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빨래도 못 널어요” 여수 남산동·돌산 진목마을, 조선소 분진·오염에 주민 고통

쇳가루와 페인트 그리고 유리섬유... 조선소 분진과 함께 사는 사람들

2025-09-22     조찬현
▲ 여수 남산동 한 조선소에서 작업자들이 분진 가림막 없이 선박에서 그라인더 작업을 하고 있어 쇳가루가 주변으로 날린다. ⓒ조찬현

여수시 돌산대교 아래 남산동 어촌마을. 멀리서 보면 주황색 지붕들이 겹겹이 이어지며 바다 위로 반짝이는 윤슬과 어우러져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다.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침 햇살에 비친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면, 이곳 또한 아름다운 여수 바다 ‘낭만의 여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아름다운 풍경 뒤편에는 쇳가루와 페인트 분진이 떠다니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 조선소 때문이다.

“빨래는 아예 밖에 못 널어”

아침마다 뱃고동 소리에 눈을 뜨는 주민들은 반짝이는 바다보다 먼저 창문에 쌓인 회색 먼지를 확인한다.

조선소 작업자들이 그라인더로 쇠를 갈고, 선박에 페인트를 칠하는 순간부터 미세한 쇳가루와 분진이 바람을 타고 마을로 날아든다.

수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지난 19일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겨울 북서풍이 불면 빨래를 전혀 밖에 못 널어요. 차 위에도 페인트 분진이 날려서 내려앉아 항의하면 가끔 보상해주지만, 문제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 여수 남산동 조선소 전경이다. ⓒ독자 제공

바다로 흘러드는 조선소 오염수

분진 피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조선소에 대형 선박이 들어오면 고압 세척 작업이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벗겨진 페인트와 오염물질은 여과 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바다로 흘러든다.

“큰 배가 들어오면 7~8시간씩 고압으로 세척 해요. 물살이 세서 그나마 바다가 스스로 정화한다고 하지만, 그 물이 여과 없이 바다로 그대로 흘러간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한 주민은 제보를 위해 직접 촬영할 수 있는 시점을 알려주겠다고까지 했다.

“시민들은 모른다, 이곳의 현실을”

남산동 주민들은 돈을 모아 소송도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조선소와 마을의 경계는 여전히 허술하고, 방진·방음 시설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여수 시민들 대부분은 이곳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조차 몰라요. 남산공원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바로 시내 한복판인데, 여기 사람들은 매일 쇳가루 속에 삽니다.”

해안에 쌓인 쓰레기, 그리고 유리섬유
돌산 진목마을 해안, FRP 조선소의 그림자

▲ 돌산 진목마을 근처의 FRP조선소, 유리섬유 분진 가림막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조찬현

여수 돌산 진목마을로 가는 해안과 산자락에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 선박을 제작하는 조선소가 자리하고 있다. 푸른 바다와 맞닿은 곳이지만, 공기와 땅, 바다는 이미 깨끗함을 잃은 지 오래다.

돌산 진목마을 근처의 FRP조선소, 바닷가 작업장은 유리섬유 분진 가림막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산자락 작업장에서는 작업자들이 가림막 없이 선박 유리섬유 작업을 하고 있다.

▲ 돌산 진목마을 해안가에는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조찬현
▲ 돌산 진목마을 해안가에는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조찬현

해안가에 발을 들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닷가를 따라 널부러진 쓰레기들이다. 바다 양식장에서 떠밀려온 부유물과 함께, 인근 조선소에서 나온듯한 폐자재와 생활 쓰레기가 뒤엉켜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진이다. FRP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리섬유와 비산먼지는 오랫동안 마을로 날아들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섬유 조각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호흡기와 피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주민들의 호소다.

“수십 년째 피해, 아무도 해결 못해”

여수는 국내 대표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했지만, 바다와 맞닿은 현장 곳곳에서는 여전히 산업 오염의 그림자가 짙다. 돌산 진목마을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파란 바다 풍경 뒤에는, 수십 년간 유리섬유 분진에 시달려온 주민들의 삶이 있다. 관광객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해안선에는 오늘도 조선소 폐기물과 바다 쓰레기가 뒤엉켜 쌓이고 있다.

▲ 여수 돌산 진목마을 인근 조선소 전경이다. ⓒ독자 제공

낭만의 도시 여수... 낭만 뒤의 그늘

여수는 ‘밤바다의 도시’, ‘낭만의 도시’를 내세우며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이미지 뒤에는 낙후된 환경에서 오염과 싸우는 마을이 존재한다.

여수 남산동과 돌산 진목마을은 여전히 바닷바람과 뱃고동 소리를 품고 있지만, 그 바람 속에는 쇳가루와 유리섬유가 섞여 있다. 낭만과 현실의 간극이 만드는 이 기묘한 풍경은 여수의 현재를 그대로 비춘다.