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이순신 사적지 답사 투어, 여수 선소를 가다

전라좌수영과 이순신

2025-03-09     황수연
▲오문수기자와 함께 하는 여수 이순신 답사 ⓒ 강지율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는 1479년(성종10) 수군절도영을 둔 이래 1895년(고종32)까지 417년간 남해안 방어를 위한 조선수군의 주진이었다.

조선은 육군과 수군을 두고 각 도 군사요충지에 병영과 수영을 설치하고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가 지휘하게 했다. 수군절도사는 여러 수군 진을 관장했다. 전라좌수사는 아래에 5개의 진을 두었는데 이를 오관오포라 불렀다. 5관은 순천부, 낙안군, 보성군, 광양현, 흥양현이고5포는 방답진, 여도진, 사도진, 발포진, 녹도진이다.

▲ ⓒ네이버지도

전라좌수영 5관5포 중 고흥에는 무려 1관 4포가 포진되었다는 사실. 그만큼 흥양(조선시대 고흥)은 전라좌수영의 중심 포인트의 해상 요충지였다. 하지만 이순신에 대한 전문가나 역사 학자가 아니라면 고흥은 이순신과의 인연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순신의 흥양수군을 꼭 알려야 할 임무를 절감한 고흥군문화관광해설사 6명은 고흥의 1관4포에 대한 공부를 함과 동시에 전라좌수영의 본영이 있던 여수로 향해 이순신의 사적지를 돌아보며 이순신을 배워보고자 한다.

▲이순신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황수연

이순신의 생애

1세. 1545(을사년) . 서울 건천동. 덕수이씨 부친 이정과 모친 초계변씨 셋째아들로 태어남
21세. 보성군수 방진의 딸 상주방씨와 혼인
32세. 무과 급제. 함경도 동구비보의 권관으로 벼슬길
36세. 7월 전라좌수영 발포수군만호 부임
39세. 7월 함경도 남병사 군관. 건원보 권관, 여진족 추장 울지내를 포획
11월 부친 별세
43세. 8월 녹둔도 둔전관을 겸함.
10월 병사 이일의 모함으로 파직되고 백의종군
45세. 2월 전라도 순찰사 이광의 군관 겸 전라도 조방장
12월 정읍 현감
47세. 2월 잔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
48세(1592). 4월 임진왜란 일어남
5월초 1차 출전해 옥포·합포·적진포 해전 승리
5월말 및 6월초 2차 출전해 사천·당포·당항포·율포 해전 승리
7월 3차 출전해 한산·안골포 해전 승리
9월 4차 출전해 부산 해전 승리
49세. 2월 웅포 해전 승리
8월 삼도수군통제사가 됨
50세. 3월 다시 당항포 해전 승리
52세(1597). 4월1일 도원수 권율 막하로 백의종군
4월11일 모친상
7월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
9월 명량해전 13척으로 왜선 133척과 싸워 승리
53세(1598). 2월 18일 고금도로 진영을 옯김
7월 명나라 수군 도둑 진린과 연합
7월19일 절이도 해전 승리
11월19일(양력 12월16일) 노량해전에서 순국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1545년도 올해와 같은 을사년이었다는~480년 동안 조선과 대한민국을 구하셨습니다!!

이충무공 사적지 답사

이번 여수 이순신 답사 안내는 여수에서 여수넷 대표이자 오마이뉴스 기자로 활동하고 계신 이순신 전문가 오문수 기자님이 재능 기부를 해주었다.

답사팀은 고흥군 문화관광해설사 6명과 여수 주민 5명이 함께 했다. 답사루트는 여수 선소-->오충사-->자당기거지-->진남관-->성벽길-->통제이공대첩비/타루비 -->묘도-->흥국사로 이어졌다.

▲ 여수 선소 유적지 입구 ⓒ황수연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들거나 고치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관 나대용과 거북선을 만들었던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가막만의 최북단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입구에 가덕도와 장도가 방패 역할을 하고 뒤로는 망마산을 등지고 있었으므로 천연의 요새였다. 원래 명칭은 순천부선소였다.

▲ 여수 선소 굴강 ⓒ황수연

현재 굴강이 남아 있으며, 발굴조사를 통해 대장간 터를 찾았으며, 세검정과 군기고는 최근에 복원하였다.

▲ 선소를 왜구로부터 지켜내고자 기원하며 세운 돌벅수 ⓒ황수연

선소에는 일반적으로 장승을 세워 민간인과 구별된 공간임을 경계로 표시하며, 각종 재앙을 막는 성역임을 표시한다. 그 장승을 여수에서는 벅수라 하였다.

​선소마을 입구쪽 벅수는 원래 진입로에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길을 확장하면서 현재 공원쪽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굴강 주변 벅수는 발굴조사 때 찾아내어 현 위치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 중 1기는 풍화되어 몇 년 전 새로 세운 것이다.
<출처 : 여수시청--선소마을 벅스>

▲여수 선소 대장간 ⓒ황수연 

거북선에 필요한 무기를 만들었던 곳이다. 물을 모으는 집수구와 쇠를 불에 달구어 버리는 단야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군기를 수리하던 대장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여수시청-선소 대장간>

▲세검정 ⓒ황수연 

세검정은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80년에 1차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주춧돌의 간격 등을 통해 세검정의 규모가 확인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86년에 앞면 7칸, 옆면 1칸 규모의 밎배지붕 건물로 복원되었다.

​군기고는 군사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 추정된다.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주춧돌 사이 벽체를 토담으로 튼튼하게 쌓았으며, 건물터 앞에서 쇠로 된 화살촉, 배에 사용된 못 등이 발견되었다. 군기고는 서쪽을 향해 있으며,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세검정과 함께 복원되었다.

< 출처 : Cultural Heritage Wiki-세검정과 군기고>

▲ 여수선소 계선주 ⓒ황수연

계선주는 거북선과 판옥선을 매어 둔 곳으로 구전되고 있다. 선소 입구의 초소적인 위치인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보아 해안 벅수로 추정되기도 한다.

선소 계선주는 높이 약 1.4m의 돌기둥 형태이며, 선소 유적 안에 복원된 세검정(洗劍亭) 건물 앞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의하면, 임진왜란 중에 선소가 생겼다고 한다. 계선주는 이때 선소 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선소 계선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아침 일찍 고흥에서 출발한 우리들을 배려한 여수 한 선생님이 갓 구워낸 따뜻한 빵을 나눠 주어 맛나게 먹고 다음 행선지 오충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