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배움을 멈춘 어른들, 그리고 위험한 정답주의

자존감 결핍이 부른 삶의 민낯

2025-08-03     김광호
▲ 배움은 짧아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 ⓒ김광호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타인을 지배하려는 충동이 강하다. 그 지배를 통해서만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얻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이 말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병리적 현실을 꿰뚫고 있다.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어른들이 공부를 멈춘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제도권 교육을 마치고도 지식은 갇힌 채로, 사고는 굳어진 채로 멈춰버린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독서를 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으며,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이만 먹었을 뿐, 내면은 자라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정답만을 말한다.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 흑과 백 사이의 회색은 없고, 유연함보다 완고함이 미덕이라 여긴다. 융통성이 부족하고, 외골수적인 성향이 강하며, 타인의 견해를 수용할 여지는 없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더욱 자기 주장에 집착하고, 그 집착은 결국 조직과 사회 안에서 갈등을 키운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곳곳의 의사결정 구조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교육, 언론, 행정, 기업 등 모든 영역에서 그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런 정답주의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그는 토론보다 명령을 선호했고, 공감보다는 단죄를 앞세웠다.

그러나 윤석열 개인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그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했던 수많은 ‘공부를 멈춘 어른들’이다. 그들의 열광이 없었다면 권력의 오만도, 폭주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편'을 만들고 '적'을 구분지으며, 이견을 곧장 적대시한다. 토론은 사라지고, 공론장은 폐쇄된다.

▲ 강변에 살지만 이웃과 공존하는 사람들 ⓒ김광호

출세하면 조직은 곧 사유화되고, 권력은 세력화된다. 공공성은 사라지고, ‘우리끼리’의 언어가 행정과 제도를 점령한다. 그 결과, 이념과 정의는 무기처럼 쓰이고, 다른 의견은 곧 적폐로 낙인찍힌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악은 생각 없음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자기 생각 없이 남의 말만 반복하는 어른, 자기 성찰 없는 권력자, 틀에 박힌 지식을 절대시하는 사회는 결국 가장 약한 곳부터 무너지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가 아니라 성숙의 위기다. 이제 우리는 교육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자존감을 키우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직도 명문대 타령을 하고, 구시대적 지식을 주입하고 있다면, 미래는 없다.

더 이상 정답을 강요하지 말고, 질문을 품게 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성장, 줄세우기가 아니라 공존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세대가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정의와 상식의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