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목도한 광주·전남 지역민이 바라보는 '계엄정국'
[주장] 정서적·심리적 폭탄...여순사건과 광주 5.18 오버랩되어 더욱 고통 모두가 '내란성' 불면, 소화불량, 우울증,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12.3 사태는 모든 국민들에게 정서적·심리적 폭탄을 던졌다. 특히 광주, 전남지역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남다르다.
77년 전 여순사건과 45년 전 광주 5.18을 겪은 광주, 전남 지역민들은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 되살아나 두려움과 분노에 전율하고 있다. 비상계엄 자체도 충격이지만,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사태 후 내란범들의 체포와 구속, 탄핵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혼란이다.
필자 또한 광주에서 5.18을 직접 목도했다. 내란범들의 사면이 오늘의 사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은 여수에 살면서 역사적 아픔이 묻어있는 현장투어, 관련 학술회 참여와 유족들을 직접 만나 증언 채록 등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한 이곳 지역민들의 저변에 깔린 정서를 잘 알 수 있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답답함과 고통을 호소한다. 어떤 이들은 뉴스만 봐도 무섭고 소름 돋는다며 짜증 섞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모두가 '내란성' 불면, 소화불량, 우울증,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설마 하며 지켜보지만, 친위쿠데타 세력을 옹호하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친위쿠데타가 성공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바닷물이 짜다는 걸 알기 위해 모든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한다는 것인가!
세계 역사상 친위쿠데타가 실패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실권을 가진 세력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검찰을 동원해 권력을 장악하려 해도, 언론을 통해 장악하려 해도 맘대로 되지 않자 급기야 군과 경찰을 동원해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것도 실패하자 이제는 폭민들을 동원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에만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계엄이 고도의 통치수단이라는 등 궤변을 늘어놓은 이들이 그렇다. 그것을 반복 재생하는 언론들도 그렇다.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여론전을 펼치는 국회의원들, 사법기관의 판결을 부정하며 난동을 일으키는 폭민들이 그렇다.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인 헌재의 결정마저 부정할 거라 말하고 폭동을 예고하는 극우 유튜버들과 극렬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를 지켜본 광주, 전남 지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진정 쿠데타가 성공이라도 해서 아픔을 겪어봐야 계엄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지역 시민들만 허탈하고 어이없어 하는 것인가? 계엄을 겪어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보는 심각성이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1948년 이승만 정부 또한 실권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만의 반쪽 정부수립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들고 일어났다.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이승만은 남녀노소 아동을 불문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척결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시위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정부는 제주 시민들을 진압하고자 여수 14연대 군인들의 제주도 파병을 지시했다. 그러나 14연대 군인들은 '동포를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며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켰다.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최초로 계엄령이 발동되고 그 결과 수많은 지식인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된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은 반공을 국시로 내걸며 반국가 세력들을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수 없는 비국민으로 취급했다.
그는 자신의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절멸시켰다. 빨갱이어서 죽인 것이 아니다. 죽이고 나서 빨갱이로 만들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자국민을 향해 저지른 만행은 여수, 순천, 광양, 구례, 곡성, 벌교 등 전남과 이웃 33개 도시에 수년간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희생시켰다.
광주 5.18 또한 전국 곳곳에서 반국가 시위가 확산되자 광주지역을 대표로 특정하여 폭도와 빨갱이 도시로 몰아 공포정치를 보여주고자 했다. 기나긴 세월에도 여순사건과 광주 5.18의 학살로 삶이 해체되고 짓밟힌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이 지역 시민들에게 이번 사태는 여순사건과 광주 5.18이 오버랩되어 더욱 고통스럽고 힘들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늘 안타까워하는 문제가 있었다. 힘없는 국민 개개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선거를 잘하는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번 선택한 선출직 공무원들이 그 임기 동안 폭거를 해도 어찌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어찌 국민이 주인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늘 회의적이었다.
최근 민주당 최민희 의원 등의 국민소환제 발의를 보면서, 과정이 좀 까다롭겠지만 꼭 필요한 제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국민소환제가 실시된다면 정치참여에 대한 적극적 대안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어서 더욱 환영하는 바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지킬 수 없다고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지대한 관심과 결속으로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권력 감시제도와 엄격한 법치제도만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의 윗부분에 있을수록 그 책무에 걸맞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내란 세력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공정한 특검이 실시되어 군사반란이나 내란·외환죄 등 중대 범죄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철저하게 단죄해야 한다. 특히, 사면만큼은 절대 허(許)해서는 안 된다고 이 지역 시민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