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원장, 섬 음식 “투박하고 낯선 맛일지라도 ‘이게 진짜 여수의 맛' "

여수 섬 음식 백서 ― 삶과 역사를 품은 밥상 “섬 음식은 여수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울푸드”

2025-09-12     조찬현
▲ 여수시 ‘섬음식백서’ 책자 표지 ⓒ조찬현

여수시가 지난해 8월 발간한 「섬 음식 백서」가 2026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재조명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레시피 모음집이 아니다. 섬사람들의 삶과 애환, 공동체 정신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문화 기록이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종합 문화”

▲ 김명진 원장이 여수 섬 향토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조찬현

10일 김명진 여수향토요리문화학원 원장은 “수년간 여수 섬을 찾아다니며 사라져가는 음식을 채록했다”며 “그 결과 100여 가지의 섬 음식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곧 공식 기록으로 남지 않았던 여수 생활사를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풍토와 정신, 시대적 아픔이 배어 있는 종합 문화”라며 “섬 음식은 여수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울푸드”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지금까지 250여 가지 음식을 기록했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음식이 훨씬 더 많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러한 귀중한 음식들이 지역 식당이나 낭만포차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원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섬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오리지널 음식을 관광객에게 선보여야 한다”며 “투박하고 낯선 맛일지라도 ‘이게 진짜 여수의 맛’이라는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구마 빼떼기죽에 담긴 상화도 어르신의 기억

“옛날에는 먹을 게 없으니까 쌀 대신 고구마를 절구에 찧어 부서뜨린 뒤 보리와 해초를 섞어 밥을 지어 먹었지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절, 여수 섬마을 주민들에게 쌀은 귀한 것이었다. 산에서 소나무 속살을 벗겨 연명하기도 했고, 그것마저 감시하는 산림감시원을 피해 숨어다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시절 고구마는 생명을 이어준 구황식품이었다. 특히 ‘고구마 빼떼기죽’은 잘게 찧은 고구마에 밀가루, 보리, 팥을 넣어 끓여낸 음식으로, 형편이 조금 나은 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가난한 집은 그저 찐 고구마로 끼니를 이었다.

▲ 여수 섬 향토음식 고구마범벅이다. ⓒ조찬현

섬의 며느리들은 더욱 고단했다. “세끼 밥”은커녕 고구마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지금도 고구마를 질려 못 먹는다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상화도의 한 할머니는 “부잣집에서 자라 잘 먹고 살았는데,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맨날 고구마와 보리밥만 먹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도 나이가 같던 시누이는 늘 불쌍한 올케를 생각해 자기 밥을 반씩 나눠주었고, 두 사람은 친자매처럼 살았다. 그러나 시누이는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처럼 고구마 빼떼기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난을 견디고 서로를 나누며 살아낸 공동체의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