은 이야기가, <이제 아들 사망신고라도 하고 싶습니다>는 김현주의 지인 아들이 '전주페이퍼에서 일하던 만 19세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다.

청중은 숙연해졌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조선대학교 국문학과 김형중 교수의 특별기고 '5·18을 재현한다는 것'은 소설가 임철우의 <봄날>,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글이다.

김형중 교수의 프로필을 보니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해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고 보니 필자와 동기 동창인 임철우 작가나 김형중 교수는 45년 전 5·18을 온몸으로 맞닥뜨렸고 한강 작가는 내가 자취하던 곳과 가까운 곳에서 5·18을 겪었다. 당시를 재조명한 글을 보며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5년 전 폐암이 발견되어 구례로 귀촌해 틈만 나면 지리산 자락을 돌면서 회복 중인 김인호 시인의 시가 가슴을 울린다. 김인호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다.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만복대 너머 덕유, 가야까지
왕시루봉 타고 섬진강 남해까지
구례읍 너머 백아, 무등으로
사방팔방 번지는 아침 빛
어리석은 이도 머물면 지혜로워지는 지리산
저 구름과 빛이 그려내는 아침 풍경 모시러
새벽길 걷는 구도자의 길
허락하는 동안
이 길을 묵묵히 걸으리라"


한편, 이날 행사에선 김 시인의 따끈한 신간 <나를 살린 풍경들>에 대한 출판 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 김인호 시인이 자신의 시를 발표하고 있다. 행사장에서는 그의 시집인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 오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